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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 유니버설발레단 공연

황금빛 클래식 발레의 걸작 <라 바야데르>

황금빛 클래식 발레의 걸작 <라 바야데르>

마리우스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 유니버설발레단 공연

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칼럼니스트)


올해는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인형>, <라바야데르>, <돈키호테>, <해적> 등
지금도 인기 있는 발레들을 안무한 프티파는 발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전세계 주요 발레단은 올해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을 앞다퉈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라바야데르>(11월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가
프티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오르게 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연 프티파는 원래 프랑스 출신이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낭만주의 발레의 열풍이 사그러들자 당시 뛰어난 무용수들과 안무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몰려갔다. 뒤늦게 발레 붐이 분 러시아의 황실극장 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이 이들을 고용했기 때문이다.

1847년 황실극장 무용수로 온 프티파는 같은 프랑스 출신으로 <지젤>의 안무가 쥘 페로, <코펠리아>의 안무가 아르튀르 생-레옹 밑에서 안무를 배웠다. 1862년 황실극장에서 발레 마스터가 된 그는 <파라오의 딸>을 시작으로 1903년 은퇴할 때까지 50년간 60여편을 안무했다.

프티파가 꽃피운 클래식 발레는 정교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규칙과 형식미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티파는 낭만발레 시대에 등장한 파드되(2인무)를 발전시켜 그랑 파드되(큰 2인무라는 뜻으로 남녀 주인공이 추는 고난도의 긴 2인무) 형식을 확립했으며 줄거리와 상관없이 다채로운 춤을 보여주는 디베르티스망을 도입했다.

프티파가 완성한 클래식 발레의 정점으로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담당했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호두까기 인형>(1892), <백조의 호수>(1895)>를 꼽는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이 정점을 준비한 작품이 바로 1877년 초연된 <라 바야데르>다. ‘발레 블랑(백색 발레라는 뜻으로 흰 튀튀를 입은 무용수들의 군무)’이나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심리를 담은 파드되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의 무희’를 가리키는 프랑스어다. 러시아어 제목은 ‘바야데르카’로 힌두 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최고 전사 솔로르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니키야와 솔로르는 각각 최고승려 브라만과 감자티 공주에게 사랑을 받는다. 라자(왕)의 명령에 가까운 권유로 솔로르는 감자티와 결혼하게 된다. 솔로르와 감자티의 약혼식에서 춤을 추게 된 니키야는 감자티가 꽃바구니에 숨겨놓은 독사에게 물린 뒤 브라만의 해독약을 거절하고 죽는다. 죄책감에 빠진 솔로르는 아편에 빠진 환각 상태에서 니키야를 만나 용서를 구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솔로르는 감자티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신의 노여움으로 사원이 붕괴한다. 이때 니키야의 환영이 나타나 솔로르를 천상으로 인도한다.

19세기 유럽 문화예술계는 이국적인 동방을 소재로 한 오리엔탈리즘의 열기가 뜨거웠다. 프티파 역시 <파라오의 딸>을 시작으로 오리엔탈리즘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여러 편 안무했다. 특히 인도의 무희는 19세기 전반 낭만주의 발레와 오페라에서 인기 있었던 소재로 프티파는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젤>의 대본을 쓴 테오필 고티에는 1839년 고대 인도 시인 칼리다사의 대표작 <샤쿤탈라>를 모티브로 동명 발레의 대본을 썼다. 그런데, 당시 안무가가 프티파의 형인 루시엥 프티파였다. 프티파는 형이 안무한 <샤쿤탈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집시 여인을 사랑하는 성직자와 기사의 캐릭터, <지젤>에서 처녀귀신인 윌리의 군무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라 바야데르>의 대본을 썼다.

<라 바야데르>의 음악은 프티파의 오랜 조력자로 당시 인기 있는 발레음악 작곡가인 루드비히 밍쿠스가 맡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황실 극장에서 <라 바야데르> <돈키호테> <파키타>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발레음악은 안무가의 주문에 따라 생산되는 것이어서 일류 작곡가는 차이콥스키 전까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곤 하지만 밍쿠스는 당대 발레음악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다채로운 멜로디와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가로 평가 받는다.

사실 <라 바야데르>의 초연을 앞두고 프티파는 황실극장의 오페라 스케줄에 밀려 무대 리허설을 이틀 밖에 못했다. 당시 귀족들이 발레보다 오페라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황실극장은 오페라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향후 프티파의 조수가 되는 레프 이바노프와 예카테리나 바젬이 남녀 주역으로 출연한 이 작품은 초연 직후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연이 끝나면 프티파, 밍쿠스, 이바노프, 바젬은 관객의 환호에 여러 차례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해야 했다. 당시 러시아의 평론가들은 <라 바야데르>에 대해 ‘동양의 지젤’이라는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로맨틱 발레에서 클래식 발레로의 진정한 이행’이라고 평가했다. 덕분에 프티파는 황실극장 발레 마스터로서도 입지를 단단히 다지게 됐다.


