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우리의 삶이 그림이 된다면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에바 알머슨 Vida〉는 일상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은 경험해야 할 여행이지 해결해야만 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다.” 곰돌이 푸(Pooh)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많은 교훈 중 하나다. 스페인 출신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én)은 작고 노란 곰의 말에 주저 없이 동의할 것이다. 자신과 주변인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알머슨이 화폭에 옮기는 장면들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들을 새롭게 음미하게 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가장 보통의 행위를 하는 그들 대부분은 미소를 짓고 있다. 뭔가 특별하고 근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휴식과 여유, 놀이에 목마른 이들의 부러움을 자아낼만한 표정이다. 담백한 이목구비를 한 둥그런 얼굴의 사람들에겐 고단한 일이라고는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이런 볼멘소리로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답한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내 그림에 웃는 얼굴이 가득해 항상 재미있고 신나게 살 것 같지만, 내 삶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갈등도, 힘든 일도 있다.”

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는 일상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Love>

이번 전시는 ‘영감(Inspiration)’, ‘삶의 조각(Part of the landscape)’, ‘가족어사전(Family lexicon)’, ‘내 마음이 말할 때(What is happening to me)’, ‘모두 식탁으로 모여봐(Everybody to the table)’, ‘자연(Nature)’, ‘삶의 실타래(Thread of life)’, ‘우리(Us)’, ‘행복을 찾아서(Evasions)’, ‘기쁨(Happiness)’이라 이름 붙인 이름 붙인 1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실마다 창작의 모티브나 일상, 자연, 휴식, 관계 등 알머슨의 작품 세계를 갈무리하는 주요 키워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최신작을 포함한 유화와 드로잉뿐 아니라 설치, 미디어아트 등 총 15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

삶의 발자국, 그리고 ‘우리’

전시의 첫 페이지인 ‘영감’의 방에서는 작가의 심장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녀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을 ‘새가 날아드는 모습’에 비유하곤 한다. 관람객들은 귀여운 새가 물고 온 비밀스러운 씨앗이 어떤 그림으로 자라났을지 추측하면서 알머슨이 준비한 예술 여정을 시작하면 된다. ‘삶의 조각’ 방부터는 본격적으로 영감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살면서 지나온 모든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 내부에 남고, 그 조각들을 맞춘 풍경처럼 저마다 삶의 무늬가 생겨난다. 그렇게 존재의 궤적을 형성하는 유무형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하트 모양의 문과 맞닥뜨린다. 바로 ‘내 마음이 말할 때’ 방의 입구다. 사랑, 그리움, 부끄러움 등 깊이 숨겨둔 감정들을 꺼내어 관찰할 수 있는 세 번째 방에는 그림, 영상, 음악,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방들에서는 빔 프로젝터 화면을 통해 알머슨의 남편인 음악가 마크 패롯(Marc Parrot)의 음악과 함께 애니메이션도 감상할 수 있다.

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는 일상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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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fly>

한껏 고조된 감정을 안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동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모두 식탁으로 모여봐’는 전혀 다른 식습관을 가진 6명의 아이가 각자의 취향대로 음식을 즐긴다는 내용을 담은 동명의 그림책을 3차원에 그대로 재현한 듯한 섹션이기 때문이다.

이제 잠시 숨을 고르며 ‘자연’ 방을 거닐 차례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의 일원으로서 어깨에 짊어진 책임과 의무는 살포시 내려놓고 커다란 나비와 만발한 꽃들, 솜털처럼 부드러운 새들과 하나가 되는 상상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회복된 생명의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을 테다.
건강한 고독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지만, 역시 누군가와 함께할 때 기쁨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알머슨 또한 ‘우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있음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내가 될 수 있는 소속감을 주는 가족, 친구, 동료들과의 교감과 상호작용을 그린 ‘우리’ 방에서 만큼은 잠시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는 일상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Life 2>

우리의 행복은 잔잔한 일상에

이어지는 ‘행복을 찾아서’는 작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담긴 대형 벽화와 조각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행복은 헤아리려고 할 때마다 새삼스러워지는 단어다. 오랜 세월 답을 찾기 어려운 과제처럼 행복을 정의하려 애쓰고, 그 효용과 실현의 방법을 논하는 철학자, 심리학자, 예술가 등이 이 주제에 매달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알머슨은 행복을 멀리에서 찾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은하수처럼 흩어진 색색의 조각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가까이에서 지저귀는 파랑새와 만날 수 있다는 진리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마지막 방에 이를 때쯤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동행한 말벗과 헤어질 때 피어오르는 아련함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먼 유럽에서 온 예술가가 들려주는 스토리가 결국 나의 것일 수도 있구나, 잔잔한 일상의 아름다움이 언제든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마음이 생겼다면 오늘의 전시 관람은 이것으로 충분하겠다.

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는 일상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a walk>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요리를 할 때, 식물을 가꿀 때, 일에 몰두할 때, 땀 흘리며 운동할 때 저마다의 행복이 숨어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머슨의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들은 조용히 그 사실을 다시 생각해내라고 속삭일 뿐이다. 힘들게 색다른 자극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일상을 돌보고 가꾸라고, 아끼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온기를 나누라고 말이다.
손과 발이 묶인 듯 답답하고, 원하는 대로만은 살 수 없는 곤란한 시절이다. 그렇다고 낙담하지는 말자. 온갖 말썽이 일어나는 시끌벅적함과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무료함이 교차하는 당신의 매일매일은 정성 들여 그릴 가치가 있는, 오래 기억되어야 마땅한 나날들이므로.

_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