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2021년 한국 공연계 키워드 5

익숙해진 체념과 오랜만의 희망이 오고 간 올해 한국 공연계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올해는 백신 접종에 따른 인원 제한 및 거리두기 수칙이 점차 완화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숨통이 다소 트였습니다.
공연계의 경우 하반기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의 전환이 차례로 이뤄짐에 따라 국내외 예술가의 투어가 재개되는 한편 단체 방역 패스 도입으로 객석을 100% 열 수 있게 되는 등 희망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등장 및 확진자 급증으로 ‘위드 코로나’ 철회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등 불안은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계는 팬데믹 속에서 꾸준히 스펙트럼의 확장을 꾀했습니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몰려온 ‘온라인 공연’이 자리를 잡은 데 이어 올해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인 ‘메타버스’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2021년의 끝자락에서 올해 한국 공연계를 관통한 이슈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코로나19 백신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로 극장을 닫기도 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올해는 상황이 개선됐습니다. 특히 국내에선 2월 시작된 백신 접종은 집단 면역을 통해 일상 회복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공연계는 공연장에서 관객 간 집단 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을 토대로 정부에 실효성 있는 좌석 거리두기를 요구해 왔는데요. 2월 말 공연장 인원 제한이 개인별에서 동반자별로 조정된 이후 점차 3~4연석까지 가능하게 됐습니다.
국내외에서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여행 자유화 조치가 잇따르면서 예술단체의 투어가 재개된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하반기부터 한국에 입국하는 해외 예술가에게 자가격리 면제를 적용함에 따라 11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대규모 예술단체의 내한공연이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이어 12월 13일부터 모든 공연장에서 백신 접종 완료자, PCR 음성확인자(48시간 내), 18세 이하, 완치자 등 방역패스 의무화 조치가 시행돼 객석을 100%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방역패스에 대한 찬반이 거센 데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공연계 양극화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공연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거리두기 완화 이전엔 공연장 내 객석 띄어앉기 기준이 객석을 최대 50%밖에 채울 수 없는 적자 구조였는데요. 당시 힘든 공연계를 지탱한 존재가 ‘혼공족’, 즉 혼자 공연을 보러온 관객이었습니다. 팬데믹은 혼공족 증가세를 부추겼는데, 10명 가운데 7명 정도입니다.
거리두기 완화 이후 공연계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보복 관람’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작품이 늘어나는 등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공연예술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12월 13일 기준으로 올해 공연 매출액 2,734억 원 가운데 77.1%인 2,106억 원이 뮤지컬이었습니다. 이어 297억 원의 클래식이 10.9%, 228억 원의 연극이 8.3%를 차지한 것을 빼면 다른 장르의 매출 규모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또 객석 규모별 매출은 대극장(1000석 이상) 1,970억 원, 중극장(300~1000석) 519억 원, 소극장(300석 미만) 763억 원 순으로 편차가 꽤 큽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스타 배우가 나오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등 이름이 알려진 검증된 작품에 쏠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공연계의 양극화는 영세한 극단과 제작사들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반증이어서 우려스럽습니다.

#배리어 프리

배리어 프리 연극 <천만 개의 도시>

‘장벽’의 Barrier와 ‘자유’의 Free가 합쳐진 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 등의 사회 활동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 장애물이나 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운동입니다. 공연계에서는 장애인의 문화권, 즉 문화에 접근할 권리와 문화를 창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뜻하죠. 국내 공연계에서 최근 배리어 프리가 활발해진 배경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의 영향이 큽니다. 이후 공연 제작 과정에서 윤리적 관점이 중시되면서 장애인과 성 소수자 연극이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남산예술센터, 국립극단 등 국공립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진 공연계의 배리어 프리는 주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및 국문 자막,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영상 제공에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점차 장애예술, 즉 장애예술인 양성을 포함한 장애인 문화 생산으로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공연계 안에 장애예술이 그동안 존재했지만, 비장애 예술계와 최근에야 접점을 가지게 된 것인데요. 이에 따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동 창작 워크숍 등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장애예술에 대한 첫 독립 법률로서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은 공연계의 배리어 프리를 한층 촉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연극

전태일 흉상 ⓒ위키미디아커먼스

노동 문제를 소재로 한 노동연극이 올해 자주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의 삶을 다룬 음악극 <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와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를 비롯해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다룬 극단 고래의 <굴뚝을 기다리며>, 극단 파수꾼의 <7분>, 국립극단의 <SWEAT(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극단 현의 <트리거>, 극단 토모즈팩토리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노동가Ⅱ> 등 10편을 훌쩍 넘겼습니다.
사실 국내 연극계에서 노동연극은 이제 낯선 분야가 아니어서 연말에 각종 연극상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는데요. 올해는 국립극단의 <SWEAT(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됐습니다.
오랫동안 제도권 연극계 밖에 있던 노동연극은 2010년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연극계의 현실 참여적인 정치극 열풍 속에 중심부로 들어왔는데요.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심화된 노동 현실 속에서 연극인들 스스로 노동자라는 자각에 도달한 것과 관련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노동연극 열풍은 팬데믹의 장기화 속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젊은 예술가들이 노동 문제를 가장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감콘텐츠·메타버스

실감콘텐츠는 디지털 콘텐츠에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XR(확장현실), 홀로그램 등 실감기술을 적용해 인간의 오감을 현실에서처럼 실감 나게 느끼게 하는 콘텐츠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실감기술 토대의 메타버스(Meraverse)는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통해 활동하는 3차원(3D) 가상세계를 의미합니다.
팬데믹 장기화 속에 단순한 공연 영상 스트리밍에서 벗어나 실감콘텐츠·메타버스 공연이 잇따라 시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선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온라인 기반의 비대면 서비스 수요 증가로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입니다. 이미 K팝 등 대중음악계는 게임 플랫폼에서 가수들이 아바타를 활용해 신곡을 발표하거나 사인회를 여는 등 실감콘텐츠·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이에 비해 순수 공연예술은 현재로선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수준입니다. 메타버스 융복합 공연이나 가상 극장 등은 감각과 사유의 폭을 넓혀주지만 대중성을 가지긴 어려워 보입니다. 현재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홀로그램 정도이고, 메타버스 역시 공연계에선 주로 홍보와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고객 경험을 확대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나오려면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2020년.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이 영혼으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를 들려준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_장지영(국민일보 선임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