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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없는 불 꺼진 극장에, ‘귀신이 산다는데…’

납량특집 <회.관.괴.담>

관객 없는 불 꺼진 극장에,
‘귀신이 산다는데…’

납량특집 <회.관.괴.담>

글.유연석 (기자, CBS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늦게까지 공연 연습을 하고 차가 끊긴 적이 있어요.
몇 시간만 지나면 첫차 다닐 시간이기도 하고, 돈도 좀 아껴보려고 극장 중앙에 자리를 펴고 누워 눈을 붙였어요. 근데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누군가 있는 것 같달까. 살짝 눈을 떠서 보니 객석에 귀신이 있는 거였죠. 그것도 둘이나! 움직이지도 못하고 덜덜 떨었습니다.
제게 해코지하지 않은 걸 보면 나쁜 귀신은 아니었나 봐요. 종종 공연 때마다 객석을 보면서 생각하곤 해요.
저 관객이 앉은 자리가 귀신이 있던 자리인데. 아, 물론 그 후론 극장에서 잠을 안 자서 못 봤답니다. (웃음)”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30대 중반 연극배우가 A씨가 몇 년 전에 대학로 Y극장에서 겪은 일이라고 한다. 종종 극장에서 귀신을 본 배우나 스태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극장은 공연이 오르는 동안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빛이 빼곡한 곳이지만,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이 빠지고 불이 꺼지면 적막함 그 자체로 괜히 등골이 오싹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A씨와의 최근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듣고 난 뒤 문득 호기심이 생겨, 서울 소재 몇몇 극장에 귀신 괴담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동안 익히 알려진 극장들은 일부러 제외했다. 가능하면 본 이야기를, 본 이야기가 없다면 들은 이야기라도 부탁했다. ‘귀신을 봤다는 배우나 극장 관계자가 많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없었다. 그런데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는 얘기는 조금 있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카더라’ 정도로 보고 넘기면 좋겠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 뭐 있나. 그리고 극장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상당수 극장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면 관객들이 불편해할 것 같다며 익명을 요청한 탓이다. 일관성 있게 전부 익명으로 처리했다.

다만 유추가 조금은 가능하게 극장 정보를 아주 살짝 남겨놓는다. 그러니 한번 잘 추리해 보시라. 어디인지 알 것 같으면, 그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귀신이 있나 한번 찾아보자. 무섭다고? 무서워할 거 뭐 있나. 극장에 있다는 귀신이 무슨 해코지를 하려고 있겠는가. 우리처럼 공연이 보고 싶어서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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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화문에 위치한, 올해 40주년을 맞은 S회관 내 극장 이야기다. 대극장에서 무용단이 ‘굿’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객석에서 리허설을 보며 무대를 점검하다, 무대 위 배턴을 올려다보았는데 귀신이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굿’ 공연이어서 찾아온 게 아닐까.

이 극장 안내원이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극장에서 공연이 종료한 후 아직 퇴장하지 않은 관객이 있는지 확인하러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객석 저 멀리 구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 있는 거 아닌가. 극장 밖으로 나와 다른 안내원에게 그쪽 객석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전달했다. 그래서 다른 안내원이 확인하러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안내원은 그날 대체 뭘 본 걸까.

건물이 커서 그런가. 몇 개 더 있다. 공연이 끝난 야심한 시각 대극장 5층에서 피아노 소리와 아이가 뛰어다니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확인은 했을까. 당연히 못했다. 또 대극장 5층 여자 화장실에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출몰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2

남산공원 올라가는 길에 있는 국내 최초 현대식 민간극장인 N극장도 귀신을 본 사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극장 중 하나다. 이미 나온 이야기들 말고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지 물어보았다. 역시나 있었다.

공연이 끝나면 보통 밤 10시쯤이 된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우스 매니저와 안내원인데, 이들은 관객과 극장 감독, 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 로비 문을 잠그고 정리를 진행한다. 정리를 마치면 로비를 가로지르지 않고 극장 밖으로 나오는데, 이때 남자 화장실 앞에 스트라이프 무늬를 입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남학생이 서 있는 걸 자주 봤다고 한다.

또 아래에 하우스 안내원실이 따로 있는데, 과거 한 직원이 혼자 내려가 있다가 자꾸 여자 웃음소리가 들려서 쳐다봤더니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배우는 무대에서 연습하면서 옆 사람이랑 막 대화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었다고.

#3

덕수궁 근처에 있는 1970년대 개관한 S극장 이야기이다. 여기서 극장장으로 오래 있었던 연출의 이야기다. 그 역시 귀신을 본 적은 없다고 하는데 2년에 한 번 꼴로 귀신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 극장 귀신은 2년마다 찾아오나 보다.

재미있는 건, 귀신을 느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관된다는 거다. 바로 콘솔부스 근처에서 귀신을 느꼈다고 한다. 이 극장에 나타나는 귀신은 여자 귀신. 그녀는 주로 객석 뒤, 콘솔 중앙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배우는 연출자가 객석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연했는데, 알고 보면 연출은 그곳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콘솔부스를 순찰하기도 한다. 공연 중 음향이나 조명 오퍼레이터들이 공연 담당자가 왔다고 느끼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연 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도 그곳에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험한 사람에게는 오싹한 이야기인데, 이곳 극장장은 귀신이 나오면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기하게도 귀신이 나온 다음 공연이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중박 이상의 관객몰이를 꼭 해내서라고.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 또는 음악 녹음실에서 귀신이 나타나면 대박이 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공연에서도 통하는 공식인가 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카더라’다. 그러니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