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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 표현의 경계를 넘어서

미로와 음악과의 상관성 ③

음악과 미술, 표현의 경계를 넘어서

미로와 음악과의 상관성 ③

writer 호안 푸넷 미로(Joan Punyet Miró)

호안 미로의 손자인 호안 푸넷 미로(Joan Punyet Miró)는 ‘미로와 음악과의 상관성’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그의 연구를 간략히 엮은 논문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마음속에 그려 넣은 하나의 단어, ‘음악Musique’>, <영감의 원천에서 샘솟는 소리 없는 음악>, <음악과 미술, 표현의 경계를 넘어서>, <붓으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다>란 부제로 진행됩니다.
미로의 내면까지 세세히 살피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 분들이 미로의 예술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_편집자 주

‘① 호안 미로의 메모 종이에 연필과 만년필 18.7 x 15 cm / Successió Miró Archive

① 호안 미로의 메모 종이에 연필과 만년필
18.7 x 15 cm / Successió Miró Archive

미로는 편지 봉투의 귀퉁이에 ‘폴락(Pollock)의 그림을 위한 재즈’라는 흥미로운 메모를 남겼다. 사실상, 누군가는 재즈가 없는 그림을 폴락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지 자문할 것이다. 그는 며칠 동안 그림을 그리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재즈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폴락은 자신의 몸 전체를 쉬지 않고 움직여가며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마치 재즈 음악가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흡사했다. 미로의 탐구적인 성향은 자신의 눈 또는 귀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끔 하였다. 미로의 오랜 친구이자 도예가인 호안 가르디 아르티가스(Joan Gardy Artigas)는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시카고에서 미로와 재즈 클럽에 가곤 했습니다. 그곳에 살던 브루스 그레이엄(Bruce Graham)이 우리를 꽤 좋은 재즈 클럽에 데리고 가줬죠. 뉴욕에 있을 때도 미로와 저는 함께 재즈 클럽에 갔습니다. 미로는 재즈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미로는 자신이 본 모든 것,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였습니다. 저는 미로의 작품이 굉장히 음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리듬이 있고, 아라베스크 풍의 그림이 있으며,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음악과도 같습니다.” 미로의 작품은 음악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대했다. ‘쇼팽, 슈만, 슈베르트와 낭만주의자들.’ 미로는 종이 한 자락에 이렇게 썼다. 다음 해 미로는 스스로 되새기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매그-끌레이유(Maeght-Clayeux), 바레즈(Varèse), 벨러 버르토크(Bèla Bartók), 쇤베르크(Schoenberg), 비발디(Vivaldi)의 ‘사계’ 음반 주문하기’ (01).

