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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나라 중국의 낯선 연극 이야기

국가와 민간, 예술가의 주도 아래 110년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흥미롭게 발전해온 중국 현대극의 세계를 살펴본다.

(c)리옌

자장면만이 진짜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줄 알았던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 거리에는 마라탕, 훠궈, 양꼬치, 샤오롱빠오 가게가 즐비하다. 한국인들이 즐기는 중국 음식은 어느새 자장면만으로는 충족되지 않게 되었고, 또 그만큼 선택의 폭도 다양해졌다. 1992년 한중 수교를 맺은 이래 양국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한국의 문화는 중국으로, 중국의 문화는 한국으로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연극 영역은 유독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 경극이 그만큼 맛있는 연극이었기 때문일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경극은 중국의 유일한 연극으로 각인되어 있다.

중국 현대극의 다채로운 세계

이제 다양한 중국 연극을 맛볼 때가 된 것 같다. 혹시 또 모른다. 양꼬치만큼, 마라탕만큼 맛있는 연극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20세기 초 일본 신파극의 영향을 받아 배태된 중국 현대극은 격동했던 중국사회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이제 막 110년의 역사를 넘겼다. 오늘날 다양하게 공연되고 있는 중국 현대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다.
우선 국‧공립 단체의 연극이 있다. 국가화극원, 베이징 인민예술극원 등이 이에 속한다.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면서 중국은 전국의 연극 단체를 국‧공립 체제로 재편하였다. 이들 국‧공립 단체는 베이징 인민예술극원을 필두로 리얼리즘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그러나 80년대 개혁개방이 추진되자 그간 폐쇄적 정책 때문에 수용하지 못했던 서구의 다양한 사조를 흡수하고, 고단했던 문화대혁명에 반발하여 다양한 연극적 실험과 문학적 시도를 하는 주체로 변모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을 비롯하여 가오싱젠과 좋은 콤비를 이루었던 연출가 린짜오화 등은 모두 80년대 국‧공립 단체에서 활동한 연극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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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찾아오자 그간 문화를 선전도구로 인식하던 중국정부가 문화를 국가의 중요 경쟁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1년 두 개 단체를 합병하여 설립된 국가화극원은 한국의 국립극단에 해당하는 단체로, 왕샤오잉, 멍징후이, 티엔친신 등을 흡수하며 다채로운 지향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국‧공립 단체는 소극장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보기 드문 규모의 대형 공연을 자주 올린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한 중국연극

연극시장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들도 많아졌다. 중국 연극시장이 형성된 것은 90년대 말엽이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면서 80년대 주옥 같은 작품을 쏟아내던 국‧공립 단체는 위축되었고, 보수적 문화정책과 진보적인 경제정책 사이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당시 급진적이었던 연극인들은 민간의 역량을 강화하는 연극시장 개발에 공을 들였다. 1999년 멍징후이의 <사랑에 빠진 코뿔소>가 큰 성공을 거두자 중국 사회에 마침내 연극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연극시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은 상업적인 공연들도 많지만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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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1세기에 형성된 독립연극이 있다. 이들은 국가와 상업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극지향을 추구해가는 그룹이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며 체제 밖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한다. 베이징의 펑하오 극장, 현재는 문을 닫은 상하이의 시아허미창 등의 공간은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주었고, 중국 연극계가 자정기능을 할 수 있도록 비판적인 담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난 10년 간 중국에서는 연극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연극제들은 이들 독립연극인들이 활동하는 주요 플랫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궈스싱의 <물고기 인간> 국내 초연

그간 중국작품은 주로 일회성 행사의 성격을 띠는 내한공연의 형태로 소개되었지만, 최근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낙타상자>, <최후만찬> 등 한국 연극인들이 제작하는 중국작품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11월에는 서울시극단이 중국의 대표 극작가 궈스싱(过士行)의 작품 <물고기인간>을 공연한다고 한다.

<물고기 인간>은 궈스싱의 1989년 데뷔작으로 중국인의 대표적 취미인 낚시, 바둑, 새 기르기를 소재로 한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궈스싱은 중국 북경만보 기자 출신으로 현재 중국 연극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 중 한 명이다.

서울시극단 <물고기 인간>의 연습 현장.

작품의 배경은 북방 호수에서 열리는 낚시대회다. 호수의 물고기를 호수의 수호신이라 생각하며 지키는 ‘위씨 영감’과 대청어를 낚기 위해 30년을 기다린 ‘낚시의 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며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이 대립하는 모습을 우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낭독공연이 진행된 바 있는데, 당시 평단으로부터 “신화와 일상이 뒤섞인 희곡을 웃음 터지는 부조리극 스타일로 여유 있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채로운 중국 연극을 맛보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연극 ‘물고기 인간’
일정 :  2019.11.01 (금) ~ 2019.11.17 (일)
장소 :  세종S씨어터
시간 :  평일 오후8시, 토 오후3시, 오후7시, 일 오후3시
(월 공연없음) (공연시간 : 100 분 / 인터미션 없음)
연령 :  만 14세 이상
티켓 :  자유석 30,000원

_장희재(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