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3인 3색, 〈모차르트!〉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모차르트!〉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서 그려낸 모차르트

21세기 서사엔 영웅이 없다. 장르를 막론하고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비범함과 후광이 이전에 비해 흐릿해졌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맨들은 절대적인 힘과 정의감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전형이었지만 근래의 그들은 다르다. 다들 내면에 어두운 면모를 가지고 있어 걸핏하면 인격 장애에 가까운 형태로 발현되고, 악당에게 농락당하며 굴욕을 겪는 일도 흔하다. 근래의 관객은 그런 면에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자신을 이입하곤 한다.
이는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반도 역사에서 으뜸가는 영웅인 이순신도 예외일 수 없다. 과거의 이순신은 성웅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절대적인 지략과 무예에 충성심까지 더해진 완전체로 인격도 출중해야만 했다. 지금은 이런 서사가 힘을 쓰지 못한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선 실존적 고뇌자로서 매순간 인내하고 버티며 간신히 적을 물리치고, 영화 <명량>에선 아예 백성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한다. 박제된 민족주의 영웅은 작가와 대중 모두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물갔다는 소리.

뮤지컬 <모차르트!> 1999 작품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 놓여 있고, 이를 반영하듯이 시대의 서사가 반반 섞였다. 어릴 때부터 천의무봉의 음악을 쉬듯이 작곡한 천재 모차르트의 전형, 천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해줄 것을 갈구하는 보통의 인간이 번갈아 등장한다. 작품의 서사는 어느 쪽에도 무게를 기울이지 않고 경계에서 거리, 들을 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며 대중예술의 본연을 추구한다. 만약 20세기 서사라면 (영화 <아마데우스> 그랬듯이) 천재와 범인의 대비나 당대 관습과의 대립을통해 모차르트의 비범함과 위업을 그리는 집중했을 것이고, 21세기 서사라면 그의 인격적 결함과 약한 모습을 조명해 평범한 인간의 면모를 드러내는 주력했을 것이다.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아버지의 죽음 부르는 모차르트 역의 김준수 EMK Musical Company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사랑하면 서로를 수가 있어 열창하는 모차르트 역의 박은태 EMK Musical Company

모차르트를 소재로 삼는다면 그 어떤 이야기도 자유자재로 빚을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용할 수 있는 명곡도 수두룩하기에 뮤지컬 소재로는 치트 키(cheat key)에 가깝다. 친숙함에 편승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작품을 얄팍하게 찍어내기 쉽단 뜻이다. 하지만 뮤지컬 <모차르트!>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밤의 여왕 아리아 한 곡을 제외하면 철저히 병풍 수준으로 활용한 오리지널 작품으로 자체적인 완성도를 일정 수준 갖췄고, 서사에도 1999년 시점의 관점과 트렌드가 녹아 있다. 험난한 세계에서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 민영기, 신영숙처럼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시킨 배우들과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홍형진(소설가)

삶의 분투

나는 재능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꾸준한 것보다 나은 재능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게 자극을 가져다준 것은 잠재력이 계발되고 개발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몇몇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면 타고나는 것에 대해 순순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그리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
그러나 뮤지컬 <모차르트!>10주년 공연을 볼 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놀라운 재능이 아니었다. 예술가의 욕망과 그것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뇌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땅 위에 산다. 땅 위에서는 땅의 일을 해야 한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역할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분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는 경제적 활동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사랑에 빠져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천재성을 상징하는 아마데와 더불어 작곡을 해야 한다. 다른 것은 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 속해 있지만, 작곡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무에서 창조한 유로 다시 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생활하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모차르트!>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무관하지 않다. 모차르트에게 (you)이면서 (, 말미암을 ) 존재한다. 모차르트가음악 없는 삶을 상상할 없다고 말할 , 아버지인 레오폴트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돌볼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모차르트의아내 콘스탄체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오랜 무관심에 상처받는다. 콘스탄체의 부모는 모차르트에게 자꾸 금전을 요구한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자신을 위한 작품을 만들라고 종용하며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려 든다. 등장인물들의 연기와 노래는 극이 진행될수록 앙상블이라는 말이 지향하는 통일 상태에 가까워진다. 통일 상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갈등, 역설이 <모차르트!> 지닌 귀중한 생명력이다. 순간도 정신을 데로 돌릴 없다.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욕망과 그것이 발현되는 과정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린다.
EMK Musical Company

모차르트는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운다. 그럴 때마다 음악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커진다. 그 간극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그는 음표 하나라도 더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생전에 쉬는 것보다 작곡하는 것이 덜 힘들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한다라고 말한 사실은 유명하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에 작업하던 작품이 <레퀴엠>이라는 사실은 자못 역설적이다. 레퀴엠은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인데, 그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1996 노벨문학상 수상 심사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무엇을 겸비했다”. <모차르트!> 보고 직후, 심사평이 떠올랐다. <모차르트!>, 다듬어진 이야기에 폭발하는 힘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오은(시인)

10년이라는 시간의 힘

뮤지컬 <모차르트!>에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여섯 번의 시즌에 총 3명의 연출가가 참여했다. 레플리카(replica) 방식으로 들어온 해외 뮤지컬은 본국에서 리바이벌된 버전이 아닌 이상, 전 세계 어디서든 같은 연출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공연된다. 대본과 음악만 가져온 논레플리카(non-replica)의 경우라 하더라도,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대체로 동일한 연출가와 시즌을 이어간다. 작품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연출가 유희성, 아드리안 오스몬드, 코이케 슈이치로가 거쳐간 <모차르트!>는 과격하게 말하면 매 시즌 다른 색으로 관객을 만난 셈이다. 하지만 이 말은 그만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프로덕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컬 .

<모차르트!> 무대 위의 모든 요소에는 지난 10년간의 경험이 배어 있다.
EMK Musical Company

2020년의 <모차르트!>는 지난 10년간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변화한 세트와 조명은 무대의 완성도를 높임과 더불어 캐릭터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구축해냈다. 잦은 공간의 변화에도 회전무대와 영상을 이용한 매끄러운 장면 전환이 이루어졌고, 김문정 음악감독과 배우들의 찰진 호흡으로 음악에는 더 힘이 실렸다. 인물 간의 관계가 단단해졌고, 작품이 지나온 시간은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캐릭터의 면면으로 증명됐다.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의 관계는 개인 간의 대립을 넘어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닿는다. 대중을 위한 음악을 하는 모차르트와 소수만을 위한 음악을 요구하는 콜로레도 대주교의 갈등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묻는다. 악처로 알려진 콘스탄체와 모차르트를 이용한 그의 가족 역시 이들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림으로써 서사에 힘을 실었다. 짜임새 있게 구축된 관계 안에서 모차르트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10명의 모차르트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무대에 서온 배우 박은태는 넓은 음역대와 아찔한 고음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여기에 그는 정확한 딕션으로 모차르트가 느끼는 환희와 부담감, 외로움과 고단함을 음표에 적확하게 담아 객석에 전달한다. 무대 위의 모든 요소가 정확한 목표 아래 군더더기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10년이라는 시간의 힘이다.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