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예술 공간의 변신, 새 극장 만들기에 대하여

예술 공간의 변신,
새 극장 만들기에 대하여

글.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예술공간이 변신해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시설 노후화와 환경의 변화다.
세종문화회관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도 새 극장인 ‘세종S씨어터’를 짓는 일이다.

세종문화회관 개관당시 전경

1978년 개관 당시의 세종문화회관의 전경

세종문화회관은 여러 개의 건물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1978년 개관 당시와 많이 다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치고 더해왔다. 소규모 클래식 연주를 많이 하던 소강당은 M씨어터로 이름을 바꿨고, 수용하는 공연 장르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소위 ‘종합공연물’을 주대상으로 바꿨다. 개관 당시 번듯한 국제회의장으로 잘나가던 공간은 실내악전용홀인 체임버홀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십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세종문화회관이 가진 세 개의 실내 공연장 중 메인에 해당하는 대극장도 변화를 겪었다. 개관 당시 대극장은 4천석에 육박하는 엄청난 객석규모와 동양 최대로 기록된 파이프 오르간 등의 위용을 자랑했다. 크기도 컸지만 무대에 오르는 공연 장르도 다양했다. 클래식 음악회부터 오페라, 무용, 뮤지컬까지 수용한 전형적인 다목적극장이었다. 대극장이 대규모 개·보수에 들어간 것은 2003년과 2004년이었다. 객석수를 3,022석으로 대폭 줄이는 등 변화가 작지 않았다.
예술 공간이 변신해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설 노후화다. 공연장이 20~30년마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시설이 낡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기술혁신이 눈부신 사회에서 시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노후화된다. 두 번째는 환경의 변화다. 예술가, 관객 그리고 익명의 시민에 이르는 공연장 고객의 니즈가 바뀐다. 기대수준도 달라진다. 전문 공연장이 유행하는 경향은 관객의 욕망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경제, 문화, 사회, 산업 등 모든 면에서 압축적 변화를 겪는 우리 사회에서 어찌 보면 공연장을 둘러싼 환경도 예외일 수 없다. 공연장 자체는 하드웨어에 속하는 만큼 더디더라도 끊임없이 변화를 고민한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설계이미지

2018년 개관을 앞두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설계이미지

세종문화회관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새 극장을 하나 더 갖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일도 따지고 내려가 보면 이야기 꼬리가 길다. 얼마 전 내부 공모를 통해 세종S씨어터라는 이름을 가진 블랙박스 극장 이야기다. 이 공연장이 가진 첫 임시이름은 ‘장영실극장’이었다. 극장의 예술동을 증축하면서 지하에 소극장을 넣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의 상징성을 따지다보니 조선의 창의적 인물인 장영실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정되고 말았다. 공연장이 들어갈 공간을 비워둔 채로 건물은 준공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의 일이다.
세월이 흘렀다. 2015년 여름에 들어서면서 빈 공간에 새 극장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 공간은 두 번째 임시이름인 ‘블랙박스극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서울시, 서울시의회 등과의 협의와 절차를 거쳐 사업이 승인되었고, 일부 예산이 2016년 예산에 편성되었다. 설계자가 확정된 것은 2016년 6월이었다. 공사 착공은 2017년 5월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세종S씨어터는 약 75%의 공정률을 기록하고 있다.

세종S씨어터라는 새 극장은 예술 공간의 변신이라는 맥락에서 모색되고 있다. 새로 짓는 극장이 블랙박스극장 스타일인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위 ‘프로시니엄극장’ 스타일과 대조된다. ‘프로시니엄극장’은 서구의 근대가 낳은 산물이다. 프로시니엄극장이 등장한 것이 17세기다. 프로시니엄은 객석에서 무대를 볼 때 무대를 감싸고 있는 틀을 말한다. 프로시니엄을 기준으로 객석과 무대가 나뉘며 이것은 현실과 가공된 세계로도 나뉜다. 프로시니엄극장은 객석과 무대가 엄격히 구분된다. 어두운 객석의 관객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에 온전히 집중한다. 서구에서 극장의 대세는 단연 프로시니엄극장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이후 극장들도 마찬가지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하여 전국에 있는 중대형 극장이 거의 예외 없이 프로시니엄아치를 가진 극장이다. 극장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전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술에는 터부 또는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극장도 그 대상이다. 무대 위에 객석을 올리거나 아예 무대와 객석을 바꾸기도 한다. 공연 공간을 벗어난 ‘장소특정형 공연’도 하나의 흐름이다. 프로시니엄극장에 알맞은 콘텐츠 못지않게 이를 벗어나고자하는 시도와 공간의 모색도 활발하다. 그 중의 하나가 블랙박스극장이다. 극장이 검은 색의 직육면체 상자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대와 객석이 경계를 허물며 기존의 극장문법을 무너뜨린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프로시니엄극장의 보완적인 형태로 떠올랐다.
세종문화회관이 세 개의 전통적 실내 극장에 블랙박스극장을 하나 더하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규모는 가장 작고 지하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 공간 중 하나다. 그만큼 시대의 무게도 무겁다. 새 극장은 세종문화회관의 동시대성을 한 단계 상승시켜주고 나아가 예술 공간이 미래에 열려있음을 과시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새 극장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