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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면 새로워진다

<극장 앞 독립군>은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협업의 미학’을 보여준 국내외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9월 20일과 21일 이틀 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장대한 음악극이 열린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함께 만드는 무대에는 총 300여 명의 출연진이 올라 뮤지컬과 오페라, 국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그려간다. <극장 앞 독립군>은 국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협업의 결과물이다.
장르 간 협업의 역사는 길다. 공동창작, 합작, 앙상블 등 협업을 뜻하는 여러 어휘들은 조금씩 다른 뉘앙스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모두 ‘여럿이 힘을 합쳐 창작하거나 작업하는 일’을 뜻한다.

현대미술과 극예술의 조우

모든 공연예술은 근본적으로 협동을 통해 완성되지만 이와 별개로 ‘협업’을 중요한 특징으로 삼는 장르나 작품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6세기의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 arte)’처럼 배우를 비롯한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서사에 개입하며 완성해가는 공연을 ‘협동극’이나 ‘고안극(Devised theater)’으로 명명했다. 이제 협업이라는 단어는 ‘고안’의 개념을 주요 원칙으로 삼는 단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예술가와 예술가, 단체와 예술가, 단체와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드는 작품을 수식하기 위해 활발히 쓰이고 있다.

벨기에 화가 피터 반 브레델이 그린 코메디아 델라르테 공연의 모습.

현재 더 많이 더 자주 만나볼 수 있는 협업의 형태는 예술가와 예술가 또는 단체와 예술가의 공동 작업이다. 협업은 이미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가들에 의해 북적북적 이어져 왔다. 최근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개인전의 주인공,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중 대표격이다.

호크니는 1966년 런던왕실극장에서 공연된 알프레드 제리의 <위비 왕(Ubu Roi)> 무대디자인을 시작으로 글린데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방(The Rake’s Progress)>과 오페라 <마술피리>의 무대 디자인을 맡는 등 무대미술 감독으로서 활약을 이어갔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매혹적 컬래버레이션은 단연 198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퍼레이드를 위한 무대미술이다. 당시 호크니는 에릭 사티의 음악에 맞춘 발레 공연,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각본과 프란시스 풀랑크의 음악으로 완성된 <테레시아스의 유방>,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까지 세 무대의 디자인을 맡았다. 이 중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을 위한 무대미술은 훗날 호크니에 의해 재창조되어 호놀룰루미술관의 스팰딩 하우스 분관에 전시되며 호크니를 미술관으로 재초청하는 재미난 경험을 선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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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 있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무대미술 감독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푸치니의 <투란도트> 미술에 이어 1994년 호크니는 TV로 실황 중계되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라 아리아 무대를 위해 의상과 무대 배경을 디자인했다. 당대를 대표하는 오페라 가수와 오케스트라, 현대미술의 대표주자가 무대에서 만난 셈이다.

다양한 매체와 소재를 활용하며 작품 세계를 깊고 넓게 확장하던 호크니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 음악에 맞춰 조명이 작동하도록 하는 현대적인 무대 미술을 시도했다. 2017년 호크니는 투란도트의 재공연 무대 미술로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메달을 수상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활약을 보면 호크니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 또는 그의 작품 이름을 딴 영화, 책, 의상이 등장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또다른 협업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무용, 패션, 팝음악 등에 이르는 개인과 개인의 협업

이처럼 공연예술과 미술가의 만남은 매력적인 에너지를 생성하곤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순수미술 작가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벨기에 현대무용의 기수인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와 그녀가 이끄는 무용단 로사스, 패션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의 만남 역시 예술적인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1998년부터 로사스를 위한 의상을 만들어 온 드리스 반 노튼은 로사스의 예술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안무를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수학적인 움직임’ 같은 표현과 부드러운 앙상블을 이루는, 드리스 반 노튼의 기하학적인 디자인과 오묘한 채도, 색상의 의상은 매번 마술적인 시너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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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와 드리스 반 노튼은 꾸준히 협업해오고 있다.

이제는 친숙해진 팝 가수와 뮤지컬의 조우도 일종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련받은 뮤지컬 작곡가에 의한 넘버가 아닌, 대중에게 친밀한 가요가 뮤지컬을 살찌우게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여기에 단순한 주크박스 뮤지컬을 넘어 팝 음악가가 직접 뮤지컬 창작에 참여하며 작품을 완성해가는 경우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신디 로퍼에게 토니 어워드 음악상을 안긴 <킹키 부츠(Kinky Boots)>가 그 예다. 국내에서도 라이센스 공연되며 큰 사랑을 받은 <킹키 부츠>는 시대를 풍미한 팝스타이자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신디 로퍼의 음악세계가 어떤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예술단의 협업은 예술의 새로운 스펙트럼

개인뿐 아니라 단체, 지역, 공간, 기관도 협업에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쏟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역 내 예술단체가 협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국제적인 컬레버레이션 역시 꾸준히 증가 중이다. 중국과의 뮤지컬 합작은 근래 가장 활발한 문화예술 교류 중 하나다. 최근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랭보>는 한국과 중국 프로덕션이 동시에 준비되어 큰 시차 없이 양국에서 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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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키부츠>는 팝 음악가가 뮤지컬 창작에 참여해 작품을 완성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다채로운 협업의 모양새를 만나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완성하는 커뮤니티 예술이나 예술단체와 예술 외 분야 단체 사이의 협력은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대표적 협업의 양상이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한 오클랜드 발레단과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난 협업의 주인공이다. 발레단의 크리스마스 시즌이자 야구 비시즌인 겨울마다 무용수들과 야구선수들은 손을 맞잡고 함께 춤을 췄다. 애슬레틱스 선수들은 오클랜드 발레단의 <호두까기 공연>에 퍼포머로 참여하며 지역 주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지역사회의 결속을 다졋다.

동일 장르 내 협업 문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단체도 눈에 띈다. 우리에게는 <원스>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뉴욕씨어터워크샵(이하 NYTW)에서는 ‘NYTW 옆집(Next Door at NYTW)’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NYTW의 ‘4번가 극장’ 공간을 협업 공간으로 열어두고 이곳을 인큐베이터 삼아 다채로운 시도가 이뤄지게 한다. 이들의 컬래버레이션 주체로는 관객을 빼놓을 수 없다. NYTW의 모든 작품은 프리뷰 공연을 통해 관객의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반영하는 과정을 거친다. 무대 위, 백스테이지, 객석에서 꼼꼼하게 작품을 본 관객으로부터 날카로운 비평적 질문을 받은 뒤 이를 통해 수정된 완성작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다양한 분야의 단체가 결합해 완성한 다원예술은 아니지만, 연극계의 상생과 발전에 힘을 싣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예술에서 협업은 필수

이처럼 협업은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단체 사이의 협업은 생각보다 흔하거나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개별 창작자와 기획자의 역량이 중시되는 만큼 협업을 할 때도 여전히 연출, 미술감독, 의상디자이너, 음악감독 등 개개인이 강조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예술가 개인을 넘어서 역량 있는 집단의 만남과 공동 작업이 활성화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스펙트럼의 협업이 관객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고, 독특한 영역을 일구어낼 협업의 미학에서 당분간은 눈을 뗄 수 없을 것 같다.

_김송요(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