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컬렉터의 세계와 만나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이 컬렉터의 안목을 통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가을 ‘세종 컬렉터 스토리’에서 그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앤디 워홀, <리즈>, 석판인쇄.

우리나라에 컬렉터라 이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쯤일까? 미술계에서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H 갤러리 대표는 대략 500명 정도일 거라 말했다. 수집품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컬렉터들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1500명에서 2000명 사이일 거라 추정된다.
중국의 컬렉터가 1500만 명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미술시장은 너무나 빈곤하고 초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컬렉터들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너무나 반갑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경제 상황에 미술 시장이 옹색해진 지금, 우리는 그림 사랑이 지독한 한 컬렉터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벽산그룹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시 ‘세종 컬렉터 스토리’가 바로 그 현장이다. 미술품 컬렉션은 시대를 앞서간 미술 애호가들의 삶 그 자체이며 상징인 것이다.

이우환, <무제>, 캔버스에 유채.

진정한 예술 애호가의 모범, 김희근

김희근 회장은 지난 세대 한국을 대표하는 컬렉터들 중 한 사람이지만 그가 수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박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기업 경영가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식사가 끝난 후 우연히 인사동 화랑가를 기웃거리다 흥미를 느낀 그는 ‘싸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그림 구경을 하는’ 모임을 친구들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순간이 그의 농밀한 컬렉션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번 ‘세종 컬렉터 스토리’에 전시되는 그림들은 지난 30여 년간 벽산그룹 사내에 빼곡하게 진열되었던 국내외 작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만 선별한 결과다. 김희근 회장은 자신이 정작 좋아하는 것은 개별 작품이 아닌 예술가들의 ‘삶’이고 말해왔다. “저는 관찰자일 뿐입니다. 순수예술에 빠진 아티스트들과 신나게 얘기하고 밥 사주는 일이 즐겁고 행복해요.” 김희근 회장이 소탈하게 말한 그 이야기야말로 그의 컬렉팅 지론이었다.

프랭크 스텔라, <고래화석>, 혼합재료. 루이스 부르주아, <보들레르>, 종이에 에칭, 수채화, 과슈, 잉크, 연필.

전 세계에서 현대미술의 걸작을 모으다

그는 늘 정부 예산만으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철학과 함께 젊고 유능한 작가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목하고 소장했다. 그만큼 컬렉션 작품 또한 다양하고 풍부했다. 그의 컬렉션에는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짐 다인 등 세계적인 팝 아트 화가들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플럭서스의 요셉 보이스, 미디어의 천재 제임스 터렐,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까지 폭넓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포함되었다. 세계적인 설치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물론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백남준 등의 혼합매체 분야의 작품들 또한 즐비하다.

김희근 회장의 선견지명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일찌감치 주목했다는 데서 더욱 잘 짐작해볼 수 있다. 이미 그들이 작가로서 유명해지기 훨씬 전 이수경과 양혜규, 홍성도, 조덕현 등 지금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는 것은 현대미술에 대한 그의 이해와 예지력, 안목이 범상치 않았음을 엿보게 한다. 미니멀리즘부터 개념적인 작품, 컨템포러리 팝 아트까지 작은 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방대한 컬렉션으로부터 이 희대의 컬렉터가 얼마나 남다른 취향과 면모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세종 컬렉터 스토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들.

문화예술을 향한 컬렉터의 사명감

김희근 회장은 백남준의 작품을 구입하며 ‘해외에서 대접받으려면 국내에서 제값을 치러야 한다’며 우리 예술가들을 향한 책임감과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속 깊은 사랑으로 컬렉팅한 미술 작품은 1000여 점이 넘는다.
보물처럼 숨겨져 있던 이 작품들이 2019년 가을 마침내 국내 애호가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림을 수장고에 쌓아두면 뭐하겠습니까? 음악과 미술, 문학 등 문화예술 또한 순환이 있어야 보람이 따릅니다.” 그는 이처럼 철저히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인으로 남고 싶어 했다. 김희근 회장에게 컬렉션이란 생활 속의 철학이자 삶의 의미, 가치였던 것이다.

명품은 두 번 태어난다고 한다. 한 번은 예술가의 손에서, 두 번째는 컬렉터의 손에서 비로소 명작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김희근 회장이 손수 선정한 이 작품들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과 마주할 때의 숨결과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의 주옥같은 명품을 감상하며 이번 가을에는 마음의 부자로서 예술적 감흥의 컬렉터가 되어 보자.

Information ‘세종 컬렉터 스토리’
일정2019.10.23 (수) ~ 2019.11.12 (화)
장소 세종 미술관1관
시간오전 11시 ~ 오후7시30분 (매표 종료 시간 18:30)
티켓 :  일반(만19세 이상) 4,000원, 학생(초, 중,고), 군인 2,000원,어린이(미취학 아동) 1,000원

_김종근(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