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간 관장, 사장은 총 몇 명일까?

김경태 (강동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간
관장, 사장은 총 몇 명일까?

글. 김경태 (강동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


세종문화회관의 개관 40년을 축하하며 재미있던 기억을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필자는 1999년에 세종문화회관에 입사해 여러 팀을 거쳐 2010년 예술단 기획TF팀장으로 퇴사했다.
옛 일원으로서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세종문화회관을 위해 애정을 담아 약간의 쓴 소리를 적으려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많은 수치를 동원해야 한다. 근대적 형태의 공연장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부민관에서부터 그 역사의 시작점을 잡는 경우 80년이 넘고, 현재의 자리에 먼저 자리 잡았다가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에서부터 세면 60년이 조금 못된다. 불이 난 시민회관의 자리에 다시 지어져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모습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이 1978년이니, 이때부터 40년이 지났다. 40년 전부터 약 20여 년 전까지는 서울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업소 형태였는데, 1999년에 재단법인으로 체제가 바뀌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체 인원은 8백여 명으로, 이중 소속단체 단원이 620여명에 이르며 관리직 공무원도 160명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수입은 공연수입 15억 원과 대관수입 12여억 원에다 주차장 수입 등 모두 30억 원 가량. 반면 지출은 인건비 104억 원을 포함, 총 164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적자 운영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은 국내 대형 공연장 가운데 교통과 시설 등 모든 여건에서 단연 앞서 있으면서도 자립도가 형편없이 낮아 시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합뉴스 1998.6.22.)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기사다. 개관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세종문화회관의 ‘민영화’를 준비하면서 등장한 명분이었다. ‘민간주도의 자율적인 운영을 통한 문화예술진흥’ 등의 이야기보다 경영정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는데, 이것과 비슷한 맥락의 기사들이 2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옛 세종문화회관의 일원이자 관련업계 종사자로서 슬픈 일이다.

 


그 당시 논의 과정에 흘러나온 이야기들 중에는 “세종문화회관 관장 자리가 승진을 앞둔 공무원이 잠시 거쳐 가는 직책인데다 재임기간이 짧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이나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1978년 개관한 이후 1999년 법인 출범 이전까지 20여 년간 거쳐 간 세종문화회관의 관장은 총 18명인데, 이중 두 번 부임한 경우까지 합하면 연속 임기가 채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재단법인을 거쳐 올해까지 살펴보면, 사장을 역임한 분은 8명이다(최초 대표의 직함은 ‘총감독’이었다!). 수치로만 보면 재임 기간이 평균 2년 이상으로 호전된 듯 보이나(아주 미세하게 재임기간이 길어진 측면은 있다), 지난 2월 임기가 만료된 이승엽 사장의 후임이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듯 사장의 교체기마다 거의 예외 없이 공백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유의미한 ‘책임 경영’ 체제가 정립됐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근무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총 6명의 사장이 다녀갔는데, 그중 보장된 임기를 채운 분은 절반에 불과했다. 대표가 교체되는 사이 직무 대행을 맡은 서울시의 공무원과 일한 기간을 다 합치면 1년은 훌쩍 넘을 듯하다. 사실 임원진이 바뀔 때마다 정책은 널을 뛴다.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테스크 포스’가 주기적으로 설치됐고, 나 역시 두어 번 참여해 각종 계획서를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핑계 같지만 실무진에서 뭔가를 차분히 진행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의 개관 40주년과 관련해서 이런 아름답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이제는 제발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공연예술은 ‘사람’의 일이다. 인공 지능(AI) 기술이 발전해 컴퓨터가 바둑이나 체스 게임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지만, 여전히 음악 연주나 연기에 적용하는 것은 요원하다. 사람은 타인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을 겪지 못한 공연장에게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한 다는 것은 걷기도 벅찬 아이를 경보시합에 내밀어 놓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고 질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나이 40은 불혹(不惑)이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지만 지나면서 보니 ‘유혹이 없는 나이’가 더 맞는 해석일 듯싶다. 불혹에 다다른 세종문화회관에도 더 이상 성과주의, 자중지란, 내로남불 등의 유혹 없이 성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