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예술이 위로와 즐거움을 준다고 하고, 누군가는 예술이 일상 속의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이 준비한 프로그램 ‘세종ACE 발레CEO’는 또 다른 이유를 말한다. 문화와 예술은 장르를 불문한 모든 곳에 창조적인 힘을 선물한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 문화예술에 흠뻑 빠져보면 예술이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깊이 있는 발레를 만나다
10월 20일부터 시작된 ‘세종ACE’ 프로그램은 CEO를 위한 차별화된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으로, 한 학기 동안 발레에 집중한다. 발레에 대한 이해는 물론, 발레 역사와 예술세계를 아우른다. 또한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등의 주요 관계자로부터 발레 강의를 들으며 발레 실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발레 기본기와 궁정춤을 체험해보는 시간도 준비했다. 총 10회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막을 올린 김용걸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았다.
발레리노 김용걸은 자신의 발레 인생을 고백하고 발레에 대한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 드미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용걸의 댄스씨어터를 이끌며 창작 발레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발레리노 김용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 전공 교수이기도 하다.
김용걸 교수는 영단어 ‘BALLET’ 이니셜을 통해 발레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Basic’으로 발레 기본 동작을 시연했다. 남녀가 다른 동작을 가진 ‘센터’와 바를 이용해서 선보이는 다양한 동작들. 동작이 바뀔 때마다 4개의 조명을 전환하며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명을 타고 흐르는 피아노 선율과 무용수들 근육의 움직임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발끝, 손끝 하나마다 무언의 대화가 오간다. 손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에서 만나는 발레의 민낯 같은 아름다움이 연습실을 가득채웠다. 강의에는 박선희, 안주원, 김민정 세 무용수와 신재민 피아니스트가 함께했다.
강의는 다양한 발레 동작 시연과 함께 진행됐다.
역사를 타고 발레리노의 삶까지
두 번째 단어, ‘Base’로 발레의 역사를 만났다. 김용걸 교수는 수강생들의 손에 작은 마카롱을 건네주며, 발레와 마카롱의 역사가 같다고 운을 띄웠다. 발레와 마카롱은 둘 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와 발전했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의 딸, 카트린느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들이 프랑스로 넘어오게 된다. 이때 발레는 프랑스 문화와 융합해 발전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발레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밤의 발레>에서 ‘태양왕’ 역할을 맡아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 때문이다. 그는 발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발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극 중 영웅으로 무대에 오르고, 다양한 극적 장치를 통해 절대군주로서의 힘을 과시했다. 발레는 18세기에 낭만 발레로 발전하고, 이후 러시아로 넘어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꽃 피우고 러시아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이어 김용걸 교수는 귀족 문화로 알려져있지만 무용수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짚어 발레의 ‘Aㅏ이러니’한 면을 설명하고, ‘Aㅏ름다운’ 발레를 시연했다.
마카롱을 통해 발레의 역사를 설명하는 김용걸 교수.
이어 김용걸 교수는 발레리노로 살아오며 겪었던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를 ‘Leave’와 ‘Level’로 보여줬다. 그는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고 6~7년간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자만감이 하늘을 찔렀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마음 한편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2000년 1월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고, 파리오페라발레에 견습 무용수로 가게 된다. 파리의 지하철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이 발레를 하는 장면과 오버랩되고, 뜻밖의 힘든 시기를 보내는 김용걸 교수의 인생이 보였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오만했던 마음을 떨처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발레 세계의 ‘계급’ 때문에 힘들어 하는 무용수들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발레리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런 현실을 담아 무대로 올렸다. 그 작품이 바로 국립발레단에서 군무 무용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이향조를 위해 만든 <스텝 바이 스텝>이다.
김용걸 교수가 ‘사랑’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시연하고 있다.
소극장에서 보는 한편의 공연 같은 마무리
프랑스어로 ‘다람쥐’라는 뜻의 ‘Ecureuil’. 다람쥐는 먹이를 여러 곳에 나눠서 숨겨둔다. 김용걸 교수는 사람도 사람마다 각각의 추억이 있다며, 발레가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케이크 같은 존재, 슬픈 사람에게는 손수건 같은 존재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오페라의 아리아로 위로받는 것처럼, 발레에도 아리아가 있다며 발레의 아리아라고 불리는 ‘빈사의 백조’를 시연했다. ‘빈사의 백조’는 세계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는 안나 파블로바에게 안무가 미하일 포킨이 헌정한 곡이다.
이번 강의는 마치 소극장에서 한편의 공연을 본 듯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T에서는 발레의 ‘Technic’과 ‘Talk’를 말했다. 발레에서 기술은 빼놓을 수 없다. 김용걸 교수는 김연아의 트리플악셀처럼 발레도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소수 덕분에 발전한다며 초창기 발레와 지금의 발레는 다르고, 앞으로도 더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발레는 춤을 통해 말을 건네고 소통하는 예술이다. 강의를 통해 발레를 잘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동작을 알 수 있었다. 손바닥이 가슴을 향하면 사랑, 하늘을 찌르는 동작은 맹세, 주먹을 쥐고 내리는 것은 ‘죽이겠다’는 은유적인 의미, 턱을 옆으로 쓰는 동작은 아름답다는 표현이다.
김용걸 교수는 ‘사랑’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시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CEO는 물론, 창조의 힘이 필요한 누구라도 들어두면 유익할 이번 강의는 마치 소극장에서 한 편의 공연을 본 듯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