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회화적 회화: 환영성을 자가 폭로하는 거친 붓질이 뜻하는 바

회화적 회화: 환영성을 자가 폭로하는 거친 붓질이 뜻하는 바

writer 임근준 AKA 이정우(미술·디자인평론가)

현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회화적 회화(Painterly Painting)’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화적 회화’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공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회화적 회화’의 역사적 계보를 꿰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관례적으로 ‘Painterly Painting’을 ‘회화적 회화’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화가적 회화’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회화적 회화’란 대체 무엇일까?

  • 하인리히 뵐플린

    ① 선적인 미술에 대립되는 회화적 미술의 개념을 제시한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7~1945).

  • 회화적 회화’라는 인식은, 스위스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7~1945)이 제시한 ‘회화적(Malerisch)’이라는 개념에서 파생됐다. 양식사 연구 방법론을 확립한 인물인 뵐플린은, 16~17세기 서유럽 미술의 발전에서 이뤄진 질적 전환을 설명하면서, 다섯 가지 대립항을 제시했다. 즉, 첫째, 선적인 미술에서 회화적 미술로의 전환, 둘째, 평면적 미술에서 심원적 미술로의 전환, 셋째, 폐쇄적 형식의 미술에서 개방적 형식의 미술로의 전환, 넷째, 다원적 미술에서 통합적 미술로의 전환, 다섯째, 절대적 명료성의 미술에서 상대적 명료성 혹은 불명료성과 격동성의 미술로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것.
    뵐플린이 제시한 다섯 가지 변환은, 서로 연관된 것으로, 실상 하나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외곽선을 그어 명확히 사물의 범주를 구획하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곽선을 중첩하거나 흐림으로써 공간감을 더 강조하고 또 대상의 현존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인식론적/방법론적 변화가 일어나면, 깊이감이 중요해지고, 개방적 레이아웃이 시도되고, 그 대신 통합적 구도가 등장하며, 불안감이 들 정도의 불명료성이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물론 거시적 차원의 이야기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의 개념은 동양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외곽선을 강조해 평면적인 화풍을 수립한 가노파(狩野派)의 흐름이 15세기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서 에도 말기까지 이어졌다면,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근대화한 신일본화를 주장한 오카쿠라 텐신에게 영향을 받아 1930년대에 신일본화운동을 전개한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과 히시다 슌소(菱田春草) 같은 이들은 미점이나 선염법 등을 이용해 윤곽선을 흐리는 특유의 몽롱체(朦朧體) 화풍—흔히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 드는—을 수립해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외래적인 것, 즉 양풍으로 비판을 받았고, ‘무엇이 일본적인 화풍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자, 화단의 주역들은 가노파의 선적이고 평면적인 화풍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드러냈다(따라서, 몽롱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당대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슈퍼플랫 방법론도, 가노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중국의 미술사를 보면, 이미 북송시대에 유사한 전환이 시도된 적이 있었으므로, 미점을 중첩해 깊이감과 불명료함을 구현하는 화풍의 시원으로 범관, 곽희, 미불, 미우인 등의 사례를 들 수도 있다(실제로, 몽롱체에 영향을 받은 청전 이상범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제 작업의 원류로 북송의 화풍을 지목했던 바 있다).

  •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한국전쟁 이후 북조선에서 전개된 몰골법 논쟁을 들 수 있다. 몇 단계의 논란과 쟁투를 거쳐,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선묘와 외곽선을 중시하는 단색의 구륵법에서 벗어나 몰골진채법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조선화의 방향이라는 방침이 정해지고, 이후 그것이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북조선 주체미술의 회화적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그 바탕에는 전대의 이여성, 김용준 등이 벌인 논쟁—전통개조론과 전통계승론의 대립—이 자리하고 있다(북조선에서 말하는 몰골법은, 남한에서 말하는 몰골법보다 융통성을 지닌 개념으로서, 감필법, 부벽준법 등을 포괄한다. 현대조선화에 영향을 미친 신일본화의 요소를 극복해야 하지만, 외곽선과 평면성을 강조하면 더욱 일본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난점과,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리얼리즘과 중국의 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부터는 전통과 민족색을 근거로 삼아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이, 몰골진채라는 독특한 방침을 낳았다).

