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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올가미에 걸린 인간이 저지른 범죄

오페라 <맥베드> 자세히 보기

‘말’의 올가미에 걸린 인간이 저지른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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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도윤(리브레티스트, 공연 해설가, <셰익스피어, 그리고 인간> 저자)

셰익스피어와 베르디의 첫 만남이 된 오페라 <맥베드>. 이 작품은 베르디의 작품 중 가장 개성 있고 극적 표현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16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맥베드>를 선보인다. 어떤 무대로 관객을 맞이할지 기대된다.

샤세리오가 그린 맥베드와 세 마녀들, 1855년 작

샤세리오가 그린 맥베드와 세 마녀들, 1855년 작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군이자 글래미스의 영주인 맥베드(이탈리아 어로 막베토 Macbeto)는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녀들과 마주친다. 마녀들은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드’를 찬양하고 그가 ‘코더의 영주’가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왕이 되실 분’이라고 한다. 곁에 있던 뱅쿠오(이탈리아 어로 반코 Banco)에게는 ‘왕이 될 수 없지만 자손이 왕이 될 분’이라고 한다. 마녀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 맥베드는 코더의 영주가 되었다는 전갈을 받는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자신과 한 몸인 부인, 레이디 맥베드에게 알린다. 던컨(이탈리아 어로 둔카노 Duncano) 왕이 맥베드의 집에 머물게 되자 레이디 맥베드는 남편을 부추겨 잠들어 있던 왕을 살해한다. 맥베드는 왕좌에 오르지만, 왕좌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감행한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정적들에 대한 공포감에 갈등하던 맥베드와 레이디 맥베드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맥베드>의 창작 배경

이먼 킨리사이드가 맥베드 역을 맡은 2011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베르디 <맥베드> 실황”></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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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킨리사이드가 맥베드 역을 맡은 2011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베르디 <맥베드> 실황

셰익스피어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작가였다. 왕족과 귀족, 평민층까지 아우르는 다양성과 세월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에게 부와 명예를 선사했고 현재도 명성이 지속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라파엘 홀린셰드의 <연대기(Chronicles)>에 기록되어 있는 실존했던 스코틀랜드 귀족 맥베드에게서 영감을 받아 <맥베드>를 집필했다.
현재 우리가 읽고 관람하는 <맥베드>의 대본은 등장인물들의 행위나 대화가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완전본이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콤팩트한 내용으로 인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맥베드>는 장면 전환이 빠르고, 스릴러·미스터리 요소가 담겨 있어 관객들을 단숨에 극에 집중시킨다. <맥베드>가 유난히 마녀나 주술과 같은 어둡고 초자연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 국왕이었던 제임스 1세의 영향이 크다. 제임스 1세는 ‘악마학(Demonologie)’이라는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주술과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 셰익스피어는 제임스 1세가 즉위한 후 그의 마음에 드는 극을 집필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주인공인 맥베드는 실존 인물이나 사건과는 다르게 묘사되었다. 실존 인물 맥베드는 1040년경 모레이 전투에서 던컨 1세를 제거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서 던컨 왕을 인자하게 묘사하여 맥베드의 죄를 강조한다. 맥베드 부부를 처참한 결말로 이끈 것은 반역자의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제임스 1세의 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를 ‘작가’라고 칭하기보다 ‘극장인(Theatre Man)’이라 칭한다.

링컨 센터에서 에단 호크와 앤 마리 더프가 맥베드와 맥베드 부인을 연기하고 있다

링컨 센터에서 에단 호크와 앤 마리 더프가
맥베드와 맥베드 부인을 연기하고 있다

그는 예술성만을 강조한 공연을 만들기보다 다양한 계층이 열광하는 대중성을 갖춘 공연을 만들어 흥행을 성공시켰다. 셰익스피어는 극작뿐 아니라 연기, 연출, 극장주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전천후 공연 아티스트이자 기획자였던 것이다. 순수 창작물 또는 기존에 있던 작품을 공연 상황에 따라 탄탄하고 흥미롭게 각색하는 셰익스피어의 능력, 대사의 속도나 숨소리마저도 아름다운 음악적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대본은 후세에 태어날 작곡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한 명이 주세페 베르디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맥베드> 대본을 직접 다듬고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대사의 정리를 맡겼다. 1847년 초연된 오페라 <맥베드>는 베르디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자주 공연되지 않는다. 두 주인공 맥베드와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드에게 철저하게 집중되어 있는 작품이어서, 노래를 통해 탁월한 심리적 묘사가 가능한 노련한 가수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덫에 걸려들어 공포를 창조해내고 그 안에 사로잡혀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맥베드는 바리톤이,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드는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부른다. 맥베드는 용맹한 척하지만 음울하고 유약해져야 하는가 하면 레이디 맥베드는 남편을 채근하여 살인으로 이끄는 최고의 악녀였다가 몽유병에 걸리고 생을 마감하는 곡절을 표현해야 한다. 살인을 앞두고 부부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함께 갈등할 수 있어야 한다.

