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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무대에 서다

역사 속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우리 마음 속에 한층 더 깊은 울림을 던졌던 국내외 음악극 이야기.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투란도트>의 이야기 속 무정한 공주, <오페라의 유령>의 히로인 크리스틴…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극 속 주인공들은 허구의 인물이 많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당대의 인기 높은 소설에서 영감을 얻거나, 신화 속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곤 했다. 그러나 음악극의 갈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역사 속 실존인물을 무대에 올린 경우도 제법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음악극이 무대로 호출하는 인물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범부가 아니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기 전 이미 흥미와 호기심을 느낄 정도로 누구나 알 법한 이름들 가운데, 극이 성립될 수 있을 만큼 극적인 인생을 산 인물들이 음악극의 주인공으로 유독 사랑받는다. 이를테면 영웅, 폭군, 왕과 여왕,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예술가 등이 대표적이다.

헨델에게 영감을 줬던 역사 속 영웅 알렉산더 대왕.

오페라, 역사 속 영웅에 주목하다

음악극의 설정으로부터 역사적 정확성을 일일이 따지려드는 건 무용한 일이다. 무대는 역사 시험장이 아니다. 극작가들과 작곡가들은 실존인물의 삶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극적 장치를 더하고, 실제 사건과 허구의 캐릭터를 섞는다. 기록과 픽션, 실제와 허구 사이, 역사적 사실과 시대정신을 동시에 품고 우리 곁에 걸작으로 남은 음악극들을 살펴본다.
오페라와 오페레타가 인기 높은 대중 예술이던 시대, 무대의 주인공으로 호출되던 역사 속 인물들은 고대와 중세의 영웅들이 많았다. 찬란한 업적을 남기며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소설의 등장인물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은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당시 기담을 소재로 삼았다. 17세기 후반 최고의 문인이며 영국 신고전주의 문학의 개척자였던 존 드라이든이 쓴 <알렉산더의 향연 또는 음악의 힘>이 이 합창의 원전이다. 331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개최한 잔치에서 음악에 재능을 가진 티모테우스가 노래를 불러 관중의 마음을 휘어잡는다는 내용이며, 다양한 변주와 음악적 표현, 바로크 특유의 매력적 선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2016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합창단의 공연으로 서울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소개된 바 있다. 헨델에게 알렉산더 대왕의 행보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가 왕립음악원을 위해 작곡한 3막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인도왕, 포로>에도 알렉산더 대왕은 등장한다. 18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대본가 메타스타시오가 쓴 각본은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 대왕과 인도왕 포러스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중세 스페인의 구국영웅 엘 시드의 전설 같은 인생 또한 많은 작곡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엘 시드’는 카스티아야의 귀족이었던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의 별명인데, 무어족의 언어로 ‘뛰어난 전사’를 뜻한다. 음모와 승리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클로드 드비시, 쥘 마스네, 요한 카스파르 아이블링거 등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실존인물을 무대에 세운 거장 작곡가, 헨델과 베르디

작품에 영감을 주는 건 영웅만이 아니다. 때로 폭군의 삶은 영웅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1642년 작품이자 베네치아에서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로 황제와 포페아가 그렇다. <포페아의 대관식>은 바로크 시대 오페라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조반니 프란체스코 부제넬로가 대본을 썼는데, 그는 로마 시대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부터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사까지 수많은 역사 기록을 참고하여 대본을 썼다. 신화나 종교 경전으로부터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끌어내려 했던 당대 주류 오페라와 달리, <포페아의 대관식>은 네로의 사악한 애인 포페아의 승리와 사랑을 그렸다. 네로 황제가 포페아에게 품은 욕망, 여왕이 되고자 하는 포페아의 야심은 관능적인 이야기와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 또한 역사적 인물들을 무대에 세웠다. 그 중 베르디의 초창기 걸작 <아틸라>는 5세기 중반 유럽을 격랑에 빠뜨렸던 훈족의 대왕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훈족의 입장에서 아틸라는 영웅이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의 관객들 입장에서는 침략자이자 악역이다. 북이탈리아를 침략한 아틸라 왕을 아퀼레이아 영주의 딸 오다벨라가 무찌르는 이야기는 작품이 초연된 베네치아 시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뤄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영웅>

시인부터 과학자까지, 뮤지컬이 주목한 현대의 영웅들

근세까지 음악극 속 역사 인물들 중에는 전쟁 영웅이나 왕, 여왕의 지분이 높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 무대 위 이야기도 함께 변화하는 법이다. 신분체계와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다양한 직군이 등장하며, 근대 이후의 영웅은 보다 다채로워졌다. 현대 오페라에서는 예술가와 정치가의 극적인 인생 또한 곧잘 무대에 오른다. 살바도르 달리, 올리버 크롬웰, 찰리 채플린, 피터 브뤼겔 등 현대 오페라의 이야기에 출현하는 실존 인물들은 베르디와 푸치니의 시대에는 좀처럼 음악극의 주인공으로 떠올리기 어려웠다.
한층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장르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한층 두드러진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막한 뮤지컬들을 두고 팩션(faction) 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팩션은 팩트와 픽션의 합성어로, 실화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등장한 이야기다. 세종대왕이 임금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시력 악화에도 한글 창제에 몰두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모습을 그렸던 <1446>, 천재시인 랭보와 그의 연인이었던 폴 베를렌 사이 실제로 펼쳐졌던 로맨스를 그렸던 뮤지컬 <랭보>,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였던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그린 <마리 퀴리> 등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2009년 초연된 후 커다란 성공을 거둬 국내에서도 공연된 <모차르트> 또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그렸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사람들에게 낯선 허구 속 인물보다 누구에게나 흥미롭게 여겨질 역사 속 인물이 오히려 흥행 공식에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10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된 뮤지컬 <영웅> 또한 우리 역사 속 실존인물인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음악극이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초연된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까지 8개월의 시간에 이야기를 집중시킨다. 뛰어난 음악적 성취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하게 국내 공연을 가졌으며, 뉴욕 브로드웨이와 하얼빈 등 해외 상연 또한 성공을 거뒀다. 2019년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될 <극장앞독립군>은 비슷한 시대 또 한명의 독립 투사의 삶을 다른 관점에서 조망한다. 투쟁을 밀도 높게 다루기보다 인간 홍범도의 인생 역정을 그려낼 <극장앞독립군>이 한층 궁금해진다.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9월 20일(금) 오후 7시 30분, 9월 21일(토) 오후 5시(공연시간: 100분 / 인터미션: 2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70,000원 / R석 50,000원 / S석 30,000원 / A석 20,000원

_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