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다시, 이상과 희망을 노래하자

다시 만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낭만주의 시대 음악가들의 작품으로 2020년 새해를 힘차게 연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2020년은 무엇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으로 다가온다. 청각 이상이라는, 음악가에게 이보다 더 가혹할 수 없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역작들을 남긴 악성樂聖 베토벤. 그의 생애와 예술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의미를 새삼 돌아봐야 할 때다. 더욱이 세계 각지에서 반목과 갈등이 가중되는 종래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와 인류의 화합을 설파했던 베토벤의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올해 세종문화회관 신년음악회는 그런 베토벤의 유지를 받들어 격동의 낭만주의 시대에 다시금 이상과 희망을 노래했던 브람스와 브루흐의 작품들로 한 해의 문을 연다. 아울러 그 연주를 맡은 서울시향과 정명훈, 클라라 주미강도 베토벤의 정신을 받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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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세종문화회관 신년음악회는 이상과 희망을 노래했던 브루흐(왼쪽)와 브람스의 작품으로 한 해를 연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재회

올해 신년음악회가 예년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 이유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재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명훈은 지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시향을 이끌며 악단의 전성기와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5년 말 안타까운 이별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정명훈을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으리라 짐작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겪었던 시련에 견주는 아픔을 그가 사랑하는 모국이 안겨주었다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명훈은 거기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6년 여름 열린 롯데콘서트홀 개관기념 콘서트에서 예정대로 서울시향을 지휘했고, 역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출범한 ‘원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재작년부터는 KBS 교향악단과 새로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해외에서 정명훈은 현재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신년음악회 지휘를 2년 연속으로 맡은 것을 비롯해 밀라노 스칼라 극장,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등 이탈리아 무대에서 젊은 시절보다 더 각광받고 있으며 과거의 파트너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도쿄 필하모닉과의 유대 역시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이처럼 아쉬울 것 없는 그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모국 음악계를 등지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모국에 대한 애정, 그리고 국내 음악계를 향한 그의 의지와 진심에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건만 조성된다면 남북 간의 문화교류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누차 피력해왔고, 실제로 이를 추진하고 성사하기 위해 노력한 바도 있다.

서울시향의 포디움에 정명훈이 다시 오른다는 건 국내 음악계가 밝은 미래로 도약한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간혹 억측과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정말 ‘음악밖에 모르는’ 그의 국내 활동에서 서울시향과의 파트너십은 중추적이다. 그가 서울시향을 이끌던 시기는 국내 클래식 음악계뿐 아니라 그의 인생과 예술에서도 황금기이자 절정기였기에 그가 다시금 서울시향의 포디움에 선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국내 음악계가 작금의 어지러운 현실을 딛고 보다 밝은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혹은 동력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루흐와 클라라 주미강, 그 희망의 노래

이번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은 독일 낭만주의의 두 거장, 막스 브루흐와 요하네스 브람스의 대표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를 장식할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아련한 서정과 호소력 짙은 서사가 작곡가 특유의 감미로운 선율에 녹아들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다. 브루흐는 19세기 후반, 즉 독일에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 절정을 이룰 때 활약했다. 따라서 그의 음악에서는 후기 낭만주의 특유의 농밀한 정감과 풍부한 색채가 전면에 부각되며 동시에 독일 음악의 전통적 양식을 기초로 한결 자유롭게 표현한 형식미도 돋보인다.
특히 그는 독일의 전통적 양식과 민족적 표정을 낭만적 흥취에 실어 표현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능력을 가장 눈부시게 표현해낸 작품이 바로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협주곡은 멘델스존, 브람스의 작품들과 더불어 독일 낭만주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대표로 손꼽히며 고난과 시련을 딛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듯한 극적인 전개에서는 베토벤의 정신을 계승한 면모도 보인다.

클라라 주미강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세종문화회관을 더 밝은 희망의 메아리로 가득 채울 것이다.

한편 이 브루흐 협주곡의 바이올린 솔로는 클라라 주미강이 맡는다. 여기서 잠시 연주가로서 그녀의 이력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여느 스타급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으로 주목받으며 음악계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화려한 경력 덕에 자칫 간과되기 쉬운 시련도 있었다. 연주자로서 성장에 한창 박차를 가해야 할 무렵 불의의 손가락 부상을 입은 것이다. 때문에 당시 대여해서 사용 중이던 고가의 바이올린을 반납해야 했고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협연 기회도 무산되었다. 심지어 다친 손가락의 회복이 더뎌 재기가 어렵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하지만 꾸준한 재활치료와 각고의 노력 끝에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고, 이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센다이 국제 콩쿠르,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 등을 연거푸 석권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동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시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그에겐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기회가 절실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출전이었다. 그 정도 경력을 쌓은 연주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그 콩쿠르에서 선전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둔 끝에 연주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그가 들려줄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세종문화회관을 더욱 크고 밝은 희망의 메아리로 채울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비극을 딛고 그려보는 새로운 미래

2부에서 연주될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브루흐 협주곡에 비해 한층 진중하고 장대한 노작勞作이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20년 이상이 걸렸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작품으로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 교향악사에 새로운 금자탑을 세우고자 했던 브람스의 결연하고도 치열했던 투쟁과 숙고의 산물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서주로 출발하는 이 교향곡의 첫 악장은 베토벤풍의 투사적 열기와 브람스 특유의 신중한 사유가 교차하며 장엄하게 전개된다. 마침내 기상과 의지를 머금은 열정과 고뇌 어린 우수의 뒤편으로 그윽한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잦아든다.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맡았던 초창기에 브람스 교향곡 및 협주곡 사이클을 진행해 커다란 파장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지는 느린 악장에서는 가슴 시린 서정과 애상이 나란히 떠오른다. 앞선 악장에서 부각된 무겁고 어두운 고뇌의 그림자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오보에와 매혹적인 바이올린 솔로가 펼치는 은은한 광휘와 온화한 기운 속에서 차츰 정화되며 마무리된다. 이후 음악은 활기찬 무곡 악장을 거쳐 장대한 피날레로 진입하는데, 베토벤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이 마지막 악장은 비극적 정념과 고뇌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상승하는 결말을 지향하고 있다.

정명훈의 지휘 경력에서 브람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서울시향을 맡았던 초창기의 주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에 이어 브람스 교향곡 및 협주곡 사이클을 진행하여 커다란 파장과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제1번’은 그의 장기 레퍼토리인 ‘교향곡 제4번’, 그리고 ‘독일 레퀴엠’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일군 공연으로 기억된다. 이번 세종문화회관 신년음악회에서도 그와 서울시향은 ‘브람스 1번’으로 다시금 감동의 무대를 연출하리라 기대된다. 그리고 그것이 국내 음악계와 이 나라가 이제까지의 역경을 헤치고 보다 밝은 미래로 전진하는 신호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향이 함께하는 <2020 신년음악회>
일정 :  2020.01.04 ~ 2020.01.04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오후 5시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90,000원, R석 70,000원, S석 40,000원, A석 30,000원
할인 : 세종유료회원 30%~20% 할인

_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