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말과 음악의 다리 위로

우리말로 만든 창작 오페라를 꾸준하게 선보여온 세종 카메라타가 2019년 7월 3일부터 6일까지 <텃밭킬러>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온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 카메라타’는 창작 오페라 개발을 위해 작곡가, 작가, 성악가들이 뜻을 모아 2012년부터 시작한 창작 워크숍이다. ‘카메라타’란 16세기 말, 고대 그리스극의 부흥을 위해 피렌체의 바르디가(家)에 모인 작곡가·시인·학자·예술 애호가들의 그룹명이다. 여기에 우리말 창제자 ‘세종’의 이름이 붙었으니, 오늘날에 걸맞는 ‘우리말 오페라’를 제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창작 워크숍이라 할 수 있겠다.

세종 카메라타, ‘우리말 오페라’을 위한 인큐베이터

세종 카메라타는 2012년 4명의 작곡가와 4명의 극작가가 워크숍을 거친 후 2013년에 4편의 창작오페라를 리딩 공연으로 세종 체임버홀에서 선보였다. 그중 최우정·고연옥의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 2014년 정식 오페라의 옷을 입고 세종 M씨어터에 올라 그 해의 수작(秀作)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작품 외에 제작 과정도 화제를 낳았다. 제작, 리딩 공연, 수정, 초연, 재연의 과정이라는 촘촘하고 꼼꼼한 제작과정을 노출시켜 중간 점검 없이 마구잡이로 대형 무대에 올리는 창작오페라 제작 진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2015년에는 작곡가 최명훈과 극작가 박춘근의 <열여섯 번의 안녕>이 리딩 공연을 통해 수정과 보완을 거친 후 2016년 정식오페라의 옷을 입고 세종 M씨어터에 오르기도 했다.

세종 카메라타는 창작 오페라의 고질적 문제인 음악과 언어의 ‘이음새’에 대한 연구와 자연스러운 결합에 대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오페라의 성장과 발전의 역사에서 언어와 음악의 끈끈함은 발전의 역사에 비례해왔다. 19세기 서양의 오페라도 문학과 그 속의 언어를 흡수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그래서 19세기의 오페라는 ‘문학 오페라(Literature Opera)‘로 통용되기도 한다. 21세기 서울의 세종 카메라타가 내놓는 창작 오페라들은 희곡을 토대로 한다. 작품성과 우리말의 표현력이 입증된 연극을 세종 카메라타의 인큐베이터를 거쳐 창작 오페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텃밭킬러>도 2012년 연극 무대로 첫 선을 보인 극작가 윤미현의 작품이다. 세종 카메라타의 세 번째 작품을 위해 윤미현의 ‘언어’에 작곡가 안효영이 ‘음표’를 붙였다.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단장, <텃밭킬러> 작곡가 안효영

‘텃밭킬러’는 우리 주위에 있다

<텃밭킬러>는 작은 구둣방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수음이네 이야기다. 구두를 닦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손님들에게 받은 멸시로 인해 정신줄을 놓고 늘 술에 빠져 있는 ‘진로’(바리톤), 결혼하고 싶지만 방 얻을 돈이 없어 작은 구둣방에 이층침대를 끌고 들어와 신접살림을 차린 진로의 첫째 아들 ‘청년’(테너)과 그의 연인 ‘아가씨’(소프라노), 중학교에 가려면 등산할 때 입는 값비싼 점퍼가 필요하다고 떼쓰는 ‘수음’(테너)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은 ‘골륨’이라는 부르는 ‘할머니’(메조소프라노)가 남의 집 텃밭에서 훔쳐온 고추, 토마토 등을 내다 팔아 번 돈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이 가족의 유일한 재산은 골륨의 입 속에 있는 금니 세 개. 각 자의 욕망으로 골륨의 금니를 탐하고 노리고, 그래서 골륨의 행보를 걱정한다.

<텃밭킬러>의 주제를 두고 작곡가 안효영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절로 한숨이 뿜어져 나옵니다.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지탄과 함께 연민도 갖게 되지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자고 이 사회 구성원들은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것일까요? 눈은 웃고 있을 수 있으나, 마음까지 웃을 수만은 없는 게 이 작품입니다.”

강렬한 캐릭터들의 조화

주인공들의 대사는 하나 같이 툭툭 던지는 투다. 자신의 처지에 비관적인 만큼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냉담하다.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그들만의 언어’지만, 그 행간 사이로 어느 순간 사회와 그에 대한 풍자가 고개를 든다. 수음의 대사 중 하나를 들여다보자. “그거 사줘. 그거 사줘. 그거 사줘. 그거 사줘. 그거 사줘. 그거 사줘. 동네 아는 형이 그랬어. 그건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어서 그렇대.” 이 짧은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텃밭킬러>의 대본에는 운율과 캐릭터가 드러내는 개성이 명징하게 담겨 있다.

<텃밭킬러>의 극작가 윤미현이 만들어낸 말의 리듬에 작곡가 윤효영이 음을 붙였다.

작곡을 맡은 안효영은 오랫동안 합창곡을 쓰며 말을 다루는 작업을 해온 것이 오페라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음악을 통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텃밭킬러>는 성공한 것이다. “웃기지만 웃긴 것만은 아니고 슬프지만 슬픈 것만은 아닌 각각의 캐릭터들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대본을 거듭 읽을수록 그 안에 이미 음악이 자리한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말이 갖는 고유한 리듬과 패턴, 정서, 어감의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재미 등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롭고 가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윤미현 작가가 다루는 말의 리듬에 주목했지요. 대본을 거듭 읽을수록 그 안에 이미 음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안효영의 음악은 캐릭터의 개성과 차진 대사들을 전달하는 소리의 이동체인 동시에, 작품에 내재된 복잡미묘한 분위기와 공기를 드러내는 소리의 표현체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은 이를 위해 다양한 조성과 문법으로 언어가 갖고 있는 긴장와 이완의 리듬을 맺고 푼다. 오케스트라 디 피니의 지휘는 정주현이 맡았다.

영화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 강렬한 캐릭터를 우리는 ‘신 스틸러’라 부른다. <텃밭킬러>의 작은 구둣방은 온갖 신 스틸러들이 모인 세상의 축소판이다. 그 주인공들이 꼭지가 되어 만들어가는 서사의 삼각형과 사각형 안에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오페라 <텃밭킬러>
일정 :  2019.07.03 (수) ~ 2019.07.06 (토)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수, 목, 금요일 오후 7시 30분 / 토요일 오후 5시 (공연시간 : 160 분 / 인터미션 : 20 분)
연령 :  15세 이상
티켓 R석 70,000원, S석 50,000원, A석 30,000원

글 | 송현민 (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