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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부터 2018까지 세종문화회관의 특별한 2018년

1978부터 2018까지
세종문화회관의 특별한 2018년

글.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세종문화회관의 변화는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2018년에는 또 다른 페이지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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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은(더불어 저도) 특별한 새해를 맞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이거든요. 1978년 4월 14일에 개관했으니 금년 4월에 만으로 마흔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세월을 기념하는 예술 공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예술 공간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에는 세종문화회관의 전사(前史)가 있습니다. 개관했던 해인 1978년부터 40년 이상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지금은 서울시의회 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부민관이 있습니다. 장소가 달라 좀 억지스럽다고 한다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의 시민회관이 있습니다.
부민관은 지금의 서울시에 해당하는 경성부가 주동이 되고 경성전기주식회사가 기부금을 내어지었습니다. 근대적 개념의 첫 공공 극장이자 시민 회관입니다. 1934년에 개관한 부민관은 굉장했습니다. 위치도 서울의 한복판이었지만 규모와 시설이 예외적일 정도로 크고 화려했습니다. 3개의 공연장 중 가장 큰 대강당은 좌석이 1천8백 석에 달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냉난방 시설을 갖추었고, 무대기술 측면에서도 최첨단이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실내 공연 시설이 10여 개 있었지만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 관립(官立) 극장이었던 부민관은 해방 후 잠시 서울시의 공관으로도 사용되다 1950년 4월 29일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문을 닫게 되기까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서울 수복 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75년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이 생겨 옮겨가기 전까지였습니다. 이후에는 세종문화회관의 별관으로 이용되다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금까지 서울시의회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 가면 의장석이 있는 무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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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시민회관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자리에 예술 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무렵입니다. 이곳은 체신부가 있던 자리로 전쟁 후 경기고등학교의 가교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딴 ‘우남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대형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개관한 것은 1961년 11월, 군사정변 6개월 후입니다. ‘우남회관“이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새 이름은 ’시민회관‘이었습니다. 냉난방 시설과 승강식 2층 회전 무대를 갖춘 최신식 대형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대한극장의 5.5배에 달할 만큼 우리나라 최고,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화재로 전소될 때까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이었습니다. 1972년 12월 2일 저녁 8시 27분 ’MBC 10대 가수 청백전‘이 끝날 무렵에 발생한 화재는 다음날 새벽 4시경에야 모두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이 불로 관장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다쳤습니다. 건물은 다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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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엄청난 규모의 ‘문화예술의 전당’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이름도 개관 직전에 새로 만든 것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은 그야말로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입니다. 국가적 사업으로 대통령이 설계도를 검토할 정도였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이 4,300석에 이르는 매머드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개관 직후 80일 동안 이어진 개관 기념 예술제도 전례 없는 이벤트였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NHK 교향악단, 이탈리아 팔마오페라단, 오스트리아 국립오페라단, 영국 로열발레단, 빈 소년합창단 등 해외 예술단은 이전에 없던 화려한 라인업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단숨에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 공연 예술의 중심이자,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사례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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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또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운영 주체는 서울시 직영 체제에서 재단 법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소속 예술단 중 가장 오래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별도 법인으로 새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러고도 9개의 예술단이 남았습니다. 공간 구성도 많이 바뀌어 새로운 극장들도 더해졌습니다. 올해 블랙박스 스타일의 소극장이 개관하면 실내 공연장만 4개가 됩니다. 컨벤션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었고 전시장은 대폭 늘어났습니다. 예술단이 상주하는 공간은 계속 증축되었고 식음료 서비스는 강화되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이 그러하듯 압축적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왔습니다. 예술이나 개별 예술 공간도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회·문화·경제·산업·교육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겹쳐집니다. 예술시장 자접적체가 드라마틱하게 흘러왔습니다. 폭발하는 수요와 공급으로 지형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고, 세종문화회관이 독주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예술 공간에 대한 기대와 요구 자체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지난 30~40년 간 우리가 겪은 변화는 이전의 그 어떤 시기, 다른 어느 나라의 예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변화의 도도함은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닿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런 세월의 누적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술 공간 하나의 40년 역사라 치기에는 너무 많은 기억과 감성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이 예술 공간을 거쳐 간 예술가와 스태프만이 아닙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세종문화회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민들이 기억의 주인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이유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의 변화는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2018년에는 또 다른 페이지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변화는 크면 클수록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손을 내밀면 여러분께서 잡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