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175

세종문화회관 이야기

세종문화회관 이야기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 ‘Story 175′는 세종문화회관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식의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발행인은 사장인 저입니다. 이 웹진의 타이틀에 들어있는 숫자 ’175‘는 세종문화회관의 새 주소에서 땄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가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의 새 주소입니다. 세종대로는 서울역에서 시작하여 광화문에서 끝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길입니다. 서울의 중심이며 대한민국의 심장부입니다. 이런 요지에 본격 예술 공간을 마련한 것이 신기하면서도 다행입니다.

    마침 세종문화회관 터의 옛 이야기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을 기준으로 저는 지난 이틀간 서울시 의회 예산결산심의위원회에 출석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 출연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대략 예산의 55% 정도를 서울시로부터 지원 받습니다. 서울시의 내년 예산 전체를 심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러 얘기들이 오갑니다. 세종문화회관도 자료요청을 받았습니다. 내년에 공사할 블랙박스극장과 관련한 자료입니다. 2012년에 완공해서 사용중인 예술동 안에는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꽤 넓은 공간이 빈 채 남겨져 있습니다. 이 공간에 가변형 블랙박스를 만들어 내후년에는 문을 열 계획입니다. 그 공사비를 서울시로부터 지원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구받은 자료 중에 그 터에 지표조사를 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료를 챙겨보니 2011년에 조사를 했었습니다.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유적 발굴조사를 했고 문화재청의 요구에 따라 후속조치를 마쳤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터는 조선시대의 육조가 있었던 곳으로 형조와 공조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표조사는 원지형이 보존된 일부 부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연층 위의 가장 오래된 지층은 ‘암갈색 사질점토층’인데 조선전기로 추정하는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분청자와 죽절굽 백자 조각이 나온 것입니다. 조선전기면 15-16세기를 의미합니다. 조선이 새 왕조의 도읍지를 지금의 서울로 정한 그 시기 직후입니다. 그 층위 위로 조선중기와 조선후기 유물까지 가지런히 출토되었습니다.

  • 세종문화회관이 600년 내내 도읍지의 중심터 위에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의 자리에 예술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은 1955년 무렵입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입니다. 이 자리는 체신부가 있던 자리로 당시에는 서울로 돌아온 경기중고등학교의 가교사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 지번으로는 세종로 1가 81번지입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대형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개관된 것은 1961년 11월입니다. 군사정변 6개월 후입니다. 당연히 ‘우남회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새 이름은 ’시민회관‘이었습니다. 냉난방시설과 승강식 2층 회전무대를 갖춘 최신식 대형 문화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대한극장의 5.5배에 달할 만큼 우리나라 최고,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화재로 전소될 때까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이었습니다. 1972년 12월 2일 저녁 8시 27분 MBC TV의 10대 가수 청백전이 끝날 무렵에 발생한 화재는 다음날 새벽 4시경에야 모두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이 불로 당시의 관장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습니다. 불이 났던 자리에는 엄청난 규모의 ‘문화예술의 전당’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이름도 개관 직전에 새로 만든 것입니다.

    1978년 4월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은 그야말로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입니다. 국가적 사업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직접 대통령이 설계도를 검토할 정도였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이 4,200석에 이르는 매머드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개관 직후 80일 동안 이어진 개관기념예술제도 전례 없는 이벤트였습니다. 뉴욕필하모닉, 필라델피아교향악단, NHK 교향악단, 이탈리아 팔마오페라단, 오스트리아 국립오페라단, 영국 로열발레단, 빈소년합창단 등 해외 예술단만으로 이전에 없던 화려한 라인업이었습니다. 단숨에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중심으로,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사례로 떠올랐습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서울시 직영체제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뀌었고 소속 예술단 중 가장 오래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별도 법인으로 새 살림을 차렸습니다(그러고도 9개의 예술단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바뀌었습니다. 독불장군일 수도 없고 그것이 허용되지도 않습니다. 누적된 과거 위에서 새 미래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175번지가 상징적 숫자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