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3인 3색 「함익」

3명의 문화예술인이 창작극 「함익」을 감상하고 각자의 소감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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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이 시대에 「햄릿」을 연극으로 올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수백 년에 걸쳐 분석되고 상연되어온 이 작품을 다시 올리려면 무슨 고민을 거쳐야만 하는 것일까. 「함익」은 「햄릿」에 대한 깊고 깊은 사랑을 품고, 그러한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랄 수 있겠다.
고전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우선 작품이 쓰인 시대와 작품을 겹쳐 읽으며 그 작품이 당대에 가졌을 의미를,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작품을 현대에 겹쳐 읽으며, 그 작품이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다. 「함익」은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왕가를 대신하여 재벌가가, 남성 주역을 대신하여 여성 주역이, 고전적인 비극을 대신하여 비극이라고도 희극이라고도 할 수 없을 씁쓸한 아이러니로 이루어진 안티클라이맥스가 「함익」을 구성한다. 그러나 「함익」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햄릿」에 대한 깊은 고뇌다. 「함익」은 「햄릿」을 깊이 사랑하지만 동시에 「햄릿」의 비극이 이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 아님도 알고 있다. 예술이 그저 팬시상품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지나치게 경직된 질문일 뿐이니까. 그러므로 「함익」은 우리에게 묻는다. 「햄릿」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러한 비극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인지. 나아가서 예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것은 연극을, 그리고 「햄릿」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이가, 지금 이 시대에 연극이, 「햄릿」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해야만 가능한 질문들이다. 아마 당신이 「햄릿」을 사랑한다면, 최소한 그 내용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면, 그러한 질문들을 정리하며 떠나가는 「함익」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헛헛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사실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저 무겁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많이 웃을 수 있으며, 또한 서툰 사랑을 보며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에 공감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함익」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극이란 본디 그 모든 것이 한 데 들어간 예술 양식인데, 「함익」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황인찬(시인)

 

 
오종혁(왼쪽)과 조상웅이 연기하는 ‘연우’를 비교해보는 것은 「함익」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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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습하던 휴학생 신분의 단역 배우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이 있느냐 죽어 있느냐 그것이 문제인 거지!”라고 거침없이 내뱉을 때부터 지도교수는 정신이 번쩍 들고, 사랑에 빠졌던 것인지 모른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 급한 21세기 대한민국 청년의 명쾌한 해석이 모호한 내일을 걱정하고 과거만을 탓하며 사느라 지쳐버린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을 테니까. 그렇게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정서적 결핍을 앓던 재벌2세 교수 함익은 가난한 제자 연우에게 빠져들었다.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남녀의 구성이 바뀐다 해도, 하물며 동성 사이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살아 있느냐와 죽어 있느냐를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어린 제자의 제법 깊은 내공을 맞닥뜨린 교수는 – 더욱이 가면을 쓴 채 살면서 허위에 둘러싸인 현실에 질식할 정도가 되어버린 어른이라면 – 당연히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극 「함익」에서 번뇌하는 주인공 함익은 여성이고, 풋내 나는 제자는 남자다. 별다른 장치나 음향효과 없이도 무대는 그 설정만으로 묘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교수가 어린 제자에게 집착할수록 번민할수록 객석의 안타까움도 커졌다.

 

함익에게 이전까지 친구는 거울 속 분신뿐이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미는 구혼자가 있었지만, 그와 섹스를 할 수는 있어도 사랑을 나눌 순 없었다. 아버지와 계모가 어머니를 자살로 내몰았다고 의심하며 복수를 꿈꾸지만, 현실 속에선 애완용 원숭이 햄릿에게도 번번이 무시당하고 마는 그녀에게 제자 연우는 느닷없는 매혹이자 떨리는 사랑인 동시에 유일한 정서적 교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드라마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저 굶주림을 채워줄 약간의 빵과 연극 지도만을 원했으므로.

