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이고 있는 세종 체임버시리즈를 얘기하기 전에, 공연장 이야기로 운을 떼어볼까 합니다. 공연장마다 명칭이 있고, 그 명칭은 공연장에 적합한 장르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대극장’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같은 대형 예술을, ‘소극장’은 독주회가 주로 오르는 장소임을 알려주죠.
그렇다면 ‘체임버홀’은 무엇일까요? 체임버(chamber)란 ‘실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체임버 뮤직(Chamber Music)’은 곧 실내에서 연주하는 실내음악, 즉 ‘실내악’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체임버홀’이 어떤 음악이 오르는 공연장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실내악 전용 공연장을 뜻합니다. 세종문화회관에는 실내악을 전용으로 하는 세종 체임버홀이 있습니다.
한국 실내악의 중심지
실내악에 최적화된 공간이 있으니,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일까요. 바로 훌륭한 음악가들을 무대로 초청하는 것일 겁니다. 좋은 공간-좋은 기획-좋은 음악가. 이 3박자가 착착 맞는 것이 세종 체임버시리즈입니다. 2015년, 첫해에 양성원(첼로)을 상주 음악가로 선정한 이후, 임헌정(지휘), 김정원(피아노), 최나경(플루트) 등이 시리즈를 이어 나갔습니다. 작년에는 김다미(바이올린)와 문지영(피아노)이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선보였고, 노부스 콰르텟이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전곡을 두 번의 무대를 통해 선보였습니다. 전곡 연주를 통해 관객에겐 작품과의 깊이 있는 만남을, 음악가에게는 성숙의 계기를 제공했던 것이죠.
올해 시리즈에도 세 개의 무대가 준비 중인데요. 세종문화회관은 관객 호응도를 파악하고 고려하여,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의 무대로 구성했습니다. 이름하여 ‘K-클래식 제너레이션’. 6월의 클럽M, 10월의 에스메 콰르텟, 11월의 김동현과 신창용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클럽M’은 이번 세종 체임버시리즈의 문을 열며 화려한 귀국 인사를 건넬 예정이다.
6월, 여름의 앙상블 ‘클럽M’
2017년 결성된 클럽M은 일명 ‘여름의 앙상블’입니다. 그 이유는 국내외 무대와 오케스트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멤버들이 해외에서의 공연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 귀국하여, 클럽M을 통해 귀국 인사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재원(리더·피아노)을 주축으로 김덕우(바이올린), 고관수(오보에), 심준호(첼로), 이신규(비올라), 조성현(플루트) 등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진 클럽M은 ‘구성의 재미’가 돋보이는 앙상블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도플러가 작곡한 3중주곡 ‘안단테와 론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을 선사합니다.
또한 자체적으로 확보한 레퍼토리도 클럽M만의 자랑입니다. 손일훈을 상주 작곡가로 영입해 ‘이성’, ‘Mind Map’ 등의 자작곡을 선보여 왔는데요. 이번 공연에는 음악사 속의 명곡들을 편곡해 모음곡 형태로 연주할 예정입니다.
올해 세종 체임버시리즈에서는 ‘에스메 콰르텟’의 명품 연주를 만날 수 있다.
10월, 정상의 앙상블 ‘에스메 콰르텟’
최근 젊은 음악가들이 전해오는 콩쿠르 승전보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수많은 콩쿠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2018년 에스메 콰르텟이 승전기를 꽂은 런던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 4중주 콩쿠르도 그렇습니다. 1979년 첫 선을 보인 후, 3년 간격으로 진행되는 이 콩쿠르는 타카치 콰르텟, 하겐 콰르텟, 카잘스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등 세계적인 콰르텟이 우승 기록을 남긴 콩쿠르입니다.
에스메 콰르텟에서 제1바이올린과 리더를 맡고 있는 배원희는 위그모어홀에서 벨체아 콰르텟의 공연을 본 뒤, 본인도 콰르텟에 도전하고 싶어 본격적으로 멤버를 구성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하유나(제2바이올린), 김지원(비올라), 허예은(첼로)이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일출’이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작품 번호 76-4, 영화음악가처럼 유려한 선율을 뽑아내는 코른골드의 현악 4중주 2번과 슈만의 현악 4중주 1번을 선보이는 무대입니다. 특히 코른골드의 현악 4중주는 국내에서 듣기 힘든 곡입니다. 세종 체임버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에스메 콰르텟의 ‘명품 명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창용(왼쪽), 김동현(오른쪽) 듀오는 단단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11월, 낭만과 서정의 2중주 ‘김동현과 신창용 듀오’
보통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하는 무대라고 하면, 바이올린 독주회로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내악 전통에서 보면 두 악기는 동등한 입장에서 반반의 역할을 통해 하나를 이루는 ‘2중주의 실내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2중주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 형식입니다.
작년에 김다미와 문지영이 선보인 듀오 무대를 올해는 김동현(바이올린)과 신창용(피아노)이 이어갑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슈베르트의 소나타 1번, 브람스의 소나타 1번, 슈만의 3개의 로망스, 프랑크의 소나타를 선보이는 무대입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단단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신창용을 보러 왔다가 김동현에게도 매료되고, 김동현을 좇아갔다가 신창용에게도 빠져들며 팬층의 즐거운 교란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네요.
숨소리도 음악이 되는 순간
누군가 “실내악은 있는데, 왜 ‘실외악’은 없나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사실 실내악이란 명칭은 왕과 귀족의 사적인 ‘실내’에서 연주하던 역사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실내에서만 연주한 것은 아닙니다. 집의 정원이나 거리의 광장 같은 야외에서도 실내악곡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음악 형식의 습성상, 연주자들의 긴밀한 유대와 음악적인 대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아늑한 분위기의 넓지 않은 실내를 선호했던 것이 실내악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실내, 즉 좋은 공연장은 필수입니다. 때로는 현악 연주자들이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뱉는 소리로 신호를 내서 여러 대의 악기가 동시에 시작하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음악을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부터 음악과 어우러지는 섬세한 소리를 세종 체임버시리즈에서 만나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