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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의 새로운 도약, <동무동락-허행초>

올해 2회째를 맞는 서울시무용단의 동무동락 시리즈가 성대하게 공연되었다.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 최현을 기리는 공연 <동무동락-허행초>다.

요즘 서울시무용단의 새로운 도약에 대한 무용계와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 독자적인 레퍼토리 확립, 단원 역량 강화 뿐 아니라 예술적 방향에서의 균형감까지 여러 면모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무용단 중 하나로서 서울시무용단의 가능성을 <동무동락-허행초> 공연에서 또 한번 목격할 수 있었다.

재도약기를 맞이한 서울시무용단

1974년 창단되어 올해로 45주년을 맞이한 서울시무용단은 문일지, 배정혜 단장 시절인1980-90년대에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다. 국립무용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혁신적인 안무에 있어서는 좀 더 앞서 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현대적인 감각의 창작에 대한 무용계와 관객들의 신뢰와 주목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동무동락>은 올해 2회째를 맞는 서울시무용단의 전통춤 기획 공연이다.

2000년대 들어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고무적인 일은 연륜 있는 단원들을 중심으로 쇄신을 위한 자문회, 합평회 등의 노력이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신임 단장이 임명되었을 때 빠른 재정비를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었다. 올해 초 정혜진 단장이 부임한 후, 5월에 열린 첫 번째 정기공연 <놋-N.O.T>을 통해 서울시무용단의 재도약에 대한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서울시무용단은 최근 십년 간 현대적인 감각의 창조적 시도에 몰두해왔다. 동시대적인 감각의 창작을 추구할 때는 전통에 근거해 기본을 다져가며 균형을 맞춰가는 것은 중요하다. 작년 가을 첫 선을 보인 ‘동무동락’ 시리즈는 새로운 창작에 몰두하는 동안 그 균형을 완성해 줄 수 있는 기획공연으로 주목받았다.
함께 춤추고 함께 즐긴다는 뜻을 가진 ‘동무동락(同舞同樂)’은 올해 제2회째를 맞이하며, 10월 10-1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허행초’란 부제로 신무용의 대가 최현의 춤들을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러 갈래의 전통춤이나 신무용 등을 섞어서 펼치는 단순 갈라 형태의 공연에서 벗어나 최현이 안무한 십여 개의 춤들을 재구성해 놓았다는 점에서 기획공연의 주제와 의미, 전개상의 통일성, 역사적 가치가 돋보였다.

<동무동학-허행초>는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 최현의 작품들을 충실하게 재현하거나 재해석했다.

어느 시대건 멋스럽고 고고한 최현의 춤 세계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최현(1929-2002)은 조택원과 송범을 잇는 남성 신무용가로서, 우리의 전통적 소재를 자연스럽고 섬세하며 품격있는 신무용으로 구현하였다. 활동 반경도 넓어 신무용을 비롯해 창극, 마당극, 뮤지컬 등을 넘나들면서 100여 편의 작품을 안무한 바 있다.
‘동무동락-허행초’에서는 최현의 작품들 중 <기원>, <허행초>, <약동>, <태평소시나위>, <한량무>, <남색끝동>, <신명>, <미얄할미>, <고풍>, <연가>, <군자무>. <신로심불로>, <비상> 같은 주요작들을 펼쳐 보였다. 이번 기획공연의 부제이자 최현의 대표작인 <허행초(虛行抄)>는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영태가 최현의 춤에 헌사한 동명의 시를 두고 훗날 최현이 화답하듯 만든 춤이다.
열세 개에 달하는 소품들의 일부는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되었으며 몇몇 작품들은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되기도 하였다. <한량무>, <신명>, <비상> 등의 작품들은 유족인 한국무용가 원필녀의 고증을 받아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했고, <기원>과 <허행초>, <약동>, <고풍> 등은 정혜진 단장의 지휘 아래 당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되었다. 후자의 경우 두 개의 작품을 엮거나 독무를 군무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21세기의 관객들이 보다 다채로운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도록 다시 구성했다. 최현의 제자였던 정혜진 단장은 원작의 풍취를 살리는 한편 새로운 감각을 더한 재안무로 ‘동무동락-허행초’라는 기획공연을 다채롭게 완성시켰다.

최현의 제자였던 정혜진 단장의 지휘 아래 13개 소품은 다채롭게 완성됐다.

서울시무용단, 최현의 춤을 완벽하게 구현하다

최현 춤의 특징은 풍부한 동작성이다. 편안한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도 호흡이 매우 깊다. 완전히 채우고 비우는 호흡법은 한국무용의 기본으로도 여겨지는데, <동무동락-허행초>의 무용수들은 한국적 호흡법을 탁월하게 실현했다.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의 역량 강화를 여실히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뛰어난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신로심불로’의 한수문은 단연 돋보였다. 삶의 희로애락, 한국춤의 멋과 흥, 소우주적인 존재감, 남성춤의 풍유와 기개 등을 한데 아우르며, 깊고 풍부하지만 과하지는 않은 바로 그 지점을 추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 시기의 유행을 넘어 어느 시대건 멋스럽고 고고하게 느껴지는 최현의 춤을 가장 잘 구현해낸 순간이었다.

<동무동락-허행초> 공연 중 한국춤의 멋과 흥이 풍부하게 드러난 ‘신로심불로’의 한 장면.

<동무동락-허행초>는 서울시무용단의 단장으로 재안무를 맡은 정혜진, 유족으로서 고증 및 지도를 맡은 원필녀, 유려한 라이브 연주를 이끈 음악감독 유인상, 춤 역량이 한층 탄탄해진 서울시무용단원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성과다. 올해 봄 정기공연과 가을 기획공연을 통해 서울시무용단의 재도약기에 대한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대와 전통의 균형을 앞으로도 수준 높게 이어가길 바란다.

_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