  • 18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27×96.8cm

    ②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수영하는 남자(Grand baigneur)>

    18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27×96.8cm

  • 아무튼, 회화적 회화에서 강조되는 회화성(Painterliness)은, 이런 역사적 진보의 감각으로부터 도출된 가치 평가의 잣대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현대미술의 역사에서는 평면성의 감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정위돼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뵐플린이 말한 회화적 회화—깊이감을 강조하는—를 오늘의 미술에서 이야기하는 회화적 회화—물감의 물성과 붓의 촉각적 궤적과 귀결된 층위를 강조하는—와 혼동해도 곤란하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꼽히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쉽다. 세잔은 구식 회화의 환영성을 극복하기 위해, 대상을 고찰하는 화가 자신의 시선을 대주제로 삼고, 두 눈의 궤적을 추적-기록하는 붓질을 신중한 자세로 중첩해 캔버스 위에 현대적 회화 공간을 창출해내는 성취를 이뤘다. 즉, 현대미술에서 이야기하는 회화적 회화의 대전제는, 그리기라는 행위의 궤적을 축적해 회화적 이미지를 만들지만, 그 이미지는 스스로의 환영성을 자가 폭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폴 세잔의 중첩된 붓질 외에, 폴 고갱의 중층적 필치, 파블로 피카소의 거침없는 창조적 붓질, 윌럼 드 쿠닝의 <여인> 연작에서 나타는 폭력적 필획, 포스트모던한 시각으로 전대의 그리기 방식을 수용-재창안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의 성찰적 붓질, 그리고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밀대(Squeegee)로 밀어 만든 가짜 추상화면의 물감층 등이, 19세기 말~20세기의 회화적 회화에서 대표적 기준점으로 꼽힌다. 물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적 회화성의 원류로, 마네의 잘난 척하듯 완급을 조절해 간결하게 대상을 그려낸 붓질, 티치아노와 렘브란트가 말년에 구현한 거칠고 표현적인 붓질, 엘 그레코의 모호한 붓질 등을 차례차례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입체파를 통해 확립된 현대적 의미의 회화성은, 세잔에 연원하는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 198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152.4cm

    ③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니콜스 협곡(Nichols Canyon)>

    198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152.4cm

  • 언급한 기준점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 호크니다. 호크니의 경우, 그 위대함은, 역사적 회화 양식을 유희적으로 차용하며, 자신이 취한 각 양식의 시각(Perspective)을 대상화해 주제-물로 삼되, 각 화폭을 고도의 기교(Virtuoso)로 마무리해냄으로써, 회화사를 재방문하는 메타-회화적-화가(Meta-painterly-painter)의 신기원을 창출했다는 데 있다. 그가 회화적 시점을 연구 대상화하고 재조합한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을 통한 대상의 양안 시각적 분할과 재조합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이 특유의 캠피(Campy)한 히스토리아(Historia) 취향과 말단 페티시(Partialism)가 특유의 명사 사회 내부자의 정조와 어우러져,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호크니만의 메타-양식(포스트모던 양식)이 완성됐다(호크니는 중국의 회화사를 공부해 두루마기 그림에 구현된 다중 시점을 제 그리기에 적용하기도 했다). 즉, 호크니의 회화적 회화에 구현된 회화성의 의의는, 회화사를 참조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을 통해 ‘회화적으로 세계를 고찰하는 방법’을 진일보시켰다는 데 있다.
    회화적 회화에서 말하는 회화성은,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도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희소한 가치가 된다. 회화적 회화의 남다른 화면은, 손에 익은 노하우 등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의해 창출되는 법이기 때문에, 재료와 도구의 준비-관리가 미비하거나, 타고난 손재주의 운용이 부적절하거나, 작업량이 적어 손이 굳어버리면, 최종 결과의 질은 급격히 저하되고 만다. 회화적 회화는 화면을 어떤 식으로 구축해낼 것인지에 관해 분명한 계획을 요하지만, 그리는 과정에서 늘 예외적 상황이 돌출하기 때문에, 각 변수에 조응하며 그림을 그려나가다 보면, 언제나 계획 이상의 것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뉴미디어 작가에서 화가로 변신한 공성훈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회화적 회화는 작가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수많은 ‘작업 공정’의 순간순간들의 연쇄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 2010년대의 시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장소성의 설치미술이고 포스트드라마틱시어터의 퍼포먼스고 뭐고 다 망하고 나니까(미디어의 비평적 재창안을 대전제로 하면), 결국 시각뇌에 비평적 자극을 던지는 존재는, 추상이든 구상이든, 정말 잘 그린 회화적 회화와 그에 상응하는 조각, 혹은 그 중간형—회화적 조각이나 조각적 회화—이라는 사실이다. 조각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각성과 결합된 촉각성이 소조에서 더 심도 깊게 다뤄질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오귀스트 로댕 이후 딱히 이렇다 할 성취가 없었다. 현대조각의 역사가 급속히 추상으로 이행하는 바람에, 또 미니멀리즘 이후 설치미술이 유행하며 소조 작업은 현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오해됐기 때문에, 조각적 조각 혹은 조각가적 조각은 독자적 계보를 형성하지 못했다.

