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조선 삼총사가 된 세 배우

조선 삼총사가 된 세 배우 ‘ART-9세종’의 두 번째 프로젝트 〈조선 삼총사〉의 주역을 맡은
허도영, 한일경, 김범준 배우를 만났다.

19세기 초 조선에선 세도 정치와 붕당 간의 다툼이 극에 달하며 민생은 수렁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된 시절에 누군가는 돈을 벌어 이웃과 백성을 직접 구하려 했으며, 다른 누군가는 혁명을 꿈꾸며 부조리한 권력에 반기를 들었죠. 또 다른 누군가는 권력을 잡고 정치의 폐단을 직접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보다 밝은 세상을 위해서 저마다 꿈꾸던 방식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만은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노래를 부르며 한과 울분을 달랬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락과 장단에 삶을 녹여내며 사람들은 고된 일상을 이겨내는 듯합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들이 모여 만든 합동 공연 ‘ART-9세종’의 두 번째 프로젝트 <조선 삼총사>는 팍팍했던 19세기 초 조선을 재현한 무대로 관객을 데려갑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노래가 함께 하는 뮤지컬을 택했습니다. 2019년 첫 번째 프로젝트인 <극장 앞 독립군>에서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말년을 장엄하게 그려냈다면, 이번엔 세 가지 색깔을 가진 삼총사의 활약상을 통해 당대 백성의 꿈을 담았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주역을 맡은 3인은 서울시뮤지컬단의 허도영(김선달 역), 한일경(홍경래 역), 김범준(조진수 역) 배우. 이들은 “여러 예술단체와 많은 출연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독특한 매력의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19세기 조선을 구현한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극장 앞 독립군>에도 출연했던 이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허도영 배우는 능글맞고 언변이 뛰어난 김선달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 세 인물의 빛나는 호흡

<조선 삼총사>는 1811년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인 ‘홍경래의 난’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당대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에 맞서 눈앞의 이득보다 나라의 평화를 꿈꿔왔던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세 핵심 인물이 친구 관계라는 설정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했습니다. 한 스승을 모셨다는 설정도 더해졌죠.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였던 세 사람은 평양 출신 희대의 사기꾼 김선달, 농민 반란을 이끈 홍경래, 강직한 금위영 대장 조진수입니다.
허도영 배우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셋은 극 초반부터 의견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짧은 초반부에서 각자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강조해 연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범준 배우는 “각자 개성을 보여주는 대사를 소화하면서 행동 연기를 통해서는 삼총사의 호흡과 ‘케미’를 강조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세 친구는 개성도 다릅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허도영 배우는 “김선달은 설화로 전해져 내려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편인데 그저 강물을 팔아먹는 사기꾼이 아니다. 능글맞고 언변이 뛰어나며 임기응변이 강한 캐릭터다. 백성을 위하려는 마음이 크고 유일하게 작품 안에서 밝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라고 답했습니다.
유일하게 실존했던 인물인 홍경래를 연기하는 한일경 배우는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올곧이 담아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역사적 사실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차별로 인해 쌓인 분노를 민란을 통해 표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마초 같은 모습”이라며 웃었습니다.

김범준 배우는 권력을 잡아 조선의 평화를 찾으려 하는 조진수의 올곧은 모습을 연기한다.

김범준 배우가 맡은 조진수는 가상의 인물로 세도 가문인 풍양 조씨 출신입니다. 김범준 배우는 “의협심이 강하고 성격이 곧으며 모범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권력을 잡아야겠다는 소신이 잘 드러나도록 연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본을 읽었을 때 김선달의 역할이 가장 눈에 띄지만, 가상 인물 조진수가 갖는 드라마도 완성도를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 실제 성격도 조진수와 비슷해 많이 공감했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셋은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하고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허도영 배우는 ‘무대에서 멋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한일경 배우는 ‘스스로 타협하지 않는 배우’, 김범준 배우는 ‘누구보다 깊고 세심하게 캐릭터를 분석해 최대치를 끌어내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한 예술단에서 서로를 오래도록 봐온 ‘식구’인 만큼 신작 속 세 사람의 호흡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악보 위 그려낸 서사와 웅장한 군무

음악을 통해서도 세 인물의 격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소영 음악감독은 “각 인물의 주장, 생각 혹은 서사에 맞는 음악이 변주된다”며 “서양 음악에 기초해 우리 정서를 함께 녹여낸 개량 한복 같은 음악을 준비했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이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맞설 때 음악이 핵심 기능을 합니다.
한일경 배우는 “음악적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2막에서 일어날 갈등의 기폭제가 되는, 마치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을 주는 1막의 ‘꿈꾸는 자들의 세상’을 주목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범준 배우는 “2막 중반쯤 조진수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좋은 솔로곡도 있다. 이 곡에 애정이 강한데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하다”고 했습니다. 세 배우는 한 목소리로 “공연이 끝나도 흥얼거릴 넘버들이 가득하다”며 즐거워했습니다.

‘홍경래의 난’의 주인공 홍경래를 연기하는 한일경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마초’라고 표현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주축을 맡지만 ‘ART-9 세종’의 가장 큰 미덕은 여러 예술단의 화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서울시무용단원들이 주로 ‘관군’ 역할로 출연하며, 군무 장면 등에서 무대에 올라 웅장함을 더합니다. 대규모 반군을 이끄는 홍경래 장군의 출연 장면에서도 등장합니다. 한일경 배우는 “풍자, 해학, 연기가 필요한 안무는 뮤지컬 단원들이 주로 풀어내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역동적 몸짓은 무용단원들이 표현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연극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이번 극을 집필한 이미경 작가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갈등이 있더라도 세 인물은 분명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견제하고 위기를 겪다가도 이내 균형을 찾아가는 세 사람의 에너지는 끝끝내 희망을 노래합니다.

코로나19 딛고 이뤄낸 더 간절하고 뜻깊은 화합

사실 지난해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한 해가 지나 다시 무대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김범준 배우는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인원에도 제한이 있어 장면별로 나눠 연습해야 한다. 이제 이런 상황은 익숙해졌다”고 털어놨습니다. 허도영 배우는 “약 1년 만에 다시 작품을 준비하는데 다들 생각보다 기억을 잘하고 있었다. 당시 미처 보지 못했던 미세한 부분들을 수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일경 배우는 “눈으로 연기한다는 말처럼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보고 연기 연습을 하다 보니 서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김범준 배우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 훈련하는 느낌이다. 실제 무대에선 호흡이 편안해지면서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세 배우(왼쪽부터 한일경, 허도영, 김범준)가 보여줄 조선 삼총사가 기대를 모은다.

올해는 서울시뮤지컬단 창단 6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인 만큼, 세 배우의 감회도 남다릅니다. 특히 “여러 단체가 함께 만드는 앙상블을 보면 여느 뮤지컬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강조했습니다. 한일경 배우는 “연극, 무용, 뮤지컬 등 장르 간 경계가 없어진지 꽤 됐다. 안무, 노래, 연기를 모두 다루는 뮤지컬 배우는 중간자적 위치에 서 있다. 여러 예술 장르 사이에서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의미와 의의를 지닌 공연입니다. 결국 공연의 성패는 결국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지면서, 얼마나 재미도 갖추었는지에 달려있을 겁니다. 세 배우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무겁고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익숙한 이야기들이 부딪힐 때 나오는 색다른 재미가 있거든요. 19세기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21세기 우리와도 닮아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깊게 공감하면서 유쾌한 흥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허도영, 한일경, 김범준)

_김기윤(동아일보 기자)
사진_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