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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던 영웅을 되살리다

<극장 앞 독립군>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는 음악이다. 사라져가던 영웅을 부활시킨 작곡가 나실인을 만났다.

Q. <극장 앞 독립군>의 음악을 만들고 감독한 입장에서 홍범도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극장 앞 독립군>은 홍범도 장군의 뛰어난 업적을 그리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한 영웅’으로서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지요. 독립운동을 하며 몇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말년에는 러시아의 변방으로 강제 이주되어 극장의 수위를 하고 있는, 아들과 부인마저 잃은 쓸쓸한 인생. 하지만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온 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인생은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극장의 단원들을 통해 재구성되고, 다시금 기억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입니다. 그래서 음악 역시 홍범도의 비범한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꾸고자 노력한 인물로써 우리가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친숙하게 다가가게끔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음악적으로 가볍게, 도리어 ‘달달하다’고 할 수 있는 요소도 많이 적용했습니다. 또한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이야기의 줄기를 차지하는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고려극장의 단원들이기도 합니다. 고려극장 단원들 모두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자 홍범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로 어떻게 보면 그들 역시 독립군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여러 명의 주연이 존재하는 무대라는 사실은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최초 통합 공연이라는 의미와 맞물려 음악적으로도 다채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극장 앞 독립군>에서 나실인의 음악은 실패한 영웅의 삶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Q. <극장 앞 독립군>은 총 24개의 음악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음악극입니다. 음악적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단의 연주를 기반으로 오페라, 뮤지컬, 합창 등의 요소들을 조합해서 구성한 무대입니다. 반복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표현하는 주제 선율인 ‘라이트 모티브’ 역시 보다 다양하게 변주해서 흥미를 더했지요. 무엇보다 장면 전환을 위한 음악의 역할에 크게 신경을 썼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던락이나 발라드, 심지어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멜로디나 화성, 리듬 등을 적용했지요. 특히 고려극장 사람들이 등장하는 신에서는 창극이나 모던한 대중음악을 연상하는 음악을, 이와 대비되는 홍범도 장군의 과거 전투가 벌어지는 신에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웅장한 음악을 통해 영웅의 면모를 보이게 했습니다.

Q. 이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의 7개 예술단이 협력해 만들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떤 곳에서 이런 협업의 묘미가 잘 드러날까요?

협업 덕분에 주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합창단, 오페라단, 뮤지컬단, 연극단으로 골고루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발성과 음역대가 서로 다른 배우들이 노래로 어우러진다는 뜻인데, 이를 캐릭터에 적극적으로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 악역을 맡은 배역은 낮고 비열해 보이는 바리톤의 음으로, 배고픈 의병 역할은 오페라에서 전형적으로 코믹한 역할을 하는 가수의 창법으로 부르는 식입니다.

나실인은 음악을 통해 이번 작품이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의 첫 통합 공연이라는 의미를 잘 살려냈다.

Q. 다양한 음악을 하나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시도한 방법도 있을까요?

국악관현악과 오케스트라의 경우 음량과 음계의 차이를 잘 조율하는 것이 큰 숙제였습니다. 가급적 마이크를 사용해 조율하는 것을 자제하고, 소리 자체의 특징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시도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운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이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음색을 지니게 된 것이죠.

Q. 이번 작품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신경을 많이 쓰고 가장 많이 기대가 큰 무대는 쇼케이스에서도 선보였던 ‘서곡’입니다. 무용단, 소년소녀합창단, 오페라단이 다 함께 한 무대에 서는 장면이죠. 수없이 조율하고 연습을 거친 장면인데 아마 쉽게 만날 수 없는 스펙터클한 사운드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반면에 서정적인 노래들도 감성을 자극하지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홍범도와 이옥녀(홍범도의 첫째 부인)의 이중창입니다. 산과 들을 떠돌던 홍범도와 비구니였던 이옥녀가 처음 만나 부르는 노래에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사랑을 하고 굳세게 살겠다는 다짐이 모두 담겨 있어요. 독립군으로서 전장에 나가는 홍범도에게 싸움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는 이옥녀 캐릭터는 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하고요.

Q. <극장 앞 독립군>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현대를 사는 작곡가로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어떻게 전할 수 있는지는 꾸준히 제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가 만든 음악이 잊혀가는 독립군과 그 후손을 떠올리는 매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정치 구호나 캠페인 같은 일회성 관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그 희생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들의 노력이 잊혀서는 안 되니까요.

인터뷰 | <문화공간 175> 편집부 사진 | 김대진(지니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