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의 삶과 아픔을 다룬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17년 12월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와 주연배우 나문희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던 때였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단장 박호성)이 선보인 이 작품은 국악과 영화가 함께 하는 드라마 콘서트로, 조정래 감독의 2016년 영화 <귀향>의 장면들이 부분적으로 사용된다.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
때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 정민은 경남 거창에 사는 해맑은 14세 소녀다. 어느 날 일본군들이 정민의 집으로 쳐들어오고, 정민과 또래 소녀들은 기차에 실려 중국 길림성 위안소로 끌려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겪은 소녀들은 도망을 결심한다. 한편, 1991년 강도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예기치 않게 부모님까지 잃은 은경은 무속인 송희를 찾아간다. 이후 은경은 송희의 신딸로 굿당에서 살게 되고, 한복을 맞추는 자리에서 송희의 지인 영옥을 만나게 된다. 영옥을 만난 이후 은경은 군인들이 소녀들을 괴롭히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영옥은 이런 은경의 꿈 이야기를 듣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훗날 은경은 영옥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영옥은 은경에게 희생자들을 위한 씻김굿을 부탁한다.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의 스토리다.
조정래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를 접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조 감독은 이 공연에 영상감독으로 참여하여 영화에서의 감동을 국악과 함께 하는 무대로 다시 이끌어낸다.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는 국악과 영화가 함께 하는 드라마 콘서트다.
완성도와 다양성을 높인 작곡가들
영화의 줄거리는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의 흐름이기도 하다. 5개의 테마(이별, 고향, 지옥, 진혼, 귀향)가 뼈대를 잡는다. 영화의 일부 장면이 상영되다 영상이 스르르 사라지면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원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펼쳐지는 흐름이다.
음악은 이미 널리 연주되는 창작 국악들을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의 구성과 성향에 맞춰 다시 디자인했다. 2005년 창단된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가야금, 거문고, 대금, 소금, 피리, 해금, 아쟁, 타악, 성악, 작곡으로 구성된 악단이다. 세대에 걸맞게 젊은 기운과 실험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상과 함께하지만 공연의 완성도와 다양성의 온도를 높이는 것은 뛰어난 작곡가들이 참여해 만든 음악이다. 관객의 귀에서 가슴으로 파고들게, 또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 세심하게 편곡하고 재구성한 것이 핵심 포인트다. 예를 들어 기존에 나온 ‘가시리’는 류형선의 작곡과 최덕렬의 편곡으로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다. 또한 영화<귀향> OST 수록곡인 함현상 작곡의 ‘언니야..집에가자’는 박경훈 편곡에 배우 오지혜의 ‘딸에게 띄우는 편지’ 낭독을 더해 그 아픔을 전한다. 오페라·연극·무용 등 이야기가 있는 장르와 오랜 시간 작업해 온 황호준의 ‘귀향’은 이 공연을 위해 새롭게 위촉·작곡되기도 했다.
2017년 공연에서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수석단원 김초롱(타악)이 ‘지옥’ 테마를 연주하는 모습.
지옥과 마주하는 순간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는 역사 속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이다. 특히 ‘지옥’ 테마는 가슴을 파고든다. 장재효의 타악구성으로 완성하는 ‘獄, 태워지는 처녀들’은 국악기로 그로테스크한 날카로운 음들이 튀어나오고 무대와 객석은 붉은빛으로 물든다. 화면에는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이 나온다. 아픔의 주인공에서, 이제는 그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선봉에 서서 인권운동가가 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에서 미술심리치료 중에 그린 그림이다. 영화 <귀향>에서는 이 그림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함현상 작곡의 ‘언니야… 집에 가자’가 연주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 <귀향>의 주연배우 오지혜가 화면에서 나와 위안소에서 엄마를 그리워 할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면서 그 아픔을 전한다.
2017년 초연 당시 작품의 얼개를 짠 유경화 전 단장은 ‘지옥’ 뒤에 ‘진혼’을 두었다. 누군가는 ‘지옥’ 테마를 보며 역사 속 아픔에 공감하고, 또 누군가를 분노를 느낄 것이다. ‘진혼’ 테마는 그런 아픔의 주인공들을 달래준다. ‘영상-콘서트’가 일종의 ‘치유-콘서트’가 되는 순간이다.
17년도 공연 모습.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국악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달랜다.
아픔을 달래는 젊은이들의 진혼제
‘진혼’ 테마에서는 망자들을 위한 씻김굿이 진행된다. 같은 뿌리를 공유한 영화 <귀향>과 공연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 중 전자가 영화라는 매체의 파급력을 등에 업고 아픔을 널리 알린다면 후자는 한국음악과 끈끈하게 연결된 치유로서의 굿을 공연 깊숙이 들어 앉혀 그들의 아픔까지 어루만진다.
‘귀향’ 테마에서 함현상 작곡(박경훈 편곡)의 ‘아리랑’이 잔잔히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아픔의 주인공들이 아직도 위로와 역사의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음을 느끼게 된다.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는 무대의 화면이 꺼지고, 음악이 멈추고, 막이 내려와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아직 부르지 못한, 혹은 끝내서는 안 될 아픔과 공감의 노래가 있음을, 그것을 반드시 불러야 함을 느끼게 한다. 2017년 공연 당시 프로그램 북에는 “이제 33분 남아 계십니다. 지날 달 11일, 위안부 피해자 이기정 할머니가 별세하셨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무대를 올렸어야 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티켓 : R석 40,000원 | S석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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