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공연계, 무사한가요?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우울한 일상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축 처지는 하루하루입니다. 이럴 때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예술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지만 삶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는 ‘방역’이 제1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많은 공연 작품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공연계 종사자들은 특히나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존재를 증명할 무대가 자꾸 사라져 속상하고 ‘팬데믹’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코로나 블루’에 휩싸인 예술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을까요.

강효형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뮤지컬 <머더 발라드>의 배우 이건명, 연극 <그을린 사랑>의 배우 백석광,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에게 허심탄회한 속내를 물어봤습니다. 김동균 세종문화회관 무대감독, 류승각 서울시합창단 부수석의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쉽게 희망을 말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무기력해져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오늘도 무대를 준비한다고.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서 예술의 가치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세종문화회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안전한 공연 관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해왔다. 이번에는 QR코드 안내원, ‘스피드 게이트’다.
세종문화회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안전한 공연 관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해왔다. 이번에는 QR코드 안내원, ‘스피드 게이트’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국립발레단 강효형은 공연 취소로 착잡한 기분을 애써 잊으며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기약 없는 공연일지라도

“지난달 선보이려던 <허난설헌-수월경화>는 천재성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개막을 이틀 앞두고 ‘취소 통보’를 받았는데,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자꾸 잃어버리는 우리 무용수들의 현실과 닮은 것 같아 막막해지더라고요.” <허난설헌>의 안무를 맡은 국립발레단 강효형은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가 믿기지 않는 듯 아직도 작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감염병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드디어 관객을 만나는구나’라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준비했다”라는 그는 “이런 암흑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착잡하고 아득한 기분”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허난설헌> 후반부에 꿈 장면이 나와요. 주인공이 죽음을 예감하는 대목인데, 그 장면의 안무를 짜면서 삶이 지치고 힘들면 꿈에서도 희망을 품기 힘들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실제로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무리 지쳐도 무기력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9월 말에 <베스트 컬렉션>이라는 제목의 갈라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또 취소될지 모르지만 취소되기 전까지는 예정된 공연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단원들과 이야기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서울시합창단 류승각 부수석은 “언제 무대에 다시 오를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종문화회관 소속 단체인 서울시합창단의 류승각 부수석도 “사기가 떨어진 단원들을 독려하고 용기를 북돋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지난 2~3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재택근무를 했고, 광복절을 기점으로 감염병이 재확산하면서 지금은 절반으로 나눠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출근한 단원들도 마스크는 물론 고글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연습해요. 올해 4~5월 공연은 모두 취소됐고, 8월에 계획했던 대극장 공연은 잠정 연기된 상태예요. 이번 서울시합창단 <신나는 콘서트>에서는 영화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 등의 OST를 담당한 정현수 음악감독이 영화음악을 합창음악으로 편곡해 꾸미려고 했어요. 노래 가사에도 ‘코로나 극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고요. 언제 무대를 올릴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보여드릴 거고, 지금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두려운 배우들

LG아트센터가 준비하다가 내년으로 연기한 연극 <그을린 사랑>의 배우 백석광은 “올해 취소되거나 조기 종영된 작품만 벌써 네 번째”라며 “‘강제 안식년’이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공연이란 사람이 모여야 가능한 집단 예술인데 사람이 모이는 게 위험한 시대가 됐잖아요. 먼 미래에 ‘옛날엔 그렇게 모여서 공연도 보고, 떠들고, 웃을 수 있었지’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져요.”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배우 백석광은 “북적거리는 공연장을 다시 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말한다.

일시 중단된 뮤지컬 <머더 발라드>의 배우 이건명은 ‘언택트’가 앞으로 공연의 중심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불안감을 내비쳤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라이브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대면 공연으로 계획했다 상황이 심각해져 무관중으로 전환했죠. 관객의 눈빛을 보면서 교감하지 못하고, 객석 앞에 덩그러니 놓인 카메라만 보면서 노래하려니 흥이 안 나더라고요.” 사랑과 욕망을 다룬 <머더 발라드>를 “뮤지컬판 <부부의 세계>”라고 소개한 그는 “파국으로 치닫는 작품과 달리 현실에선 부디 사람 사이에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 다시 반갑게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습니다.
이건명은 공연계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얘기도 가감 없이 들려줬습니다. “정말 답답하죠. 감염병 사태가 터지고 나서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어요. 배달 일도 하고, 특히나 배우들은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이니 물류센터 같은 데서 힘쓰는 일도 많이 한다더라고요. 최근엔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아들이 뮤지컬 배우인데, 모두 힘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일거리를 줄 테니 친구들 다 데려와라’고 했다고···. 그야말로 ‘웃픈’ 일화죠.”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공연계를 돕는 정부와 지자체의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면서도, 이건명은 당장 생계의 어려움보다 예술가를 지치게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생계도 중요하죠. 하지만 대다수 무명 배우, 그리고 이름 없는 스태프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수입이 넉넉했던 적이 없어요. 무대 자체가 사라지는 것,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언제쯤 끝난다는 기약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힘 빠지게 해요. 요즘 배우들끼리 만나면 공연계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해답은 전혀 없죠. 그저 신세 한탄만 하다가 헤어져요.”

공연계는 희망의 대책이 필요하다

세종문화회관의 김동균 무대감독이 전하는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공연이 계속 취소되면서 수입이 3분의 1 정도는 줄어든 것 같아요. 5~6월만 해도 ‘조금만 더 정부와 시민들이 노력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 7월엔 좀 괜찮아지는 분위기였는데 다시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앞으로는 민간의 대형 기획사나 제작사들도 공연 취소를 결단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수 있어요. ‘띄어 앉기’라는 지침을 계속 준수해야 하면, 도저히 수지 타산을 맞추기 힘드니까요.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공연예술계에 대한 지원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 종사자들이 위태롭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 공연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세종대극장에서 무대예술인과 관객이 하나 되는 그날을 그려본다.

동료 제작자들과 손잡고 공연계 종사자들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쇼 머스트 고 온>을 준비 중이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역시 정부를 향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요청했습니다. 공연을 강행하는 제작사들이 의무적으로 준수하고 있는 ‘거리두기 좌석제’는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뮤지컬의 경우 객석 점유율이 보통 70% 안팎이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한 칸씩 띄어 앉기는 손해를 감수하고 공연을 올리는 셈입니다. 거리두기 의무화는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정부가 부가가치세 면제나 대관료 지원 같은 별도의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_나윤석(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