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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연은 ‘교감’이다

「더 뮤지컬」 박병성 편집장이 생각하는 공연의 본질은 배우와 관객의 ‘교감’이다.

내게 공연은 무엇일까. 질문을 받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나의 공연은 ‘소멸’이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것이 더 독자들에게 자극적이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그러나 최종 제목을 ‘교감’으로 바꾸었다. ‘교감’은 예측할 수 있고 덜 자극적인 단어지만 내가 생각하는 공연을 더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감이라는 대답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장르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연만의 교감 방식이 소멸과 관련이 있다.

 

21세기 위대한 연출가 피터 브룩은 그의 저서 『빈 공간』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무 것도 없는 어떤 무대를 가상하고 그것을 빈 공간이라고 부르자. 어떤 이가 빈 공간을 가로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이것만으로 하나의 연극이 되기에 충분하다.” 연극은 빈 공간에 사람이 지나고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립된다. 이 단순한 두 개의 문장은 연극의 핵심을 보여준다. 빈 공간인 무대가 있고 그곳을 지나는 배우가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있다면 연극을 완성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조명이나 의상, 무대 세트는 공연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영상예술이나 시각예술에서 그것의 치장을 걷어낸다고 상상해보자. 영상예술은 바라보는 사람과 필름과 그것을 상영할 수 있는 기술이 남을 것이다. 시각예술은 결과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족하다. 이와 달리 연극에서는 빈 공간 속에 행동하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이 남는다. 공연은 다른 매개물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으며 창작자의 사상이 배우의 몸을 통해 관객의 몸으로 전해지는, 몸과 몸이 만나는 예술이다.

 

무대 하나, 배우 하나, 관객 하나만 있어도 하나의 공연이 만들어진다

 

공연예술은 예술의 결과물이 사람이어서 공연을 만드는 배우와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이 직접 만난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피터 브룩은 자신의 연극 이론을 담은 책 제목으로 ‘빈 공간’을 택했다. 그의 선택이 관객, 배우, 무대 등 연극 요소 중에서 무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빈 공간’ 대신 ‘배우와 관객’을 제목으로 삼을 법도 한데 피터 브룩은 ‘빈 공간’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마도 ‘빈 공간’이 공연의 특징을 더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빈 공간’은 연극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인 무대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이면서 바로 지금 만나는 시간적인 의미를 띄기도 한다. 공연예술에서 배우와 관객은 ‘바로 지금 여기서’ 직접 만난다. 그러므로 피터 브룩의 ‘빈 공간’은 공간성과 시간성을 포함하는 의미이자,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그 일회적인 순간을 강조하는 제목이다.

 

공연예술은 배우와 관객이 바로 지금 여기서 단 한 순간 만나는 예술이다. 영상예술처럼 무한 복제하여 동시에 여러 공간에서 만날 수 없고, 시각예술처럼 하나의 결과물을 오래토록 만날 수도 없다. 같은 공연을 같은 배우들이 연기하고, 현실성은 없지만 심지어 관객마저 동일하다고 해도 이전 공연과 이번 공연이 같을 수 없다.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만나면서 완성되고 그것으로 소멸된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소멸하면서 완성되는 예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은 ‘소멸’이다.

 

현대 공연은 기존의 장르와 관습을 해체하여 새로운 양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배우와 관객이 ‘바로 지금, 여기서’에서 만난다는 공연의 일회성은 유지된다.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는 관찰하는 입장의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여 극의 일부에 참여시키면서 관객의 역할을 확장시킨다. 대표적인 이머시브 시어터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5층짜리 가상의 맥키트릭 호텔을 무대로 한다. 관객들은 「맥베스」를 모티프로 호텔의 수십 개의 방에 전시된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를 선택하여 관람한다. 그 중 소수의 관객은 배우의 손에 이끌려 잠시나마 극 속에 참여하는 은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머시브 시어터인 「슬립 노 모어」에서 관객이 경험하는 공연의 서사는 모두가 다르다. 한 가지 동일한 것이라면 관객 스스로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립 노 모어」의 관객은 작가이자 때때로 극에 포함되면서 배우가 된다. 이처럼 인기 있는 현대 공연인 이머시브 시어터는 정통적인 작가, 배우, 관객의 지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지금 여기서’ 만난다는 의미는 훼손하지 못한다.

 

막이 닫히면 하나의 공연이 숙명처럼 ‘소멸’된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예술 역시 큰 변화를 겪는다. 영상예술은 3D를 넘어 홀로그램을 비롯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로 입체적인 경험을 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사진에서 발전하여 활동사진이라고 일컬어졌던 영상이 이제는 입체적인 실체로 진화했다. 시각예술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회화와 같은 평면적인 예술이 가상현실 속에서 입체적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인 예술로 진화했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영상이나 시각예술의 경우 장르의 본질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연예술 중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작품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 기술이 지금, 여기서 만나면서 소멸하는 공연의 일회성을 극복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공연은 더딘 변화를 겪고 있다.

 

공연에서 배우와 관객이 일회적으로 만나 생각의 교감, 느낌의 교감, 정서의 교감이 발생한다. 좋은 공연일수록 교감의 에너지가 크다. 관객들이 비싼 티켓 가격을 오래전부터 예매하고 가슴 설레며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배우, 대본과 무대 기술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작품과의 교감 때문이다. 공연의 본질이 교감이라면, 형식은 일회성이다. 공연은 일회적으로 배우와 관객이 만나 소멸하면서 완성되는 장르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을 정의하라는 질문에 소멸과 교감을 두고 고민을 했다. 소멸이 공연예술의 특징을 더 잘 드러내고 매력적인 요소임은 앞서 말했다. 그래도 공연을 보는 이유는 에너지의 교감이라는 생각에 ‘소멸’ 대신 ‘교감’을 선택한다.

글 | 박병성_「더 뮤지컬」 국장 박병성은 공연 무대의 에너지와 현장성을 사랑하는 뮤지컬 칼럼니스트다. 최근 『뮤지컬 탐독』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