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걸작을 만나다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 <돈 조반니>를 서울시오페라단이 공연한다.

스페인 세비야에 한 젊은 백작이 살았다. 그는 지체 높은 귀족이지만, 돈과 권력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여자를 유혹하는데 모든 정열을 쏟았다. 하인 레포렐로를 대동하고는 스페인 전역과 온 유럽, 심지어는 터키까지 건너가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그 숫자만 2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돈 조반니(Don Giovanni), 스페인에서 가장 이름난 호색한이다.

돈 조반니 역을 맡은 바리톤 한규원(좌)과 바리톤 정일헌(우)

호색한 전설, 위대한 오페라로 변모하다

‘돈 조반니’는 중세 시절부터 전해오는 유럽의 유명한 전설이다. 잘 생긴 외모와 호방한 성격을 지닌 귀족이 엽기적인 향락 생활을 이어가다가 혼령이 된 석상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지옥불로 떨어진다는 이야기. 모차르트가 이 전설에 음악을 붙여 오페라를 만들 결심을 한 건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의 다 폰테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궁정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살리에리를 비롯해 당대 여러 유명 작곡가들과 공동작업을 했지만 특히나 모차르트와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
모차르트는 다 폰테와의 긴밀한 협업 속에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세 작품을 남겼는데, 이른바 ‘모차르트-다 폰테 3대 오페라’로 불리는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돈 조반니>가 그것이다. 이들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희극 오페라로 분류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 중에서도 <돈 조반니>는 여러모로 최고의 오페라로 손꼽힌다. 사실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기념비적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돈나안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상은(좌)과 권은주(우)

돈 조반니의 여인들

오페라 속에서 돈 조반니는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들과 조우한다. 첫 번째는 돈나 안나다. 그녀는 지체 높은 기사장의 딸로, 귀족 집안의 여인이다. 조반니는 야밤에 안나를 유혹하러 침입했다가 그녀의 아버지인 기사장과 마주친다. 결투 끝에 기사장을 죽인 조반니는 하인 레포렐로와 함께 황급히 도망치는데, 어둠 속에서 유혹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안나는 약혼자인 돈 오타비오와 함께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 앞에서 복수를 다짐한다. 안나는 기품 있는 정열, 고고한 품위를 지닌 상류층 여인을 대변한다. 차가운 이미지를 지녔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두 번째 여인은 돈나 엘비라이다. 젊은 시절 조반니의 유혹을 받아 사랑에 빠졌지만 곧 그에게서 버림받는다. 지금도 스페인 전역을 돌며 돈 조반니를 찾아다니는데, 오랜 기간의 기다림과 추적 끝에 그에 대한 마음은 어느덧 사랑과 미움이 마구 뒤섞인 애증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엘비라와 마주친 조반니는 레포렐로에게 뒤처리를 맡긴 채 다시 줄행랑을 놓는다. 레포렐로는 그녀에게 주인의 엽기적인 여성 편력을 묘사하는 아리아 하나를 부르는데, 유명한 ‘카탈로그의 노래 Madamina, il catalogo e questo’이다. 그에 따르면 그간 돈 조반니는 무려 2,065명의 여자를 유혹했으니,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신분도 상관없이 그저 여자라면 모두 접근했다고 한다. 노래를 들은 엘비라는 부끄러움과 모멸감에 치를 떨지만, 그녀를 더욱 괴롭히는 건 그럼에도 조반니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다. 사랑이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까.
마지막 여인은 시골 농부의 딸 체를리나다. 체를리나는 약혼자인 평범한 남자 마제토와 결혼식을 준비하다가 세련된 귀족 조반니와 마주친다. 체를리나의 풋풋한 미모와 앙증맞은 애교에 매혹된 조반니는 현란한 화술로 그녀를 유혹한다. 망설이던 체를리나는 결국 조반니의 달콤하고 우아한 유혹에 빠져 그와 함께 사랑의 듀엣을 부르니 그것이 ‘여기로 와 내 손을 잡아요 La ci darem la mano’이다.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에게 마음을 완전히 허락하지만 끝내 마제토를 버리지는 않는다. 가장 솔직하고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귀족 사회를 동경하고, 달콤한 사랑 속에 신분상승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현실적인 여성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좌)와 그가 직접 쓴 돈 조반니 악보(우)

예술성과 발랄함의 조화

난봉꾼 행각을 이어가던 조반니에게도 최후가 찾아온다. 돈나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장이 혼백인 석상(石像)이 되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조반니는 석상의 징벌을 받아 지옥불 속으로 떨어진다. 권선징악의 결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묘한 뒤틀림이 있다. 조반니는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이지도, 반성을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지옥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릴 뿐이다. 오페라 속 돈 조반니는 언제나 고독하고 사회로부터 유리된 아웃사이더면서도 동시에 끝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당당한 악한’으로 그려진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돈 조반니라는 캐릭터 속에서 모차르트의 도도한 예술가적 자존심을 읽어낸다. 왕과 귀족 혹은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회개’하느니 차라리 당당한 ‘예술가적 죽음’을 꿈꿨던 모차르트였다. 돈 조반니는 어쩌면 예술가 모차르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돈 조반니>의 음악은 생기 넘치는 발랄함과 심오한 예술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목관 앙상블을 연상케 하는 정교한 중창이 이어지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아리아와 달콤한 세레나데와 발라드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돈나 안나와 돈 오타비오의 품위 있고 정제된 노래에선 삶의 고결한 가치가, 돈나 엘비라의 폭풍과도 같은 아리아에선 열정적인 인생에 대한 찬가를 발견할 수 있다. 체를리나의 설탕과도 같은 달콤한 애교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모두가 모차르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찬란한 유산이다.

기사장의 석상과 돈 조반니를 묘사한 알렉상드르 애바리스트 프라고나르의 그림

서울시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은 이 아름답고도 문제적인 오페라를 실연으로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세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수많은 명연을 이끌었던 초일류 마에스트로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이탈리아인다운 뜨거운 정열과 모차르트 음악 특유의 정밀한 앙상블을 동시에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내 성악가들로 짜여진 출연진들도 각 배역에 걸맞는 개성적인 목소리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무장한 최고의 진용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만나보자. 유쾌하면서도 심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감동을 자아내는 이 ‘비극적 희극’과 함께 우리의 가을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
일정 :  2019.10.30 (수) ~ 2019.11.02 (토)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수, 목, 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5시 (공연시간 : 180 분 / 인터미션 : 20 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VIP석 120,000원 / R석 100,000원 / S석 80,000원 / A석 50,000원 / B석 30,000원

_황지원(오페라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