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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오브 오사카 거리의 공연장, 도톤보리 탐닉

브로드웨이 오브 오사카 거리의 공연장, 도톤보리 탐닉

글/사진. 김현신(<디스 이즈 오사카> 저자)

일 년에도 몇 번씩 오르는 오사카 여행길이지만,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어김없이 도톤보리다. 최근에 딱 한 번 여행 중간 들른 적이 있는데,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내내 도톤보리의 잔영이 머릿속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 금단 증상을 겪어야 했다. 기괴하고 박력 있으며, 불규칙하고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점점 빠져드는 도톤보리는 거리 전체가 기다란 공연장과도 같아서 바쁜 일정에 지쳐 움츠러든 온몸의 감각신경을 매번 기분 좋게 흔들어 깨워준다.

간판이 버스킹을 한다

오사카 최대 관광지 도톤보리는 흔히 명동에 비유되곤 한다. ‘오사카 사람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다 망한다’는 뜻의 쿠이다오레(くい倒れ)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온갖 장르의 식당들이 메인 스트리트는 물론 뒷골목까지 가득 차서 조금의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톤보리가 명동과 다른 점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내건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입체 간판들이 뒤엉켜 마치 애니메이션 배경 속으로 뛰어든 듯 비현실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때로 움직이기도 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므로 일종의 버스킹 공연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우스꽝스럽고 장난 같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도톤보리에 이렇게 많은 음식점이 생겨나게 된 것은 에도 시대(17세기 말~18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톤보리는 크고 작은 가부키 공연장이나 인형극장이 밀집한 극장가였기에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는 연극인들이나 공연장을 찾은 손님을 상대로 한 식당과 찻집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상점은 색색의 간판과 깃발로 무장한 극장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간판 경쟁을 시작했다. 현재는 스티로폼을 압축해 만든 폼 아트 조형물에 특수 물감을 바른 입체 간판이 주를 이루며 과거보다 더욱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화끈하고 도전적인 기질의 오사카 상인들이 간판으로 기 싸움을 하며 한판 배틀을 벌인다고 할까. 덕분에 거리를 걷는 내내 눈과 혀는 즐겁고, 온갖 소음이 귀를 간지럽힌다. 이것이 내가 오사카를 처음 가든 여러 번 가든 본능적으로 도톤보리에 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곳엔 지금도 공연장이, 배우가 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도톤보리는 에도 시대 때 ‘오사카의 브로드웨이’로 급격한 부흥기를 맞이했다. 오랜 전란 끝에 전국이 통일되고 에도 막부가 안정되면서 경제가 발전하자 오사카에서는 서민 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쌓게 된 상인 집단 초닌(町人)이 문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가부키(歌舞伎)나 인형극과 같은 공연이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 중심이었던 도톤보리에는 연극계를 대표하는 5대 극장이 들어서며 일본의 각종 고전 명작의 초연이 펼쳐졌다. 지금은 대부분 극장이 역사 속으로 퇴장해 먹고 마시는 유흥가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쪽에서는 과거의 명성을 이어 나가는 연극인들의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도톤보리에서 볼 만한 공연장 BEST 4

No.1 오사카 쇼치쿠자(大阪松竹座)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공연인 가부키를 메인으로 각종 뮤지컬, 연극, 콘서트가 개최된다. 가부키는 치밀하게 짜인 무대 장치, 노래, 춤, 연기로 구성된 종합 예술로,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한 번쯤 볼 만하다. 과거에는 여성도 출연했지만, 풍기 문란을 이유로 출연이 금지되어 오늘날까지도 모든 출연진이 남성인 점이 독특한데, 혹독한 연습을 거친 여장 남자 배우인 ‘온나가타(女方)’는 웬만한 여성 보다 더 아름답다.

주소 1-9-19 Dotonbori, Chuo-ku, Osaka-shi
오픈 10:00~공연 끝날 때까지
홈페이지 www.shochiku.co.jp/play/shochikuza

No.2 난바 그랜드 가게츠 극장(なんばグランド花月劇場)

1912년 탄생한 일본 최대 연예 기획사 중 하나인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운영하는 희극 전용 극장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로라하는 일본 대표 개그맨들의 공연이 365일 쉬지 않고 펼쳐진다.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2인 1조의 만담, 부채와 수건을 든 채 혼자 이야기를 진행하는 라쿠고(落語) 등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다.

주소 11-6 Nanbasennichimae Chuo-ku, Osaka-shi
오픈 10:00~공연 끝날 때까지
홈페이지 www.yoshimoto.co.jp/ngk

No.3 도톤보리 카도자(道頓堀角座)

2013년 도톤보리 한복판에 오픈한 희극 전용 극장이다.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 이어 오사카를 대표하는 연예 기획사 쇼치쿠 예능 주식회사에서 운영한다. 공연장 앞 광장에 푸드 트럭과 오픈 테라스를 설치하고 관광객도 친근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꾸몄다. 128석 규모의 소극장에서는 개그 콘서트와 만담 등이 열린다.

주소 1-4-20 Dotonbori, Chuo-ku, Osaka-shi
오픈 공연에 따라 다름
홈페이지 www.shochikugeino.co.jp/kadoza

No.4 국립 분라쿠 극장(国立文楽劇場)

오사카에서 발전한 전통 성인 인형극 분라쿠를 볼 수 있다. 사람보다 더 섬세한 인형의 표정과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10~20년간 수련한 3명의 조종사가 인형 한 개를 함께 조종한다. 1명은 다리, 1명은 얼굴과 오른팔, 1명은 왼팔은 담당하며, 조종사 외에도 대사와 내용을 노래로 전하는 다유(太夫), 전통 악기인 샤미센(三味線) 연주자가 출연한다.

주소 1-12-10 Nipponbashi, Chuo-ku, Osaka-shi
오픈 공연에 따라 다름(전시실 10:00~18:00)
홈페이지 www.ntj.jac.go.jp

가을에 즐기는 도톤보리 한 편

오사카를 찾는 관광객 중 열에 아홉이 거쳐 가는 도톤보리는 대부분 인기 관광지가 그러하듯 모델 코스라는 게 존재한다. 에비스바시 다리 위에서 글리코 런너 간판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은 다음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초밥 중 몇 가지를 골라 먹고, 값싸고 물건 많은 돈키호테에서 두 손 가득 쇼핑을 하고 나면 대략 2시간 정도의 도톤보리 관광은 무난히 끝마쳤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올가을 좀 더 특별하게 기억되고 싶은 오사카 여행을 꿈꾼다면, 맘에 드는 공연 한 편을 골라서 관람해보길 권한다. 참, 도톤보리는 한때 상하이에서 건너 온 재즈 붐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공연 관람 후, 라이브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재즈 보트(한정 운항)를 타고 도톤보리 운하를 천천히 유영해보는 것도 가을의 낭만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도톤보리만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