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드라마 주인공 같은
줄리엣을 만나보세요”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세종문화회관이 시즌 첫 작품으로 준비한 무대는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치고 힘들었던 한 해를 뒤로하고 희망찬 새해를 꿈꾸는 관객에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 위 사랑 노래를 선사할 예정이다. 3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객석에 뜨거운 감동을 전해줄 <로미오와 줄리엣> 속 주역인 두 명의 줄리엣도 오랜만의 공연에 한껏 들떴다. 열심히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나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둔 설렘을 나눴다.  

Q.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많은 음악가들의 연주가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지난해 어떤 시간을 보냈나?

박소영: 지난해 3월 뉴욕 메트오페라단 공연이 예정됐는데 시즌이 모두 취소돼 한국에 일찍 들어왔다. 결혼도 하고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공연도 준비했다. 이번에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참여할 수 있게 돼 그나마 여러 기회가 주어졌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2019년 12월 이후 오페라 콘서트는 몇 차례 가졌지만 전막 오페라를 대면으로 진행하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이라 기대된다.

김유미: 지난해 4월 귀국독창회를 올해 같은 날로 미루게 됐고, <리골레토> 등 전막 공연들이 취소돼 주로 영상을 통해 오페라 공연에 참여했다. 나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매우 오랜만에 하는 전막 오페라 공연이다. 그동안 온라인 공연은 했지만 관객과 나누는 소통이 없으니 표현할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었다. 관객의 힘을 절실히 느낀 시간을 가진 뒤 이 작품을 만나 기쁘다.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밤의 여왕’으로 큰 사랑을 받은 소프라노 박소영은 ‘줄리엣’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Q. 소프라노 박소영은 <마술피리> ‘밤의 여왕’ 역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김유미도 프랑스 파리 시립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 및 국립고등음악원 석사·연주박사다. 두 분 모두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는 처음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작품이 갖는 의미를 각각 설명해 달라

박소영: 2013년 밤의 여왕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2019년까지 50여 차례 <마술피리>로 무대에 섰다. 밤의 여왕을 비롯해 <라보엠>의 뮤제타 등 음역대가 가장 높은 콜로라투라 역을 많이 했다가 서정적인 리릭으로 바꾸면서 줄리엣 역을 가장 해보고 싶었다. 콜로라투라적인 요소도 있으면서 갈수록 리릭 선율을 그려 내가 가진 목소리와도 잘 맞는다. 줄리엣은 성악가로서 인생의 전환 포인트가 되는 고마운 역할이다.
김유미: 항상 노래를 했지만 대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전막 오페라를 처음 봤다. 그게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줄리엣이 독약을 마시기 전 부르는 아리아를 보며 ‘이런 음악이 있었어?’라며 놀랐다. 아름다운 선율에 고난도 테크닉의 보컬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좋은 아리아가 왜 ‘줄리엣 왈츠(‘꿈 속에 살고 싶어’)’보다 유명하지 않은지 궁금했고, 항상 이 아리아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번번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며 기회를 잡지 못했다가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졸업 파티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줄리엣의 ‘독약’ 아리아로 오페라에 빠져들었고 언젠가 줄리엣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꿈을 꿨는데 그 꿈이 이뤄졌다.

Q. 이번 무대에서 줄리엣을 표현하기 위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박소영: 이 작품 속 줄리엣은 진취적이고 똑똑한 여성이다. 아버지가 결혼할 남자를 찍어주려고 하자 ‘나는 결혼에 관심 없고 내가 원하는 세상에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줄리엣 왈츠’ 아리아인데, 단순히 즐거운 왈츠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순종적인 느낌의 전형적인 줄리엣이 되지 않기 위해 헤어스타일도 현대적인 여성처럼 그리려고 한다.
김유미: 줄리엣과 로미오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면 굉장히 새롭고 놀랍다. 서로 한눈에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이름도 묻지 않고 키스까지 한다. 사랑을 확인한 뒤에야 서로가 누군지 알게 되고, 사랑을 시작해 결혼을 약속하는 것도 굉장히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 줄리엣은 사랑을 쟁취하는 데 매우 적극적인 여성이라 요즘 드라마에 나올 법한 현대적인 캐릭터로 표현할 예정이다.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줄리엣의 ‘독약’ 아리아로 오페라에 빠진 소프라노 김유미는 현대적인 느낌의 줄리엣을 보여주려 한다.

박소영: 모든 장면이 극적이고 빨라서 집약적으로 어떻게 감정 변화를 보여주느냐가 제일 어려운 과제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쉬는 시간이 거의 없고 음악도 갈수록 무거워지는 어려운 역할이다. 다이어트 대신 체력관리를 더 열심히 하고 있다.

Q. 작곡가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결말이 조금 달라진다. 이 결말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유미: 끝날 때 로미오와 줄리엣이 함께 노래하면서 숨을 거두는 오페라 결말이 희곡보다 훨씬 극적인 것 같아 좋다.
박소영: 두 시간 반 동안 두 사람이 ‘찐사랑’을 했다는 것을 다 보여주니 좋은 결말이다.

Q. 같은 배역을 맡은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도 클 것 같다. 영감을 받은 내용이나 서로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김유미: 박소영 선생님이 너무 잘하셔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둘에게 주어진 숙제가 변화무쌍한 줄리엣 심리를 빨리 캐치해서 원색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박 선생님이 정말 잘 보여주고 계신다. 등장할 때는 순수한 줄리엣을 보여주다 사랑에 빠질 때는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박소영: 김유미 선생님은 가만히 서있어도 그냥 줄리엣 같다. 상큼하고 귀엽다. 처음에 연습할 때 연출께서 밝고 귀엽고, 때묻지 않은 줄리엣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는데 김유미 선생님이 딱 그 모습이었다.

2021 세종시즌을 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줄리엣을 보여줄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를 만났다.

소프라노 박소영, 김유미가 어떤 줄리엣을 보여줄지 살펴보는 건 이번 공연 감상의 즐거움이다.

Q. 대중에게 이미 익숙하고 잘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을 지금 다시 공연하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관객들이 지금 이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

박소영: 대중적인 소재라 오페라를 모르는 분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라 누구나 편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새 시즌 작품인 만큼 힘들었던 시기를 더욱 밝게 북돋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제일 장점이 이번 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맡은 주역 대부분이 이 작품으로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얼굴과 신선한 목소리로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김유미: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을 떠나는 즐거움을 경험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페라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지시면 좋겠다. 이번 공연은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오페라 무대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에서도 벗어난다. 좀 더 보기 편하고 재미있는 드라마 같은 오페라를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_허백윤(서울신문 기자)
사진_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