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어제와 오늘의 서울에서 내일을 꿈꾸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제342회 정기연주회 <한양 그리고 서울>은 ‘서울’을 주제로 한 브랜드 공연의 전통과 시민과의 호흡을 살린 뜻깊은 공연이었다.

썩 괜찮은 공연을 보았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한양 그리고 서울>이다. <작곡가 세종을 만나다>를 집필해 한국 PD대상을 받은 기정 작가가 구성을 맡고, 뮤지컬 <영웅>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춘향>의 장수호 감독이 영상을 담당하고,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장이 연출로 나서 제작진의 면면만으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페이스북을 들여다볼 때마다 눈에 띄는 공연 포스터 디자인도 상당히 유혹적이었다. 포스터 속에는 서울과 한양이 위와 아래로 배치되었다. 서울타워와 빌딩숲, 그리고 올림픽대교는 서울의 현재 모습을 분홍빛으로 상징화했고, 연보라 색감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전통누각 등은 한양을 표현했다. 제작팀의 뜻을 잘 전달하도록 세심하게 제작된 포스터 덕에 관람 욕구가 생기던 차에 결정적으로 새로 부임한 박호성 단장이 올리는 공연이라는 정보에 마음을 굳혔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브랜드 공연 <한양 그리고 서울>의 여섯 번째 이야기를 박호성 단장은 어떤 빛깔로 만들어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박호성 단장의 지휘로 샌드아트와 함께 국악관현악의 진수를 보여준 <한양 그리고 서울>.

박호성 신임 단장은 세종국악관현악단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고 APEC 등의 국가행사와 국내외 주요공연에서 예술감독 및 지휘자로 2천여 회 참여했으며 국립민속국악원 원장으로 예술행정가의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이번 공연에서 박단장은 최고 공연 전문가의 면모를 대중 친화적으로 풀어냈다.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의 서울에서 내일을 꿈꾸다’라는 대주제는 2014년부터 ‘서울’을 키워드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선보여온 브랜드 공연의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한양부터 현재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을 국악연주와 함께 샌드아트, 영상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이번 공연에는 대중과의 소통을 특기로 하는 박호성 단장의 성향이 잘 담겨 있었다.

국악과 샌드아트, 뮤지컬로 표현한 어제와 오늘의 서울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거문고 연주에 맞춰 한시를 낭독한 프롤로그는 문장에 능했던 남산 딸깍발이 선비의 품격이 느껴졌다. 본 공연에서는 ‘한양’ ‘한양에서 서울로’ ‘서울’의 세 가지 테마로 다섯 곡의 국악 창작곡이 연주되었다. 첫 번째 테마 ‘한양’의 문을 연 음악은 조석연 작곡의 국악관현악 ‘거둥’이다. 경복궁에서 출발해 광화문을 지나 먼 길을 행차하는 임금과 신하들의 유려한 행차 모습을 국악관현악으로 작곡한 대작이다. 2015년 예술위원회의 작곡 축제 ‘아창제’에서 예술성과 음악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은 이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 음악적인 수위를 지키는 음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의 정체성과 국제적 보편성을 함께 담은 이 작품에서는 그랜드피아노와 실로폰이 함께 연주되었고, 지휘자의 격정적인 음악해석 덕에 객석에까지 음악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한시 낭독과 거문고 연주로 이뤄진 프롤로그.

태평소 협주곡 ‘태평’을 연주하는 성시영의 무대.

이어 서용석 명인의 태평소 시나위를 바탕으로 한 태평소 협주곡 ‘태평’이 연주됐다. 백성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민속 음악의 시나위로 풀어낸 무대다. 성시영의 힘 있는 태평소 협연으로 연주되었는데 빠른 템포에서 꽹과리의 활용도 흥미로웠다. 기교를 넘어 호쾌하게 풀어낸 성시영의 연주가 아주 좋았으며 연주자의 매력이 발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무대였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원 중에는 스타성이 있는 연주자가 아주 많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량을 드러낼 기회가 거의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 협연 무대를 통해 연주자의 보석 같은 음악을 올곧게 들을 수 있으니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좋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단원들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공연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무대였다.

‘한양에서 서울로’의 여정을 그린 두 번째 테마에서는 최성무 작곡의 생황 협주곡 ‘저 하늘 너머에’가 김계희의 생황 협연으로 연주됐다. 아름다운 선율의 유창한 음악으로 다분히 대중 친화적인 관점에서 선곡된 것이기에 공연장 분위기는 좋았으나 세종문화회관의 메인 무대라는 장소의 특수성과 정기연주회라는 무게감을 고려했을 때 단원들이 기대하는 예술적인 성취감을 놓친 것은 아닌지 다소 아쉬웠다.

김계희가 협연한 생황 협주곡 ‘저 하늘 저 너머에’.

국악 연주에 맞춰 각색한 뮤지컬 ‘지하철 연가’.

세 번째 테마 ‘서울’에서는 서울 시민의 일상적 모습을 담은 ‘지하철 연가’와 오늘날 서울 거리의 모습을 담은 이경섭 작곡의 ‘거리’를 젊은 감각으로 풀어냈다. 윤소희 작곡의 ‘지하철 연가’는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단장이 연출로 참여해 뮤지컬 배우 김명섭, 노지연, 한다연, 임혜성의 노래와 연기로 서울 시민의 일상을 담아냈다. 국악 반주의 노래가 익숙하지 않았을 배우들에게는 준비가 쉽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열연은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도 따뜻했던 무대다. 박호성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은 뮤지컬 배우들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고, 관객뿐 아니라 서울 시민 모두가 꿈과 희망을 안고 올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송년 공연의 의미를 담아냈다. 이경재 단장과의 협업을 통해 색다른 무대로 완성한 ‘지하철 연가’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 중 국악과 협업한 첫 번째 공연의 포문을 연 것이다. ‘융복합’이 공연문화의 또 다른 흐름으로 부각되고 있기에 후속 작업의 가능성도 기대하게 했다.

음악계를 바꿀 불멸의 국악관현악단을 기대한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조선 시대의 한양부터 현재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을 국악 선율과 샌드아트, 영상과 함께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오래된 서울의 흑백사진과 공연 동영상은 재미를 넘어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은 아닌지 돌아보고 관객을 위한 친절한 배려를 넘어서 조금 더 음악에 집중해 관현악단의 예술성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양 그리고 서울>에서는 국악관현악의 역량, 연주자들의 연주, 그리고 영상이 잘 어우러졌다.

좋은 공연을 본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흐뭇하다. 적어도 한 이틀 동안은 행복한 기운이 몸 전체로 반응을 하는지 기분도 덩달아 좋다. 공연을 본 후에는 어제보다 조금은 착해진 것 같기도 하고, 문화적으로도 약간은 세련돼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공연도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는지 옆자리 사람들이 즐겁게 공연을 즐기면 나도 덩달아 그렇게 된다. 그러니 음악가들은 좋은 공연을 많이 만들어 함께 시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 단체라면 그 책임감은 더욱 크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한국음악의 전통 위에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세우는 원대한 목표로 내년도 공연 계획을 발표했다. ‘세상을 이롭게 할 불멸의 국악관현악단’으로 성큼 다가설 기획이기에 내년 공연도 기대가 크다.

_현경채(음악평론가, 영남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