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12월 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교향곡 7번을 처음 발표한 날. 지휘봉을 든 이는 이 곡을 작곡한 베토벤이었다. 청력이 많이 약화된, 아니 악화된 상태였기에 작곡도 지휘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당시 부악장이었던 슈포어의 증언은 이런 상황에서도 베토벤이 지녔던 열정을 전해지게 한다. “그는 몸동작으로 표현을 지시했다. 스포르찬도(sfz)가 나올 때는 팔을 잡아채 먼저 그의 가슴 위로 교차시켰다가 큰 힘을 주며 이를 해체시켰다. 피아노(p)에선 몸을 낮게 구부렸다. 원하는 여린 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더 낮게 구부렸다. 그러나 이 불쌍한 사람은 피아노를 거의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4악장이 끝나자 사람들은 세상에 울려 퍼진 새로운 소리에 열광했다. 그 소리는 베토벤 의지의 표상이었고, 산물이었다. 오스트리아·프랑스의 전쟁, 테레제 말파티라는 여인과의 실연···. 곡이 나오기까지 고통의 시간을 관통해야 했다. 그의 음악은 소리로 직조한 난관 극복기다. 승리의 달콤함에 대한 도취보다 극복을 위해 달려온 자의 땀방울이 음표마다 스며있다. 우리가 베토벤을 칭송하고, 그의 음악을 듣는 이유다.
10월 24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가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베토벤Ⅱ> 공연으로, 한 주 뒤인 31일에는 서울시합창단이 <명작시리즈Ⅲ> 공연을 통해 베토벤을 서울 한복판으로 불러온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통해 2주간 베토벤을 입체적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극복의 음표를 되새기는 서울의 젊은 음악가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으로 문을 열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앞서 말한 교향곡 7번을 선보인다. ‘올(all) 베토벤’이다. 지휘를 맡은 김대진은 베토벤으로 성장하고, 베토벤으로 진화한 음악가다. 20년 전인 2000년, 그는 하루 동안 프라임 필하모닉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곡을 선보였다. 건반에서 시작한 그의 베토벤 프로젝트는 10년 뒤인 2010년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베토벤 사이클’로 진화했다. 그의 삶과 음악에는 베토벤과 함께 파고든 깊이와 베토벤과 함께 쌓아올린 높이가 공존한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는 20대 단원들이 모인 악단이다. 젊음을 뼈대로 삼고, 선배 음악가들의 지혜와 연륜을 피와 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젊음의 이름으로 과감한 시도와 해석의 패를 던지기도 한다. 젊은 음악가들과 늘 무대를 함께 일궈온 김대진도 이들의 열정과 방향을 잘 이끌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앙상블 콘서트>로 이 호흡이 인정된 바 있다. 넓게 보면 10년 단위로 발전해온 김대진의 에너지가 젊은이들과 어떤 베토벤을 그릴지 기대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도 화력을 지원한다. 그녀의 별명은 ‘콩쿠르 퀸’. 콩쿠르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머쥐어 붙은 별명이다. 2014년 중국 바이올린 콩쿠르와 쇤필드 현악 콩쿠르에서 시작해 2016년 모차르트 바이올린 콩쿠르, 2017년 윤이상 콩쿠르까지 4회 모두 우승했다. 이번 공연은 최근 실내악과 협연을 통해 음악적 반경을 넓히고 있는 그녀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다.
서울시합창단과 함께하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소프라노 이윤정.
산사태 같은 힘으로 내면의 평화를
음악은 기악과 성악으로 나뉜다.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자신이 악기가 되어 음악을 연주한다. 베토벤은 기악에서 많은 걸작을 남겼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소나타들. 지휘자라면 베토벤 교향곡의 산맥을 산행해야 한다. 성악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가곡은 슈베르트만큼 빛을 보진 못한다. 그에게도 여러 합창곡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곡은 교향곡 9번의 부제인 합창이다. 그래서 베토벤의 합창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Christus am Olberge)’와 ‘C장조 미사(Missa C Major)’를 선보이는 서울시합창단의 <명작시리즈Ⅲ>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는 베토벤의 유일무이한 오라토리오다. 오라토리오는 베토벤이 살던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 종교음악 장르다. 베토벤은 이 곡을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예수가 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병사들에 의해 체포되는 상황을 줄거리로 작곡했다. 종교음악의 옷을 입고 있지만 내용의 물결은 극적인 오페라처럼 박진감 있게 흘러간다. 6곡으로 구성됐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2번‧4번‧5번‧6번을 발췌해 연주한다.
객원지휘를 맡은 김홍수 교수와 서울시합창단과 함께하는 테너 김충희, 바리톤 염경묵.
베토벤은 형식이 엄격한 종교음악에서도 자신만의 파격을 선보였고, 파급을 일으켰다. 당시의 미사곡들은 가사를 전달하는 음악이었다. 신의 음성과도 같은 가사는 음표보다 우위에 있었고, 그 흐름과 형식에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러한 전통을 격파했다. 물론 종교적 감수성에도 흠집을 내지 않았다. 그 대표작이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와 함께 연주되는 ‘C장조 미사’다. 베토벤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초연의 현장을 지키며 촌평을 날렸던 호프만은 이 곡을 듣고 ‘내면적인 전율에 휩싸여 천상을 보고 있노라’라고 평했다.
베토벤의 합창 작품들은 거대한 음량의 산사태를 일으키는 듯한 힘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편안과 안정을 주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이유다. 이번 서울시합창단 <명작시리즈Ⅲ>에는 김홍수 교수가 객원지휘를 맡았다. 소프라노 이윤정, 알토 김정미, 테너 김충희, 베이스 염경묵, 그리고 오케스트라 카메라타와 함께한다.
한국 음악계는 1970년에 큰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베토벤 탄생 200주년이던 해였고, 그의 작품을 연주하면서부터였다. 50년이 흐른 2020년.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역사상 가장 크고 성대한 음악 잔치를 벌여야 하는 올해에 그는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비극의 작곡가가 되었다. 하지만 위기와 아픔의 시대이기에, 극복으로 나아간 그의 삶과 음악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