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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크리스마스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전장의 크리스마스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가끔은 한 곡의 노래, 한 곡의 음악이 목숨을 위협하는 그 어떤 강력한 무기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올해에는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음악을 벗 삼아, 행복하고 멋진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1914년의 겨울! 지금으로부터 약 102년 전인 이때의 겨울은, 아마 역사상 가장 추웠던 겨울 중 하나였을 겁니다. 특별히 이때 지구에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해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발발한 이 최초의 세계 전쟁은 바야흐로 서서히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바깥 공기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마음마저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 혹독한 겨울이었겠죠? 물론 가장 추웠을 사람들은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이었겠지만, 아들과 애인을 전쟁터로 보낸 가족들과 연인들의 마음도 전장의 군인들 못지않게 시리고 추웠을 겁니다.

롤란도 빌라존

20세기 초창기의 전쟁은 요즘 전투처럼 폭격기를 타고 날아가서, 적진에 포탄을 퍼붓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오는 전쟁이 아니라 전투기도 없고 미사일도 없었으며, 막 개발되었던 탱크조차도 그 위력을 과시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아날로그 전쟁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군인들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적을 상대로 그들에게 직접 방아쇠를 당겨야 했습니다. 비인간적이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때의 전쟁은 어쩌면 군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군인들의 마음은 더 춥고 서늘했겠지요.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맞은 1914년 12월! 프랑스 북부, 당시 독일군 점령 지역에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전투를 이어가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게 된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역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죠. 100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독일군, 영국군, 프랑스군이 서로의 참호 속에서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습니다.적군을 한 명이라 더 죽여야만 승리할 수 있었던 이 전투는,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도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어둠을 틈타 총소리가 멎은 휴전 시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살벌한 전쟁터 어디에선가 난데없이 백파이프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거죠.

나탈리 드세이

영국군의 참호 속에서 시작한 이 노래는, 참혹한 전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코틀랜드 군인들이 시작한 노래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크리스마스’를 위해, 손에 든 총을 내려놓고 대신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어쩌면 앞으로 생사를 달리할지도 모르는 전우들과 함께, 마지막 노래를 불렀던 거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끝나자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적군인 독일군의 참호 쪽에서 ‘Stille Nacht(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독일어 캐럴이 답가처럼 들려온 겁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영국군의 백파이프 반주에 맞춰서 독일군이 노래를 부르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대립하던 양 진영은 이쪽 참호 저쪽 참호를 오가며, 마치 동네의 노래자랑처럼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 부르게 됩니다. 서로의 목숨을 다투던 전쟁터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된 겁니다. 총알이 빗발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잔인한 전쟁터는 갑자기 박수로 가득 찬 콘서트장이 되고, 이윽고 각 군의 지휘자들은 갑작스럽게 ‘크리스마스 휴전’에 합의합니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간에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놔두고 세상과 작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겁니다. 굳이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니었더라도 그랬겠지만 말이지요.
노래 한 곡과 음악으로 비롯된 이러한 평화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모든 군인이 총과 무기를 내려놓고, 전투 중에 숨진 전사자들을 서로 함께 묻어주고, 같이 술도 나눠 마시며, 카드놀이도 같이 하고, 또 함께 축구 경기를 하기도 합니다.

자~ 이제 몸과 함께, 마음도 나눠버린 이들이 다시 서로를 향해 죽음의 총구를 들이댈 수 있었을까요? 후일담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Joyeux Noel)>를 찾아보세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영화 속의 이야기 같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가끔 현실에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한 곡의 노래, 한 곡의 음악이 목숨을 위협하는 그 어떤 강력한 무기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왜 갑자기 영화 이야기냐고요? 그건 바로 이 영화 속에서, 배우 대신 노래를 불러준 ‘대역 가수’들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와 테너 ‘롤란도 빌라존’이기 때문이지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높은 음역대와 기교를 자랑하는 소프라노)로 최고의 명성을 날린 나탈리 드세이와 쓰리 테너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불렸던 롤란도 빌라존이 목소리로 출연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켜준답니다.
비록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괴롭고 우울할지라도, 올해에는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음악을 벗 삼아, 행복하고 멋진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Joyeux Noel [Original Soundtrack]

Joyeux Noel
[Original Soundtrack]

아티스트 : Natalie Dessay(나탈리 드세이), Rolando Villazón(롤란도 빌라존), London Symphony Orchestra(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Philippe Rombi(필립 롱비)

앨범 종류 : OST

발매일 : 2005. 11. 28

장르 :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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