‘② 살아있는 음악Musica Viva 프로그램을 위한 표지, 1960년 10월 Successió Miró Archive

② 살아있는 음악Musica Viva 프로그램을 위한 표지, 1960년 10월
Successió Miró Archive

미로가 특수한 감수성의 상태에 이르거나, 그의 내면을 뒤흔드는 영감을 더욱 충만하게 하기 위해 선별한 음악을 들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미로의 작품 상당수가 그가 듣던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질 법도 하다. 미로 자신은 음악이 그를 흔들리게 하고,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960년 3월에 미로는 바레즈로부터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콜롬비아 음반사가 최근 내게 연락해 ‘우리의’ 앨범이 7월에서 8월 사이에 발매될 것이라고 했다네. <두 개의 오마주(Deux Hommages)>는 이 집에서 촬영을 했다네. 모든 친구들이 감탄하였으며, 이 작품의 혁신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아마도 바레즈는 미로의 언어에서 일종의 변화를 감지했을 것이다. 미로의 그림은 한층 더 직관적이자 즉흥적이며,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미로의 친한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자크 뒤팽(Jacques Dupin)은 이렇게 말한다.
“미로의 기호 체계는 마치 동맥에 흐르는 피와 같이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다.”
아마도 미로의 작품에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사람은 바레즈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불레즈(Boulez) 역시 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미로의 집 문을 두드렸다. 1960년 8월에 보낸 편지에서 불레즈는 미로에게 도나우에싱겐 뮤직 페스티벌(Donaueschingen Music Festival)을 위해 협력해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뮌헨에서 14세기의 미사곡과 관련된 콘서트 하나를 준비하고 있네. 내 곡인 ‘말라르메의 초상(Portrait de Mallarmé)’과 J.L. 바로(J.L. Barrault)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Le Martyre de St. Sébastien)’에서 차용한 일부분이 등장하네. 보다시피 평범한 콘서트가 아닐세. 기획자가 우리가 친구인 것을 알고 말 그대로 자네를 ‘잡을’ 방법에 대해 물었네. 자네가 스케치할 시간이 있으면 새로운 그림도 좋고, 아니면 이미 그려놓은 것이라도 괜찮다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작품이면 더욱 좋아할 걸세.”
놀랍게도 미로는 이 편지를 받자마자 뮌헨에서의 콘서트를 특별하게 할 작품의 제작에 필요한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한 달 후 불레즈는 이 콘서트를 위한 음악적인 과슈화를 한 점 받았다.
“뮌헨에서의 콘서트, <살아 있는 음악(Musica Viva)>을 위해 자네가 그려준 이 멋들어진 그림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 (02)
미로가 존경해 마지않던 또 다른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였다. 자크 뒤팽의 말을 인용하자면 “미로는 발레 뤼스(Ballets Russes)를 위한 작업을 선보인 후, 스트라빈스키, 바레즈, 베베른과 같은 당대 작곡가들과 협업하여 이와 비슷한 자신만의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평가된다. 그가 젊은 작곡가들뿐만 아니라, 화가, 시인, 작가들에게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당대 가장 중요한 작곡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두 명의 예술가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미로가 파리에서 생활하던 초기에 피카소를 통해, 혹은 그의 러시아인 아내 올가 코클로바(Olga Koklova)를 통해 만났을 수도 있다. 또는 1925년 피에르 화랑(Galerie Pierre)에서 열린 미로의 개인전에서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든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두 예술가가 서로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1962년 미로는 중심에 음악적인 폭발을 그리고, 그 주변에는 음표를 닮은 검은색의 형태를 나타낸 작품 한 켠에 세밀한 선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생일 축하하네, 스트라빈스키, 1962년, 미로가’ (03)

③ 무제, 1962년 종이에 수채와 먹물 / 32 x 48 cm / 개인 소장

③ 무제, 1962년
종이에 수채와 먹물 / 32 x 48 cm / 개인 소장

미로는 관습과 전통을 중요시 여겼다. 성미가 까다로운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만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미로에게 질서는 중요했으며, 특히 우연성이 영향을 끼칠 경우 더욱더 그러했다. 미스터리는 혼돈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미로는 자신이 수집한 책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과 같이, 소장하고 있던 음반 역시 소중하게 여겼는데, 특히 마요르카에 있는 새로운 집으로 이주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미로가 쓴 메모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음반. 호안 고미스(Joan Gomis)의 말에 따르면 이것들은 잘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벽을 피해서 책장에 책을 꽂듯이 서로 기대어져 놓여 있어야 한다’, ‘음반. 인류 박물관(Museu de l’Home), 바흐 소나타, 베토벤 교향곡’, ‘음반. 잡음의 기록, 전자 음악’. 미로의 우주는 무한대였다. 마지막으로는 곤충과 관련된 놀라운 음악에 대한 1963년자 신문 기사를 오려둔 스크랩이 있었다. 미로는 이 기사를 읽으며 자신의 작품인 <곤충과의 대화(Le dialogue des insects)>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가 40년 전에 그린 것으로, 미로는 이미 이 작품을 통해 당대에는 익숙지 않았을 방식으로 자연의 깊은, 숨겨진 비밀과 소리를 포착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 이면의 또 다른 세계의 미미한 실재는 종종 저평가되곤 한다. 하지만 미로의 가치관에서 보면 이는 우리의 세계만큼 위엄이 있음과 동시에 현실적이었다. 풀잎, 떡갈나무 등 모든 것이 중요했다. 해변의 모래는 그곳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보다 더 중요했다. 1964년 미로는 프랑스의 화상인 에메 매그(Aimé Maeght)에게 흥미로운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함부르크에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오페라가 상연되는 동안 나의 판화 작품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전시회를 기획할 가능성을 고려해보아야 하네. 이전에 자네에게 말했다시피, 1934년 마신(Massine)과 작업한 <아이들의 유희(Jeux d’Enfants)>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가 있다네. 이번 오페라를 위해서는 무대 장식과 커튼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거야. 케케묵은 이전의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다네.”
미로는 아마도 자신이 <아이들의 유희>에서 선보인 작업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미로는 계속해서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는 커튼 위에 페인트 통을 쏟아버린 후 빗자루로 이를 퍼뜨렸다. 미로는 독창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멀리하지 않았다. 이는 위험이나 다른 요소에 반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의 영역(Domaine Musical)>에서 불레즈는 베베른, 마우리치오 카겔(Mauricio Kagel),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크세나키스(Xenakis), 브루노 마데르나(Bruno Maderna), 하비 솔레버거(Harvey Sollberger), 장-피에르 구에젝(Jean-Pierre Guézec), 폴 메파노(Paul Méfano), 베르크(Berg), 쇤베르크, 슈톡하우젠의 음악을 기반으로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동시대, 각자의 예술에 영감을 주다

