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극장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극장

글.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라시아 순방의 후반부를 동행했다.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예술기관의 단체장이 순방단에 낀 것은 순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 때문이었다.

마린스키 극장 본관 내부

마린스키 극장 본관 내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러 도시 이미지 중에서도 혁명과 예술의 이미지가 특히 강하다. 금년은 러시아혁명 100년이 되는 해다. 혁명의 진원지였고 혁명정부가 있던 곳이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러시아 정교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전통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지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독특한 브랜드가 겹쳐져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한 것이 도시의 예술적 이미지다.
예술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핵심적인 서브 브랜드 중의 하나가 마린스키 극장이다. 마린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3개를 비롯해서 공연장만 5개를 운영하는 복합예술공간이자 강력한 예술제작집단이다. 전형적인 제작 극장인 셈이다. 공간 운영은 물론 콘텐츠 제작과 운영까지 집단 내부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지 않고 러시아 전역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서 유통된다. 오페라와 발레는 물론 오케스트라도 따로 공연을 다닌다. 1급 예술상품의 깃발을 흩날리며 도시와 국가의 이미지에 기여한다.
마린스키라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극장장 발레리 게르기예프다. 그는 마린스키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넘어 러시아의 예술지형에서 심장과 같은 존재다. 1988년 예술감독, 1996년 총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마린스키의 핵심적인 지위 두 개를 모두 유지하고 있다. 20년 이상 예술과 행정을 모두 지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린스키 극장과 같은 매머드급 예술기관에 예술감독과 행정감독을 수십 년씩 겸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러시아 예술판에서의 그의 지위가 독보적인 탓이다.

마린스키 콘서트홀 입구에서 극장관계자와 함께

마린스키 콘서트홀 입구에서 극장관계자와 함께

마린스키 콘서트홀 가는 길

마린스키 콘서트홀 가는 길

운하를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된 마린스키 극장 본관과 신관

운하를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된 마린스키 극장 본관과 신관

러시아 방문 중 박원순 시장이 게르기예프 극장장과 만났다. 비슷한 나이대의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했다. 대화를 주도한 박 시장은 예술을 통한 남북 교류에 게르기예프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안했다. 러시아의 동방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게르기예프는 선뜻 손을 맞잡았다. 마린스키 극장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광화문의 예술복합단지에 대한 협조도 요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극장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장해서 성공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이다. 전통의 오페라 하우스인 마린스키 본관(구관)에 더해 콘서트홀(2006년)과 마린스키 2관(신관, 2013년)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선물한 장본인이다. 마린스키 제2관은 마린스키 본관 바로 옆에 좁은 운하를 다리로 연결해 지었다. 전통의 공간과 현대의 공간을 조화시킨 성공 사례다. 2016년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공간의 확장은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예술집단에게 에너지 확장의 결과이면서 촉진제 역할을 했다.

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 건너에 자리한 에르미타주 박물관

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 건너에 자리한 에르미타주 박물관

게르기예프는 10여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 인연이 있다. 2005년 바그너의 ‘링 시리즈’ 전작을 마린스키 극장 버전 그대로 공연한 것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과 신축할 콘서트홀을 포함한 예술복합단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참고할 만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전용 공간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공간의 다양한 활용도 검토해보라는 것이었다. 실제 그가 주도하여 건립한 마린스키의 새 콘서트홀에서는 오페라도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광장의 한 편을 차지하는 광화문광장은 그 미래를 두고 뜨겁게 논쟁 중이다. 새 정부 출범이후 부쩍 본격화되었다. 광화문과 주변의 역사성을 간직하면서 역동적인 현대사를 품고, 광장으로서의 기능도 확보하는 것이 요체다. 소위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라고 불리는 변화의 한 부분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예술복합단지가 있다. 격렬한 현대사의 현장을 지킨 증인이자 광장의 기능을 풍성하게 할 주체 중 하나다. 세종문화회관과 예술복합단지는 강력한 장점과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서울 그리고 한국의 예술 랜드마크로 작동하기에 충분하다. 마린스키 극장의 사례를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러시아총영사관초청 문화예술인과 간담회

러시아총영사관초청 문화예술인과 간담회

마린스키 극장 총 예술감독 게르기예프와 만나다

마린스키 극장 총 예술감독 게르기예프와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