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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크라우스의 천의무봉 한 아름다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릴리 크라우스의 천의무봉 한 아름다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고, 이제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담은 새해를 맞으며, 고난의 시기와 시련의 세월을 이겨낸 ‘릴리 크라우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한번 만나보세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 “아이들에게는 너무 쉽고, 어른에게는 너무 어렵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세파에 시달린 어른들은 단순하고 명료한 모차르트 음악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특히, 간결하기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은 ‘듣는 사람은 쉽지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매우 어려운 곡’으로 유명합니다. 이 곡들은 연주하는데 뛰어난 기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피아니스트는커녕 옆집 여중생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인데, 피아니스트들에게 어렵다는 말이 쉽게 이해 가지 않으신다고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전곡이 17~19곡에 이르지만, 이 소나타들의 모든 음표를 다 합한다 하더라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안에 있는 음표들의 수보다도 적다고 합니다. 기교적으로만 본다면 그리 어려운 곡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중생’의 신분이 아니라 적어도 ‘피아니스트의 신분’이라면, 연주를 통해 모차르트의 밝은 천성과 함께 그를 괴롭혔던 삶의 무게와 고독, 그리고 음악 속에 있는 그의 슬픔까지도 표현하여야만 합니다. 기능적으로는 어려울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한 음표 안에 숨어있는 모차르트의 밝음과 어둠까지 고스란히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로서 이 곡을 연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연주사에서는 잉그리드 헤블러, 알리시아 데 라로차, 마리아 조앙 피레스, 미츠코 우치다 등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의 세계적인 거장들이 존재해왔습니다.

릴리 크라우스

이상하게도 모차르트의 피아노 명반들은 대부분 여성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아마도 모차르트의 천의무봉 한 음악 세계를 표현하기에는 감수성 풍부한 여성 연주자들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감수성 풍부한 남성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아무튼 수많은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고, 또 명연들을 만들어냈지만, 이 곡을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피아니스트가 바로 ‘릴리 크라우스’입니다.
1903년 헝가리 태생인 그녀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17세에 부다페스트 왕립 음악원에서 아르투르 슈나벨, 코다이 졸탄, 바르토크 벨라를 사사했으며, 이후 젊은 나이에 매우 이례적으로,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빈 음악원’의 교수로 부임합니다. 그녀가 헝가리 출신이었음에도 그녀를 추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그녀가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최고 전문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골드베르크’와 함께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소나타들을 연주하며 화려하게 연주회 무대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더구나 유럽 무대뿐 아니라 당시에는 대단히 드물었던 아시아 투어에까지 나서게 됩니다. 일본까지 연주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음악가로서의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 아시아 투어를 떠났을 때, 그녀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포로가 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3년간 일본군 포로로 생활하게 됩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 함께 연주를 떠났던 ‘시몬 골드베르크’ 역시 일본군의 포로가 됩니다. 수용소의 청소부가 ‘시몬 골드베르크’의 바이올린을 숨겨 준 덕분에 숨어서 가끔 곡을 연주 했지만, 이내 현이 끊어지는 바람에 기타 줄을 메고 연주를 하거나, 악보가 없어 기억에 의존해 그린 악보로 연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그녀를 알아본 한 장교 덕분에 그녀의 소식이 일본에 알려졌고, 일본 본토에 있던 그녀의 팬들은 릴리 크라우스를 위해 피아노와 악보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녀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음악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유럽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그 해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게 됩니다. 그녀의 나이 51세 때 녹음한 모노 녹음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리는 레코딩입니다.
밝음과 슬픔이 내재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고난의 시기와 시련의 세월을 이겨낸 ‘릴리 크라우스’ 만큼 더 잘 표현할 피아니스트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피아노는 마치 조개가 긴 세월 품어 만들어낸 영롱한 진주와도 같이 기품 있고 단아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고, 이제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담은 새해를 맞으며, ‘은쟁반을 구르는’ 진주처럼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그리우시다면 ‘릴리 크라우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한번 만나보세요.

릴리 크라우스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모음집

릴리 크라우스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모음집

1번째 : Piano Sonata No. 8 in A minor, K.310 (피아노 소나타 8번 가단조)

2번째 : Piano Sonata No. 10 in C, K.330
(피아노 소나타 10번 다단조 작품번호 330)

3번째 : Piano Sonata No. 11 in A, K.331 (피아노 소나타 11번 가장조)

4번째 : Piano Sonata No. 15 in C, K.545 (피아노 소나타 16번 다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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