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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어렵지 않아요

서울시극단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가족음악극으로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우리 가족이 공연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관람 포인트는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도 ‘고전은 역시 고전’인 이유는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다시 해석되기 때문이다. 서울시극단 역시 2015년부터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을 가족음악극 형식으로 소개해왔다. 2020년 새해를 맞아 서울시극단이 ‘용서와 화해’를 다룬 <템페스트>를 다시 올린다. 가족음악극으로 변신한 <템페스트> 속 숨어 있는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 미리 알고 가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1 새로운 각색, 요리사의 말을 믿으세요

동생의 배신으로 낯선 곳에 추방된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는 복수를 위해 태풍을 일으킨다. 나폴리의 왕 알론소를 태운 배는 성난 파도와의 사투 끝에 난파되고 왕과 귀족, 선장과 요리사 등 탑승자 전원이 물에 빠져 뿔뿔이 흩어진다. 누군가는 왕의 죽음을 단정 지어 왕좌를 탐하고, 프로스페로에 의해 섬을 빼앗긴 칼리반은 인간을 꼬드겨 복수를 꿈꾼다. 여러 갈등과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이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이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다.

새로운 각색, 요리사의 말을 믿으세요
새로운 각색, 요리사의 말을 믿으세요

요리사 스테파노가 말하는 화해의 방법. “무슨 일이 벌어지면 식탁에 앉으세요!”

서울시극단의 가족음악극 <템페스트> 역시 원작의 큰 줄기를 그대로 따른다. 대신 <템페스트>는 원작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화해의 방법을 ‘식사’에서 찾아낸다. 작품은 셰프 스테파노를 이야기의 해설자이자 사건의 해결사로 설정해 그가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밥상 철학을 들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배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도 그날의 요리를 준비하고, 모두가 모여 서로의 행동을 힐난할 때도 “모든 사람이 식탁에 함께 앉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말로 문제를 잠재운다. 프로스페로의 밥을 매번 챙기며 “밥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뭐냐”며 묻는 것은 그의 딸 미란다이며 바람의 정령 에어리얼 역시 프로스페로로부터 자유를 얻고서도 친구로서 그의 곁에 남아 잔치 음식을 먹는다.
원작이 지적하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은 프로스페로가 칼리반과의 겸상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관계의 붕괴는 침묵과 추측에서’라는 말이 있다. <템페스트>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화해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요리사 스테파노의 말을 믿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식탁에 앉으세요!”

템페스트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현대어로 바꾸고 노래와 춤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2 말보다 신나는 것은 역시 노래죠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기 어려운 것은 그의 대사들이 운율을 띈 운문이기 때문이다. <템페스트>는 원작의 대사를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바꾸고, 셰익스피어의 장점인 운문을 아예 노래로 만들어 한계를 돌파한다. 노래는 프로스페로의 과거처럼 긴 분량을 3분으로 축약해 설명하는 데 탁월하게 쓰인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위를 긴박하게 그리거나 절망에 빠진 스테파노가 요리하는 장면을 흥겹게 표현하는 것도 음악이다. 발라드부터 록, 랩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변화하는 다양한 장르가 판타지적인 설정의 어색함을 없앤다. 여기에 “보글보글”, “좔좔”, “쩝쩝” 같은 의성어로 가득한 가사가 더해져 관객의 관심을 끌어낸다. 정령들은 음악에 맞춰 파도와 바람을 표현하고, 귀족들도 그들의 이동을 안무를 통해 보여준다. 이로써 <템페스트>는 시·공간의 한계가 뚜렷한 무대예술에서 노래와 춤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임을 증명한다.

말보다 신나는 것은 역시 노래죠

이번 공연에서는 남녀 배우의 고정적인 성역할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3 남자만 왕이 되란 법 있나요?

최근 높아지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은 연극에도 시대적 변화를 요구하는 중이다. 연극 속 여성 캐릭터의 직업이 교수, 변호사, 소설가, 연구원 등으로 다양해졌다. ‘엄마’로 통칭되어 설명되던 인물들의 감정이 풍부해졌고 선택의 주체성도 높아졌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그동안 남성 배우들이 당연하게 맡았던 캐릭터를 여성 배우가 맡는 젠더 프리 캐스팅은 연극 안에 존재하던 고정적 성역할과 그에 따른 기회의 박탈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여성 배우들의 가능성이 확장되며 이들의 새로운 연기를 보는 기쁨도 더해졌다. 2020년에 돌아오는 <템페스트> 역시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한다.
2015년 초연 당시 스테파노와 트린굴로는 권위 있는 남성 셰프와 셰프를 동경하는 여성 조수로 표현됐었다. 이번 재연에서는 여성 배우 이지연이 셰프 스테파노를, 남성 배우 김솔빈이 조수 트린굴로를 맡아 고정적인 성역할을 지우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다. 지난 시즌 남성 캐릭터였던 나폴리의 왕 알론소 역시 여성 배우인 최나라가 맡는다. 특히 최나라의 경우 초연 당시 여성성이 부각된 에어리얼을 맡은 경험이 있어 그 변화가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남자만 왕이 되란 법 있나요?

이번 <템페스트> 공연은 짧고 간결한 구성 안에 작품의 주제를 담아 가족 모두 공연을 즐길 수 있게 연출했다.

#4 관객 여러분, 셰익스피어 어렵지 않아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5막 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무인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있어 수시로 공간이 이동하며 프로스페로가 정령과 칼리반을 통해 선보이는 마법은 다채로운 시각적 구현을 요구한다.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템페스트>는 원작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만을 골라 새롭게 이야기를 만든다. 번역투의 대사는 익숙한 방식으로 고쳐졌다. 마법의 이름들은 ‘뒷걸음뒷걸음 마법’, ‘매워매워 마법’처럼 직관적이며 마법에 맞춰 홀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모습은 코믹하게 표현된다. 원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어 자막과 어린이 관객을 위해서는 공연 관람 예절과 작품의 설명을 담은 ‘템페스트 가이드’도 제공된다. 길게는 3시간까지 공연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70분에 이야기를 마친다. 짧고 간결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깊이 담아냄으로써 모두가 함께 공연을 즐기는 것. 이처럼 <템페스트>가 꿈꾸는 것은 ‘함께하는 세상’이 아닐까.

템페스트
쉽게 보는 셰익스피어 시리즈_가족음악극 <템페스트>
일정 :  2020.01.10(금)~2020.02.02(일)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화, 수, 목 오전11시 / 금 오후7시 30분 / 토 오후2시, 오후5시 / 일 오후2시(월요일 공연 없음. 설 연휴 1/24(금), 1/25(토) 공연 없음. 1/26(일) 오후2시, 오후5시, 1/27(월) 오후2시 공연 진행. 1/28(화) 공연 없음) 
공연시간 :  70분, 인터미션 없음
연령 :  48개월 이상
티켓 :  R석 4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_장경진(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