초연 당시 프티파는 이 작품을 4막7장의 대작으로 만들었다. 스펙타클 발레의 대명사답게 이 작품은 인도 궁전을 배경으로 보석으로 치장한 코끼리 등 볼거리가 많다. 또한 무희들의 부채춤, 물동이춤, 앵무새춤 그리고 전사들의 북춤과 황금신상의 춤 등 시선을 끄는 춤이 많다. 니키야가 약혼식에서 꽃바구니를 가지고 추는 솔로춤이나 솔로르와 니키야의 아름다운 2인무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환각상태에 빠진 솔로르가 니키야를 만나는 ‘망령들의 왕국’ 부분이다. 32명의 발레리나가 히말라야 산맥을 상징하는 가파른 언덕을 가로지르며 내려온 뒤 아라베스크 팡셰(댄서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 라인의 절정을 보여주는 포즈)를 반복하는 이 장면은 발레 역사상 최고의 군무 가운데 하나다.

프티파 이후 여러 안무가들이 <라 바야데르> 개정판을 선보였다. 20세기 초반 러시아를 대표하는 안무가인 알렉산드르 고르스키가 1904년 볼쇼이 발레단에서 처음 재안무한 버전을 선보였다. 사실주의를 발레에 도입한 고르스키는 원작의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인도풍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즉 ‘망령들의 왕국’ 군무에서 발레리나들은 튀튀 대신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인 1919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이름을 바꾼 키로프 발레단도 <라 바야데르> 개정판을 올렸다. 표도르 로프코프가 안무한 이 버전은 사원의 붕괴 장면을 뺀 것이 특징이다. 환각에 빠진 솔로르가 니키야를 따라 망령들의 왕국으로 떠나는 3막으로 끝이 난다. 당시 혁명과 전쟁으로 무대의상이나 세트가 소실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할 기술 스태프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원 붕괴 장면을 삭제한 로프코프 버전은 이후 1941년 구 소련에서 박탕 차부키아니 버전과 1951년 콘스탄틴 세르게이예프 버전 등의 토대가 됐다.


그런데, <라 바야데르>는 20세기 전반 발레 뤼스와 안나 파블로바 무용단의 갈라 공연으로 일부가 서방에 알려지긴 했지만 오랫동안 전모가 알려지지 않았다. 키로프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다 1970년 서방으로 망명한 나탈리아 마카로바는 <라 바야데르>를 전세계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무용수 외에 안무가로도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마카로바는 1974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서 ‘망령들의 왕국’ 장면을 선보인 뒤 1980년 전막(3막)으로 선보였다. 구 소련에서 사라졌던 사원 붕괴 장면을 복원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ABT를 비롯해 영국 로열 발레단, 일본 도쿄발레단 등 세계 주요 발레단이 마카로바 버전을 택하고 있다. 다만 최근엔 세트를 직접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영상이나 조명을 이용해 붕괴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카로바 이후 당대 발레 안무가들이 앞다퉈 <라 바야데르>를 새롭게 올렸다. 볼쇼이 발레단의 유리 그리고로비치와 파리오페라발레의 누레예프도 1991년과 1992년 잇따라 <라 바야데르>를 무대에 올렸는데, 사원 붕괴 장면을 뺐다.



한국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1999년 창단 15주년 기념작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라 바야데르>를 처음 선보였다.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당시 유니버설 발레단 예술감독(전 키로프발레단 예술감독)의 총 지휘하에 사원 붕괴가 포함된 키로프발레단 초연 버전을 토대로 만들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 발레이니만큼 당시 한국 발레 역사상 최대 예산인 8억여 원을 투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유니버설 발레단은 대표 레퍼토리가 된 <라 바야데르>를 의미 있는 해에 가끔씩 올리고 있다.

올해 프티파 200주년 기념공연으로 마련된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는 남녀 주역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의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홍향기-이현준, 김유진-이동탁과 함께 월드스타인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데니스 로드킨이 객원 주역으로 참여한다.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일정 : 2018.11.1(목) ~ 2018.11.4(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평일 오후 7시30분 / 토 오후 3시, 오후 7시30분 / 일 오후 3시
(공연시간: 150분/인터미션: 2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R석 12만원 / S석 8만원 / A석 6만원 / B석 3만원 / C석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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