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오! 나의 토스카

서울시오페라단의 제57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토스카〉에서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할 토스카, 소프라노 김라희, 임세경, 정주희를 만났다.

Q.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토스카>는 당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김라희 독일에서 활동하다 2011년 귀국해, 2013년 글로리아 오페라단에서 주최하는 <토스카>로 데뷔했다. 첫 귀국 콩쿠르에서 2등을 했고, 다음해 1월 양수화 단장님께서 <토스카> 무대를 제안해주셨다. 지금도 참 감사하다. 독일에서 메조 소프라노로 활동하다 소프라노로 전향해 몸의 습관과 근육을 다 바꿔 써야 하는 힘든 상황이어서 그해 예정돼있던 독창회도 고사하고 <토스카>에 매진했다.
임세경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토스카>에서 처음으로 토스카 역을 맡았다. 그때 유럽에서는 나비부인은 동양인이, 토스카는 금발의 서양인이 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어 조그만 동양인이 토스카를 하게 되자 큰 이슈가 됐다. 덕분에 많은 분이 호기심을 갖고 봐주고, 유럽에 내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돼서 <토스카>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2014년 이후 세종에서는 두 번째로 <토스카>를 하게 됐다.
정주희 <토스카>는 처음이다. 워낙 어려운 작품이라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마흔 이전에는 토스카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운동으로 치자면 체급을 올려서 임해야 하는 경기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베테랑 배우 두 분에게 많이 배우면서 하고 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제57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에서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할 토스카, 소프라노 임세경, 김라희, 정주희를 만났다.

소프라노 임세경은 최초의 동양인 토스카로 유럽에서 화제를 모았다.

Q. 임세경과 김라희 소프라노에게 이전의 <토스카>와 이번의 <토스카>는 어떻게 다른가?

임세경 매번 다르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예정돼있던 일곱 개의 해외 공연이 취소됐다. ‘쉬라는 계시가 아닐까’하고, 노래와 체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대에 오른 지 20년이 흐르다 보니 초심을 잃기도 했는데 공연을 굶고 나니 무대와 관중도 그립더라. 그런 시기에 하는 오페라여서 그동안 축적해둔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무뎌졌던 초심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김라희 극히 공감한다.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악기를 정비한 느낌이다. 또 이번 작품에서는 최지형 연출가와 김덕기 지휘자의 세심한 연구에 감격했다. 처음 작품 프레젠테이션 때 작품의 역사부터 푸치니의 캐릭터와 그의 지인들, 푸치니가 작품을 썼을 때 상황 등을 빠짐없이 연구해서 보여줬다. 그동안 푸치니의 마인드를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기에, 두 시간의 프레젠테이션이 10분처럼 느껴질 만큼 빠져들었다.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무대에 선다는 느낌. 존경스러운 연출가, 지휘자와 작품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다시 신인이 된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몰두하고 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제57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에서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할 토스카, 소프라노 임세경, 김라희, 정주희를 만났다.

토스카의 열정적인 사랑과 희생은 소프라노 김라희의 사랑 방식과 닮았다.

Q. 이번 공연에서 각자의 토스카를 어떻게 해석하고 준비하고 있나?

김라희 <토스카>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정치적인 상황에 휘말리고, 누군가 죽고, 자살하는 많은 이야기가 하루 만에 벌어진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도 없을 만큼. 이런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내 경험으로 녹여내 노래할 계획이다. 사랑하고, 상처받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연륜이 <토스카>를 통해 나올 것 같다. 나는 남자친구를 보호하려고 싸워본 적도 있을 만큼 사랑에는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토스카의 모습이 내 캐릭터와 일치한다. <토스카>는 갈라 쇼까지 포함해서 네 번째인데, 하면 할수록 토스카가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느낀다.
임세경 임세경의 토스카는 ‘디바’다. 화려한 디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전주 출신의 임세경이 살면서 배웠던 경험이 발산되는 임세경만의 유일한 디바다. 이번 작품에서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가수는 가식적이지 않게 타고난 대로 노래하는 게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정주희 토스카 자체가 오페라 가수의 인생을 담고 있다. 불같이 사랑하고, 연주와 공연을 책임지고 끌고 나가기도 하고. 오페라 가수로서 더 공감이 가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정주희의 토스카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 처음이기 때문에 문장이나 곡에 대한 연구를 마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제57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에서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할 토스카, 소프라노 임세경, 김라희, 정주희를 만났다.

소프라노 정주희는 성악을 시작할 때 토스카의 아리아를 듣고 느꼈던 감동을 관객에게 전하려 한다.

Q.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은 토스카가 사랑과 비극에 절규하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무척 기다릴 것이다

김라희 몸싸움하고 숨이 찬 상태에서 4분도 안 되는 아리아에 눈물과 절규를 쏟아내야 한다. 그야말로 감정의 엑기스만 뽑아내는 거다. 성악은 몸이 악기니까, 악기를 뛰면서 연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토스카>를 많이 해왔지만, 백 번을 했든 천 번을 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백 번을 해도 백한 번째 잘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늘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아리아에서는 단어 하나하나에 사랑과 절망과 비극을 눌러 담아서 보여주고 싶다.
임세경 모든 아리아가 그렇듯 감정을 담아내기도 어렵지만, 전후 상황에서 아리아로 이어지는 순간이 힘들다. 이번 아리아는 감정이 북받혀 몸싸움을 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황에 순간적으로 격한 감정을 내려놓고 신한테 투정을 부리는 장면이다. ‘이따 아리아 해야 하니까 살살 움직여야지’ 할 수도 없고(웃음). 이번 무대에서는 체력적인 한계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힘껏 사랑하고, 힘껏 싸우고, 힘껏 기도하고. 모두 힘껏 쏟아부어도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토스카에 몰입해서 부르고 싶다.
정주희 성악을 처음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아리아를 처음 들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가장 감명받은 아리아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받았었던 감동을 관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그 목표에 완벽히 닿을 순 없겠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고 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제57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에서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할 토스카, 소프라노 임세경, 김라희, 정주희를 만났다.

3인의 토스카는 공연예술계에는 희망을, 관객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Q. <토스카>는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 서울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다른 의미로 위태롭다. 이번 작품이 어떤 의미를 전달했으면 하나?

김라희 성악뿐만 아니라 모든 클래식 음악은 깊이와 감동을 가지고 있다. 화려함보다는 고전적인, 가벼움보다는 깊이가 있는 곳에 감동이 있지 않나.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상처받고 힘든 마음도 치유될 거라고 믿는다. 이번 작품으로 예술의 힘과 역할을 증명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다.
임세경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타격을 입은 게 공연예술계다.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이 생계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그런 공연예술계에 힘을 줬으면 한다. 외국에서도 놀라워할 만큼 이런 시기에 큰 극장에서 대작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심해지지 않아서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른 단체들도 ‘서울시오페라단이 이 시국에 해냈구나’ 하고 힘을 얻으면 좋겠다.
정주희 나무 한 그루는 존재감이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무가 모인 숲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모여 숲이 되고, 숲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선물한다. 힘든 시기에 음악으로, 예술로 위로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_신은정(<문화공간175 편집팀>)
사진_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