STAGE

역사의 숨은 주인공이 된다는 것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며칠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창작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혼자 관람했습니다. 마침 ‘마스크를 쓰고라도 꼭 공연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거든요. 이 작품은 1811년 순조 11년에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을 배경으로, 대동강 물을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거리낌 없이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 김선달과 가상의 정부 관리 조진수를 등장시켜 이 세 사람이 동시대의 절친한 벗이었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극을 이끌어갔습니다

군포를 뜯어가는 관리의 등쌀에 백성은 일 년 내내 고생해도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재와 먼지로 돌아간 백골조차도, 그 몸 하나하나에 요역이 부과되어 곳곳에서 백성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한 한 농민은 마침내 자신의 양근(陽根)을 자르는 참사까지 일어났던 것입니다.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 그것이 바로 당시 백성의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각자의 방법으로 조선의 평화를 꿈꾸는 <조선 삼총사> 김선달, 조진수, 홍경래.

저마다의 투쟁

웅장하면서도 호쾌한 음악으로 시작되는 무대. 1805년 평안도에서 시작된 삼총사(홍경래, 김선달, 조진수)의 우정은 민초의 고통 속에서 시작됩니다. 삼정문란과 세도정치의 횡포가 극에 달한 시대. 백성들은 걸핏하면 군포를 뜯어가는 관리들의 등쌀에 허리가 휘어지지요. “오늘도 세금, 내일도 세금, 매일매일 세금, 견딜 수 없어, 살 수가 없어. 남김없이 빼앗아가네.” 모범생 조진수는 세금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 안에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것입니다. 김선달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로빈 후드식 개혁’의 길을 가려 하지요. 홍경래는 민란을 일으켜 백성을 결집하고, 파죽지세를 올리며 평안북도 지방 곳곳을 점령해 나갔으나, 정주성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맙니다. 홍경래를 중심으로 결집한 백성은 목숨을 걸고 항쟁했고, 한겨울에 정주성에 갇혀 굶주림과 공포를 견디며 통치자들의 횡포에 저항했습니다.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은 백성의 결사 항쟁에 지쳐버린 관군은 땅굴을 파 들어가 성을 파괴하는 전략으로 마침내 진압작전에 성공합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며 고통을 견디다 못해 민란을 일으킨 제 나라 백성을 역적으로 내몰아 처참하게 죽여야만 유지되는 권력이란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을까요. 역사책에 ‘역적’으로 기록된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은 이처럼 무고하고, 비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요.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김선달이 아내 자임에게 옥비녀를 건네고 있다.

아, 이름 없는 전사들이여

세 친구는 <조선 삼총사>에서 각기 다른 노선으로 갈등하지만, 결국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하고 부자의 배를 더욱 불리는 당시 정치 상황이 잘못되어 있음을 처절하게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홍경래의 봉기는 시종일관 용감하고 비장하게 묘사되고, 대동강 물을 100만 냥에 팔아 탐관오리를 농락하는 김선달은 통쾌한 유머로 관객을 웃기고, 조진수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제도 안에서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제 눈길을 끈 것은 <조선 삼총사>의 주인공보다도 ‘자임’이라는 이름을 지닌 김선달의 아내였습니다.
김선달의 아내는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끊임없이 돕다가 마침내 홍경래의 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정주성을 끝까지 사수하는 길을 택합니다. 김선달이 처음으로 사준 옥비녀 하나를 남편에게 받은 생애 첫 선물이라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 세상을 바꾼다며 집 떠나간 남편을 기다릴 수만은 없어, 자신이 첩자로 변신하여 탐관오리의 횡포 한가운데로 잠입하는 용감한 여자, 자임. 홍경래의 혁명도, 김선달의 개혁도, 조진수의 진보도 아니지만, 다만 그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을 끝없이 돌보고 또 돌보다 마침내 스스로가 이름 없는 전사로 죽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홍경래의 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수많은 농민 봉기나 노동자 투쟁에서 가장 많은 투사들이 선택했던 길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혁명이냐 개혁이냐 진보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변치 않는 마음으로 돌보고, 보살피고, 끝까지 곁에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아닐까요.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조선 삼총사> 속에도 실제 역사 속에도 자기 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임아. 더 많이(비녀를) 주워온다 했는데, 어찌 이것 하나 가져가지 않니. 어디로 가는가요. 의연하고 멋진 당신. 이 사람 저 사람 돕다가 저 하늘까지 가는 거요.” 뮤지컬 속의 애절한 노래 가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맺혔지요. 나는 과연 사람들을 제대로 돕고 보살피고 그 곁에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며칠째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눈부신 희망을 보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절실히 꿈꾸었습니다. 간절히 꿈꾸며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저마다 소중한 역사의 주인입니다. 어떤 꿈도 꾸지 않는 게으른 자들의 세상보다는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꿈꾸는 자들의 세상이 훨씬 나으니까요.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간절한 희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 무엇도 여의치 않을 때, 혁명도 진보도 개혁도 불가능할 때, 역시 우리는 극 속에서 가장 안타깝게 스러져가는 여인 자임처럼 ‘끝없이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고, 아껴주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저는 언제나 ‘그들’, 대단한 자들이 깜빡한 존재들, 세상이 완전한 주인공이라 여기지 않았던 존재들에 매료되었지요. 주인공 삼총사보다는 삼총사 중 한 사람의 아내에게 마음이 끌리다니.

뮤지컬 〈조선 삼총사〉를 감상한 정여울 작가는작품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봤다.

<조선 삼총사>에는 다양한 투쟁의 삶이 있다. 당신은 어떤 희망을 품고 있나?

어쩌면 저는 항상 거대한 역사나 걸출한 인물들이 ‘깜빡한’ 존재들 속에 더 눈부신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에 인생을 걸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문학 속의 실패한 주인공들, 역사의 격랑에서 교과서 속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한 이름 모를 백성들의 삶을 매일 상상하게 됩니다. 문학은 역사가 버린 모든 자들이 저마다 가장 자기다운 숨을 쉴 수 있는 마지막 율도국이자 위대한 패자부활전의 시공간을 만들어내니까요.
저는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연못을 찾는 자의 간절함으로, 패배했지만 여전히 눈부신 사람들을 계속 찾으려고 해요.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만 실패한 사람들,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았지만 결코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의 못다 한 꿈을 부활시키는 자, 그런 글쟁이로 끝까지 살아가겠습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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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정여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