 

400년 전, 삶과 죽음을 고뇌하던 왕 햄릿은 21세기의 「함익」에서 배부르지만 외로운 재벌가 딸로 다시 태어났다. 허위의식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객석을 폭소하게 하는 블랙코미디 요소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몰입감을 높이면서 공연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미니멀한 무대와 촘촘한 구성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단지 아버지와 계모 혹은 세상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함익이 말 못하는 짐승 원숭이를 죽이고, 집착했던 제자로부터 외면 받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죽음에 이르는 결말은 “꼭 그러셔야 했나요?”라고 작가에게 넌지시 묻고 싶었다.
정명효(에세이스트,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저자)

 

 
함익은 인류가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는 한 소멸할 수 없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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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익」이 뿌리를 둔 연극 「햄릿」을 비튼 점 중에서 두드러지는 건 남성 주인공 ‘햄릿’을 여성 주인공 ‘함익’으로 바꾸었다는 점, 그리고 햄릿의 독백을 함익이 그녀의 분신인 ‘익’과 나누는 대화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 관객으로서 그리고 「햄릿」을 아마도 지루하게 생각할 21세기 관객으로서 두 가지 모두 설득력 있었다.
익은 사람들 앞에서 극도로 절제된 모습을 보이던 함익의 내면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극 전체에도 숨통을 틔워준다. 아주 마음 깊은 곳에서 불러오듯, 함익과 익은 서로에게 가까스로 ‘잘 지냈니?’ 인사를 건넨다. ‘분신과 대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신분열의 증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소 진부할 수도 있었으나 울림 있는 설정이었다.
연극과 교수로 등장하는 함익이 「햄릿」 수업을 진행하면서 드러나듯, 연극 「함익」은 「햄릿」의 리메이크라기보단 극중극, 메타 연극에 가깝다. 「함익」이 말하듯, ‘햄릿’이라는 주인공이 우리 모두가 가진 고민을 되새기게 한다면 ‘잘 지냈니?’라는 함익과 익의 인사는 그 새카만 침묵과 케케묵은 갈등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안녕했는지를 묻는 것만 같다.

 

「함익」은 극으로서 「햄릿」을 설명하고, 「햄릿」이라는 연극의 존재는 극중 함익의 심리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예를 들어, 함익은 연극에 개인적 설정을 과도하게 우겨 넣어 연극을 망치고 학생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 어째서 함익은 왜 연극을 그렇게 만들어야 했는지 사랑하는 연우에게 설명하고 그를 설득하지 못했을까? 그러면 그녀는 사랑과 복수 둘 다 얻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또, 매번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왜 복수의 방법으로 연극에 얽매였을까? 나아가, 대체 왜 그녀는 ‘복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나?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했다는 생각에 미치면, 안타까워진다. 안타까워할 수 있다는 건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다는 거다. 「함익」이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점은 그것이다.
우리는 지위와 체계와 부조리 속에서 여태껏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 고민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복수를 꿈꾸지만 좌절하고, 사랑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인간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함익의 가장 큰 비극이고, 모순이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햄릿」의 주제를 다시 선연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마지막 함익과 익의 대화에서 극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한다. 새카만 머리칼의 함익과 새하얀 머리칼의 익이, 가족으로부터 물려 받은 성씨 따위 없으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는 익이라는 존재가 서로를 다정하게 감싸는 장면. ‘사랑했어’는 연우에게 향하는 말일까? 아니, ‘안녕’은 함익이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건네는 인사다. 함익과 익이 손을 잡고 공중을 걷듯 걸을 때, 주변의 모든 것들은 스러진다. 그녀를 멸시했던 가족, 연극과 학생들, 심지어 연우마저도. 마치 그 모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지금 중요한 건 스스로와 고민하고 싸워온 그 모든 시간뿐이라는 듯이.

 

함익은 홀연히 무대 뒤로 사라지고, 관객의 심중에 남은 외마디는 다시 그 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김예린(「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창작극 「함익」

상영 기간 2019.04.12 (금) ~ 2019.04.28 (일)
장소 세종M씨어터
상영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오후 7시
,일 오후 3시(월 공연 없음)
(공연 시간 : 100 분/ 인터미션 없음)
연령 14세 이상
티켓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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