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멈추지 않는 타란튤라의 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 플랫폼-연출가’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나’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심히 흘러간 시간을 ‘역사’로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키워드가 필요하다. 연극 <와이프>는 9명의 인물을 통해 1959년부터 2042년까지 80년에 걸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작품이다.

작가 사무엘 아담스는 80년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로 입센의 <인형의 집>을 가져온다. <와이프>는 20년의 간격을 두고 시대별로 구분된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넷 모두에는 <인형의 집>이 극중극으로 등장하고, 이야기는 <인형의 집>을 관람한 후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는 패턴을 공유한다. 인물들은 ‘노라’로 무대에 서는 배우, <인형의 집>을 만드는 제작진,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으로 모두 <인형의 집>과 연관되어 있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한 <인형의 집>은 시대에 따라 고전적인 연극부터 움직임이 강조된 노르웨이 버전,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다채롭게 변주되어 소개된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 플랫폼-연출가’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나’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형의 집>이 등장하는 4개의 에피소드

이에 맞춰 ‘나로 살고 싶다’는 노라의 욕망과 자유 역시 1959년에는 결혼한 여성 데이지에게, 1988년에는 게이 아이바에게 영향을 준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변화하며 부모를 이해하는 수단에 머물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미래를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먹히는’ 연극이다.

<와이프>는 자유를 찾기 위한 노라의 행동에서 더 나아가 <인형의 집>에 존재하는 지배구조 자체에 집중한다. <인형의 집>을 관람한 후, 현 관계의 문제를 발견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피지배의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1959년의 데이지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억압하는 남편 로버트가, 1988년의 에릭에게는 자신의 신념만을 강요하는 연인 아이비가, 2020년의 수잔나에게는 여성 배우에게서 ‘여자 햄릿’을 빼앗은 성소수자 배우 카스가, 2042년의 데이지에게는 예술가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더 낫다는 사회의 시선이 있다. 지배구조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이라는 개인의 정체성, 연인이나 가족이라는 형태와는 무관하게 모든 관계에 존재한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 플랫폼-연출가’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나’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를 이어 유전되는 지배와 억압

시대에 따라 이 구조는 종종 전복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연극은 ‘멀티롤’을 통해 지배구조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배우들은 4막을 다양한 역할로 통과한다. 대체로 비슷한 성향의 인물을 연기하지만, 역할 전복을 통해 끊임없이 재정립되는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손지윤과 우범진은 1959년 로버트(우범진) 우위의 부부에서 2020년 클레어(손지윤) 주도의 부부로 변화한다. 에릭과 카스를 연기하는 송광일 역시 1988년과 2020년의 에피소드에서 나이 많은 애인과의 관계를 정반대로 보여준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가 다음 에피소드에서 동성애자로 등장하거나, 약자인 여성과 성소수자가 다른 이유로 다투기도 한다. <와이프>는 같은 얼굴의 다른 캐릭터를 통해 관계의 유동성과 사회의 복잡성을 말하고, 막과 막이 전환되며 변화하는 인물의 태도는 종종 과거와 현재의 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네 개의 에피소드가 대를 이어 연결된다는 설정은 이 이야기를 ‘역사’로 느끼게 하는 힘이다. 이전 세대가 경험한 문제가 다음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한 신념이 된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도 점차 완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대의 상징일 뿐, 완성형인 것은 아니다. 무대 위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있고, 인물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를 수정해가며 성장한다. 노라를 연기한 배우 수잔나는 그가 추는 ‘타란튤라의 춤’을 두고 “거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란튤라의 독을 빼내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결국 <와이프>는 확장된 노라들을 통해 단순히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사회의 지배구조와 낡은 통념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제거함으로써 이루어내는 자유와 평등을 설명한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 플랫폼-연출가’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나’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수자가 ‘나’로 사는 건 힘들지만 희망은 있다

<와이프>에는 ‘기적’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극중극 속 노라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연극이 현실을 뛰어넘는 적극성을 시각화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연극 자체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와이프>의 무대는 마치 현미경으로 시료를 확대하듯, <인형의 집>이 끝난 후 인물들이 모이는 장소를 리프트로 밀어 올린다. <인형의 집>의 관객이었던 이들은 연극을 본 후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한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한 극을 보고 게이 아이바는 “우리가 노라의 기적이에요”라고 말하고, 데이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신 자신의 꿈에 확신을 갖는다. 리프트를 타고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난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세상을 향한 외침처럼도 보인다.

한 편의 연극은 질문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고 이들이 변화하도록 독려한다. 개인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현실은 조금씩 전진한다. <와이프>는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기적의 실체임을 연극으로 보여준다. 억압된 현실에서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상처투성이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 맞춰 제작되었던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지하철 광고는 반대 세력에 의해 하루 만에 훼손되었다. 하지만 찢어진 이미지로 만든 ‘성소수자는 당신의 혐오를 이길 겁니다’라는 이미지처럼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 플랫폼-연출가’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나’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와이프>는 현재에서 멈추는 대신 희망을 기대하는 미래로 마무리된다. <인형의 집>을 보고 연극 속 인물이 성장했듯, 다음의 기적은 <와이프>를 보고 있는 관객의 손에 달려있다. 타란튤라의 춤은 계속된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재연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한 <와이프>는 8월 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계속 공연된다.

_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