    2014년 캔버스에 유채 20개의 캔버스 전체 240×300cm, 각각 60×60cm

    ④ 류샤오둥(Liu Xiaodong, 1963) <시간(Time)>

    2014년 캔버스에 유채 20개의 캔버스 전체 240×300cm, 각각 60×60cm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류샤오둥은, 구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광주의 십대 청소년 다섯 명-조우영(남·금호고3), 전진성(남·풍암고3), 박창희(여·광주여고3), 정주연(여·상무고3), 길준수(·광주고3)-을 모델로 삼아 이 그림을 그렸다. 광주에 체류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사·연구한 작가는 제 작업이 “시간을 재현한다”고 설명했다.

  • 그렇다면, 한국현대미술사에서 회화적 회화로 일가를 이룬 사람은 누굴까? 의외로 이름을 거론하기 쉽지 않다. 이중섭? 그림의 크기가 몹시 작고, 또 너무 일찍 세상을 떴다. 이응노는 말년에 스트로크를 중첩하는 반추상 풍경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대작을 그려내기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최욱경은 추상표현주의의 회화적 회화를 추구했지만, 역시 독자성을 획득하는 단계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한국의 당대 화가들이 회화적 회화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배경엔, 교육의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초중고교 서양화 교육 과정에서 수채화를 주로 가르치다 보니, 유화를 대학에 와서야 접하게 되고, 자연 재료의 특성을 익혀 회화적 표현을 시도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문제. 반면, 동양화 교육에선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해온 회화적 회화와 그에 상응하는 동양화의 주요 사례를 비교 고찰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뭘 시도해야 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화가들이 회화적 회화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동안, 중국의 현대화가들은 과감히 전진해 성취를 이뤘다. 쩡판즈나 장환만 해도 그저 시늉이려니 싶었지만, 류샤오둥(劉小東, Liu Xiaodong, 1963~)이나 리송송(李松松, Li Songsong, 1973~)은 서구의 회화적 회화를 능가한 모습으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류샤오둥과 리송송은, 서구 회화의 기법을 특유의 호연지기와 장인적 손재주로 재정의/재발명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평적 시점을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2013년 9월 18일, 영국 런던의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영국 데뷔 개인전에서 제 그림 <이름 없는 호수(Unnamed Lake)>(2013) 앞에 선 리송송·류샤오둥은 중국인의 입장에서 서양회화사를 비평적으로 성찰하고, 화가의 고찰하는 눈을 바탕으로 대상의 즉물적 현존과 그 역사적 맥락을 촉각적 붓질로 포집하며 회화적 유화를 중국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눈과 필력이 몹시 탁월하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시대착오적인 리얼리티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몹시 어려운 기술을 아주 쉬워 보이도록 수행해내는 경지)가 동시에 발현된다. 반면, 리송송은 역사적 주제에 연관된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것을 화면에 층적 구조로 재구성하기 위해, 먼저 배율—그림의 크기를 결정하는—을 고민한다. 회반죽처럼 유화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긁어내는 임파스토 기법 등을 활용해, 건축 마감 공사의 스케일로 물감을 층적하고 그 위로 과감한 붓질을 가해 회화적 화면을 귀결 짓는데, 남성적 호방함으로 치면 그를 이길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