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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화양연화의 기억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2002년, 화양연화의 기억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글. 정철(한국예술인복지재단 운영본부장,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사진. 장태배

2002년 월드컵 본선 게임을 앞둔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 전면 중앙 계단에서 거리 응원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극장 좌로는 정부 중앙청사가, 건너편에는 미국 대사관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었고,
정부수반의 이동 경로인 광화문대로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월드컵 유치의 감격과 본선 1승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열망은 최고조였다.

1987년 광화문 일대는 소위 넥타이 부대라 불린 직장인들의 ‘호헌철폐’라는 6월의 외침이 쓸고 갔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2년 5월 세종문화회관 광장은 다시금 직장인, 학생, 남녀노소 시민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거대한 물결 그 자체였다. 그 해, 월드컵 본선 게임을 앞둔 어느 날의 세종문화회관 앞마당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연하나로’라는 이벤트 회사의 PD와 만났다. 월드컵 게임 본선에 진출한 국가 간 평가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세종문화회관 전면 중앙 계단에서 거리 응원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세종로 31번지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좌로는 정부 중앙청사가, 건너편에는 미국 대사관과 문화체육관광부(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가 위치해 있는데다 빈번한 정부수반의 이동 경로인 광화문대로와 맞닿아 있던 탓에 중앙계단에서 대중들이 모이는 행사를 허용하기란 쉽지 않은 처지였다.
그렇지만 당시 2002월드컵 유치의 감격과 본선 1승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열망은 최고조였다. 이를 반영한 거리 응원전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시 당국의 승인과 의사결정권자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결심, 그리고 이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당성이라는 선결 과제가 있었다. 나는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준비한 계획안을 들고 조심스럽게 사장실을 두드렸다. 당시 초대 사장이었던 이종덕 사장은 원칙과 명분을 중시하는 리더였다. 또한 세종문화회관이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고 시민이 사랑하는 문화시설로 쓰여야 한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던 분이었다. 이종덕 사장에 대한 나의 믿음은 적중했다. “해 봅시다!”

행사 실무진과 모의실험을 해보니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공간적 위치 때문에 시작부터 우려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긴 논의 끝에 거리 응원전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저녁 동시간대 극장 관객의 동선 또한 고려해 철저한 구획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와의 첫 평가전 당일, 세종문화회관 계단 광장에 펜스를 쳐서 응원 관중석으로 변신시키고 하단에 대형 스크린을 세웠다. 연하나로 진행팀, 붉은악마 집행부와 함께 “결의에 찬 준비”가 완료되었다. 초조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과연 시민들이 거리 응원전에 나올 것인가?’라는 의문에 ‘시민들은 분명히 온다.’라고 답할 확신이 없었다. 이 곳을 지나는 일부 소수의 시민만 참여하는 초라한 응원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기우였을까. 게임 시작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중앙 계단 광장을 하나 둘 메우기 시작했다. 전반 종료 무렵에는 대극장 측면의 머릿돌 조형물에 올라간 사람들까지 보였다. 대성공이었다! 참여 시민들은 붉은악마의 선창에 일사불란하게 호응했다. 이후 경기들은 예상을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안전 문제가 거론되었고 이에 계획을 수정해, 대극장 전면 북측을 기준으로 대형 스크린과 응원석 구획을 정했다. 프랑스전으로 기억한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거리 응원전의 본격 시작을 알리는 타종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남쪽 멀리 보이는 조선일보사 전광판 아래까지 참여 시민들이 늘어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심지어 미국 평가전 때에는 미국 대사관에서 응원 장소 변경을 요청해 서울시청 앞마당으로 옮겨 수십만 국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거리 응원의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전통적인 문화예술 공간의 모습은 대개 숙연하고 권위 있는 장소로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자 누군가가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침묵하며 수용하는 군중과 그 군중 속에서 고립된 상태로 예술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수용하는 형태였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전통적인 문화예술 공간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한 것은 개인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특별한 교류의 순간이었고, 통념과 상식을 극복한 시대정신이 발현된 시간이기도 했다.
문화예술 공간은 예술의 창조 뿐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론과 감동의 매개로 활용되어야 한다. 제한된 소수의 계층만을 위한 것은 반문화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세종문화회관의 거리 응원 문화는 문화예술 공간의 새로운 정의를 다시 쓴 것이다. 문화 공간은 열린 매개체로서 사회에 개입하고 사람과 사람을 제대로 연결한 미래지향적 태도로 임할 때 시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현실로 펼쳐졌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바로 그 때의 기억이다. 역사는 민의를 저버릴 수 없다. 그리고 14년이 흘러 2016년 12월. 시민은 촛불로 탄핵을 외쳤고 광화문 정치 헌정 사상 새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다.

※ 정철 본부장은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운영본부장과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세종문화회관 홍보팀장과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연사업본부장, 국립예술자료원 사무국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 후원 센터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