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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예술 경영의 길

책으로 보는 예술 경영의 길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내가 본격적으로 예술경영 분야의 일을 시작한 것은 1987년이다. 일을 시작한 초기는 예술경영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때였다.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고민이 왕성할 무렵 인접 분야의 기록들은 다 공부거리였다.

책 '전석 매진 - 필립 코틀러의 공연예술 마케팅 전략' 표지

최근 한 일간지로부터 ‘나의 애독서’라는 칼럼 원고를 요청받았다(이 글은 신문에서 볼 수 있다. 세계일보 8월 22일 자, www.segye.com/content/html/2016/08/22/20160822002940.html). 학교를 떠난 이후 학습이라 할 만한 것이 없던 차라 잠시 난감했다.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기면서 나와 같이 온 책은 달랑 열 권 남짓이었다.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들이지 특별히 아끼는 책들은 아니었다. 생각이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다. 30년째 몸담고 있는 이 현장을 나는 어떻게 보고 학습했던가.

내가 본격적으로 예술경영 분야의 일을 시작한 것은 1987년이다. 예술의전당이라는 당시 초유의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도 그렇지만 예술 부문도 지난 30여 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예술경영이라는 역할도 그 변화의 산물이다. 일을 시작한 초기는 예술경영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때였다. ‘예술행정’이라는 용어가 상대적으로 더 사용되었다.

나는 소위 ‘자생적 예술경영(학)자’다. 관련된 공부를 제도권 교육이나 연구 과정을 통해 학습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현장에서 일로 시작하여 고민거리를 찾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학습이고 공부였다. 학문적 정체도 어슴푸레한 예술경영 부문을 독학으로 익힐 무렵 도움을 준 것은 당연하게도 예술경영 책이 아니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 자체가 변변할 리 없었다.

예술경영의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고민이 왕성할 무렵 인접 분야의 기록들은 다 공부거리였다. 심지어는 우연히 발견한 서점 운영과 세일즈 기법과 같은 매뉴얼은 감동적이었다. 서비스마케팅은 공연마케팅과 거의 겹쳐서 해석할 수 있었다(그중에 이유재 교수의 서비스마케팅 책은 재미까지 있었다). 마침내 1997년 <스탠딩 룸 온니 : 공연예술 마케팅 전략>(이 책은 초판 출판 후 10년만인 2007년 용호성 박사의 번역으로 <전석 매진 - 필립 코틀러의 공연예술 마케팅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판되었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비로소 갈증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다. <전석매진>은 공연예술 부문에서의 마케팅적 측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 범위로 보나 질적인 수준의 측면에서 보나 ‘바이블’이라고 불릴 만하다.

책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 표지

이에 비해 내가 ‘나의 애독서’라고 꼽은 <공연예술 – 경제적 딜레마>(2011년 임상오 교수가 번역 출판한 번역본 제목은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다)는 좀 다르다. 1966년 출판된 이 책은 현대 문화경제학 또는 예술경영학의 시작이 되는 저서다.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영문판은 복사본인데 속표지에 ‘98.12.11’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그 옆에 내 사인도 있다. 몇 장 넘기면 성균관대 도서관이라는 큰 네모 도장이 보인다. 성균관대 도서관이 소장한 책이 복사되어 국내에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무렵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다. 출판된 지 30년이 넘었고 내가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은 때였다.

6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놀라운 성취로 가득 차 있었다. 각각 1922년과 1933년에 태어난 경제학자 윌리암 보몰과 윌리엄 보웬이 50년 전에 지은 책이 지금 봐도 생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지런하고 끈질긴 경제학자는 공연예술 여기저기를 샅샅이 파헤친다.

그들의 유명하고 논쟁적인 주장인 ‘비용 질병’ 또는 ‘생산성 격차’로 요약해버리기는 아깝다. 공연예술단체와 예술가의 속성과 재정 이슈들을 두루 다룬다. 관객으로부터의 수입 외에 기부와 공공지원 등의 재원조성에도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무려 29,413개에 달한 표본을 대상으로 한 관객 조사는 본격적인 첫 관객 조사라고 보기에는 방대하다는 것 이상이다. 부지런함과 경제학적 지혜가 모은 풍부한 통계자료들은 지금도 쉽게 만들 수 없다.

이 책의 시작은 ‘위기의 공연예술’이다. 공연예술계가 만성적 재정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의 미국과 21세기의 한국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요즘 내 고민의 첫 번째는 내가 일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재정 건전성 확보 문제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저작 활동이 있었지만(나도 그 대열에 끼어 있다), 지금의 고민에는 근본적인 대답을 주지 못한다. 보몰과 보웬이 책 제목에 ‘딜레마’라는 단 이유도 이해가 된다. 아무래도 그 대답은 현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