죄책감, 그 파괴적인 힘

샤세리오가 그린 뱅쿠오의 혼령을 보는 맥베드, 1854년 작

샤세리오가 그린 뱅쿠오의 혼령을 보는 맥베드, 1854년 작

푸실리가 그린 투구 쓴 환영을 보는 맥베드, 1973년 작 어둠 속의 세 마녀가 섬뜩하다

푸실리가 그린 투구 쓴 환영을 보는 맥베드, 1973년 작
어둠 속의 세 마녀가 섬뜩하다

전장에서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맥베드. 그가 왜 유독 던컨 왕 살해에는 죄책감을 가진 것일까? 그간 맥베드가 수행해온 살인은 애국심과 충성심을 바탕에 둔 명분 있는 학살이었다. 반면, 던컨 왕 살인은 군주를 죽인 반역이다. 살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녀들의 예언을 스스로 현실화시킨 맥베드는 그 외의 예언들이 이루어져 자신이 피의 대가로 얻은 왕좌가 타인에게 넘어가게 될까 번민한다. 자신이 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것처럼 누군가 왕좌를 탐내고 같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법한 왕위 계승 후계자가 살아 있다는 것도 위험요소다. 왕좌에 대한 욕망은 생존 전쟁으로 변한다. 맥베드의 야욕은 동료의 생명을 앗아가고 부하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맥베드에 의해 연이어 벌어진 살인은 좀 더 근원적인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던컨 왕이나 뱅쿠오는 사망하지만, 후손이 있다. 맥더프(이탈리아 어로 막두프 Macduff)는 일가족을 잃지만, 자신은 살아남는다. 하지만 맥베드는 뒤를 이을 후사가 없다. 저스틴 커젤이 감독을 맡은 영화 <맥베드>에서는 이 부분이 강조되었다. 영화에서는 맥베드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기에 왕좌의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다. 맥베드 부부는 사랑하는 연인으로서의 부부이기보다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공범이자 왕좌를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전우에 가깝다. 그럼에도 양심이 있고 피가 끓는 인간이기에 맥베드와 레이디 맥베드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결국엔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오페라 <맥베드>에 부쳐

브렛 힐더가 찍은 1982년 맥베드 공연 속 마녀들

브렛 힐더가 찍은 1982년 맥베드 공연 속 마녀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으로도 오페라 <맥베드>가 자주 공연되고 있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선보일 <맥베드>는 연말에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공연으로 꼽힌다. 이 공연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연출가 고선웅의 오페라 연출 데뷔작이며, 구자범 지휘자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맥베드>는 빠른 장면 전환이 많은 만큼 변형이나 이동이 가능한 무대가 요구된다. <단검의 환영> 같은 작품 속 판타지적인 요소의 재현 방법도 중요하다. 권력욕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군주를 살해한 맥베드는 명장이었던 과거와는 판이한, 악령에 쫓기는 범죄자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가 겪는 내적인 불안감은 시각화되어 살해당한 혼령의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펼쳐진다. ‘기괴한 자매들(Three Weird Sisters)’로 표현되는 마녀들은 여자 같지만 수염이 있는 양성 또는 무성의 존재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맥베드 역할을 해서 화제가 된 LA오페라의 <맥베드> 속 마녀들은 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등장했다. 고선웅 연출의 손에서 탄생하는 마녀들이나 혼령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각적인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음악적 표현이다. 베르디는 <맥베드>에 등장하는 작은 배역들을 삭제하고 맥베드와 레이디 맥베드를 작품 전체를 좌우하는 큰 축으로 세웠다. 원작에서 세 명인 마녀들은 오페라에서 합창으로 표현되어 내레이터 기능을 한다. 레이디 맥베드의 강렬한 등장이 돋보이는 ‘편지의 장면’, 맥베드의 ‘광란의 장면’, 마녀들의 ‘예언의 장면’, 레이디 맥베드의 ‘몽유병 장면’들의 음악적 특성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마녀들의 주문 속으로 끌려들어가 맥베드 부부의 범죄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오페라 `맥베드`

오페라 `맥베드`

기간 : 2016.11.24 (목) ~ 2016.11.27 (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평일 19시 30분 / 토,일 17시

티켓 : VIP석 12만원, R석 8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문의 : 02-399-1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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