④ 매그 재단이 주최한 콘서트를 위한 포스터, 1965년 8월 8 8.5 x 55.5 cm / S uccessió Miró Archive

④ 매그 재단이 주최한 콘서트를 위한 포스터, 1965년 8월
8 8.5 x 55.5 cm / S uccessió Miró Archive

이 시기는 시각예술과 음악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던 시대였다. 또한 1964년 생 폴 드 방스(Saint-Paul-de-Vence)에 있는 에메 매그의 재단이 대중에게 첫선을 보였으며, 그로부터 1년 후 프란시스 미로글리오(Francis Miroglio)가 현대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지는 축제인, <매그 재단의 밤(Nuits de la Fondation Maeght)>을 열었다. 이 축제에서는 현대음악이 당대 가장 중요한 조형 예술작품에 둘러싸여 연주되었다. 사실 미로는 이 축제의 첫 번째 프로그램을 위해 한밤의 분위기를 담은 음악적인 과슈화를 한 점 그렸다 (04) . 몇 달 후 미로는 자크 뒤팽에게 본인을 대신해서 존 케이지(John Cage)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미로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무용단이 이번 투어에 스페인을 포함할 것을 고려하고 있음에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매그 재단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 점에 대해서도 굉장히 달가워하고 있으며, 꼭 이 공연을 직접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르셀로나와 생 폴 드 방스에서 당신이 계획 중인 공연을 위해 기꺼이 작품을 제작할 용의가 있으며, 이는 공연을 위해서 원하시는 대로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편 미로와 관련해서 당신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그는 <한 판화가의 사흘(Three Days of an Engraver)>이라는 제목을 붙인 동판화 연작을 막 완성한 참입니다. 현재 인쇄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로는 판화 작품을 제작할 때 시인이나 작가의 글에서부터 출발하고는 합니다. 이번에는 현대 음악가의 악보 한 장과 함께 이 판화 연작을 발표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음악가가 당신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계획에 동의하신다면 당신의 작은 악보 세 장을 다시 제작해야 합니다. 혹은 세 장으로 구성된 악보를 제작해서 하나로 합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 되어야 할 것이며, 한 작곡가와 화가의 만남을 상징하는 조그만 글귀를 적어 넣어 이를 돋보이게 할 것입니다.”
한 달 후, 존 케이지는 기쁨에 넘친 답장을 보냈다. “편지를 받고 대단히 기뻤습니다. 미로의 친절함은 기운을 솟아나게 합니다.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조만간 직접 볼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전해주십시오. 미로가 자신의 그림을 선물로 준다고 하니 내년 여름과 가을에 유럽에 꼭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로가 자신의 동판화에 저의 글과 악보를 새긴다고 생각하니 정말 흥분이 됩니다. 저는 이 제안에 동의합니다!”
미로는 존 케이지를 대단히 존경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향한 미로의 존경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매그 재단의 밤> 축제를 통해 다른 많은 작곡가와 전위 예술가가 한곳에 모였다. 조르주 라이야르(George Raillard)의 말에 따르면 “슈톡하우젠의 콘서트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할아버지(미로)가 슈톡하우젠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케이지의 경우 피아노가 완전히 바뀌었죠. 반면 슈톡하우젠의 경우 조개껍데기, 돌, 나뭇가지, 붓을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할아버지는 ‘이 젊은이는 나와 작업 방식이 비슷하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로가 자신의 작품 제작에 사용하던 것과 같은 재료에서 영감을 받은 작곡가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바로 일종의 계시,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꿈을그린화가 호안미로 특별전

꿈을그린화가 호안미로 특별전

기간 : 2016.06.26 (일) ~ 2016.09.24 (토)

장소 : 세종 미술관1관, 세종 미술관2관

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입장마감 60분전)

티켓 : 성인 1만5천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 8천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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