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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야수파

현대 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에 혁명처럼 등장했던 야수파. 그들의 독특한 회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해본다.

왜 야수파가 탄생했을까?

야수파의 탄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19세기부터 일어난, 회화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에 주목해야 합니다. 관점의 대전환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한마디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이 ‘객관에서 주관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여기 19세기 초반의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약 40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온 패러다임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이 ‘객관’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자신의 생각보다 이 그림을 볼 사람들이 그림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지를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화가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 그리고 이야기를 한눈에 명확히 알 수 있게 그리는 것이 회화의 기본 전제였던 것이죠. 그렇기에 화가의 육안으로 보이는 외부세계를 보이는 그대로 잘 모사하는 것이 미술의 기본이었습니다.

<해질녙의 씨 뿌리는 사람>, 빈센트 반 고흐

그런데 19세기 중후반에 등장한 이 그림은 매우 다릅니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지 않나요? 약 400년간 변함없던 회화에 대한 패러다임이 수십 년 사이에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이 ‘주관’을 지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볼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 화가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화가들은 더 이상 육안으로 보이는 외부세계를 곧이곧대로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본 외부세계를 주관적으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표현을 창조하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하죠.

회화에 대한 이런 거대한 관점의 변화가 왜 하필 19세기에 발생한 것일까요? 그 원인은 이미지의 미래를 재편할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진입니다. 19세기 초에 최초의 사진이 등장한 후, 사진은 회화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외부세계를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회화보다 더 정확하게 세상을 복사해내죠. 더 나아가 사진을 이어 붙여 돌리니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나!

외부세계를 잘 모사하기만 하는 화가는 설 자리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인 상황이 왔습니다. ‘정녕 회화는 이제 끝이란 말인가?’ 막다른 벼랑 끝에서 새로운 도전정신과 창조정신으로 한껏 무장한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파리 외곽 몽마르트르 싸구려 카페에서 밤샘 토론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벼랑을 탈출할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회화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객관에서 주관으로!’ 19세기 후반, 그들의 그림을 보고 대다수 사람들은 비판을 넘어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잔, 고갱, 반 고흐 등의 화가들은 ‘이제 회화는 화가의 독창적인 주관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 생각을 자신의 그림으로 증명하기 위해 삶 전체를 던집니다. 이들의 창조를 향한 고독한 분투는 결국 씨앗이 되었고, 20세기의 태양이 막 떠오르는 새벽, 야수파라는 열매로 ‘한 단계 더 진화되어’ 열리게 됩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빈센트 반 고흐 / 폴 고갱, <신의 날> / 폴 세잔, <에스타크의 붉은 지붕들>

왜 야수파는 그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야수파의 그림을 보면 어떤가요?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그린 것 같지 않나요? 규칙이 있는 것 같지도 않죠. 강렬한 원색이 큼지막하게 덕지덕지 발라져 있고, 그저 어린아이가 장난치듯 그린 그림 같기도 합니다. 야수파는 왜 그렇게 그림을 그린 걸까요? 야수파라는 열매를 맺게 한, 씨앗 같은 직속선배 화가들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세잔, 고갱, 반 고흐입니다.

세잔, 고갱, 반 고흐. 이 셋의 그림 사이에는 공통점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죠. 각자 추구하는 회화의 이상도 매우 달랐습니다. 그러나 근원을 파고들어 보면 세 화가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회화는 화가의 독창적 주관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들 바로 이전 세대인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답습하길 거부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네는 19세기 중반에 파리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화가였죠. 세 화가 모두 모네가 창안한 인상주의 그림을 인정했고 배울 점은 배웠습니다. 태양 빛을 통해 비로소 탄생하는 자연의 색을 그림에 담아내야 한다는 모네의 생각에 특히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모네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네에게 없는 무언가’를 찾아 파리를 떠납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로, 고갱은 타히티로, 반 고흐는 아를로 갑니다. 이들이 간 곳은 모두 달랐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 세잔, 고갱, 반 고흐는 더 강렬한 태양 빛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파리의 태양 빛은 너무 온화하고 약했습니다. 게다가 세 화가는 모네의 그림을 두고 외부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강렬한 태양 빛이 선사하는 더 깊고 진한 자연의 색을 두 눈에 깊이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자연이 뿜어내는 가장 순도 높은 색채의 감동을, 눈을 넘어 영혼 깊숙한 곳에 침투시키길 열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얻은 색채를 곧이곧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감정을 담아 더 깊고 진하게, 더 밝고 선명하게, 더 강렬하게, 혹은 전혀 다르게 채색하길 끝없이 갈구했습니다. 그 결과 세 사람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외부세계와 닮지 않은 그림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무시당했고, 천대받았고,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콜리우르의 열린 창>, 앙리 마티스

하마터면 세상은 그들을 잊을 뻔했습니다.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이, 태양이 발산하는 빛이 낳는 순수한 원색의 미를 그림에 담아내겠다는 열정이 영영 잊힐 뻔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세 고독한 화가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의 작품 앞에서 진정한 빛을 발견한 젊은 화가가 나타납니다.

“반 고흐와 고갱은 무시당하고 있다. 돌파하기 위해서는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만약 세잔이 옳다면, 그렇다면 나 역시 옳다. 그리고 나는 세잔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30대 무명화가 앙리 마티스는 그렇게 혼자 되뇌며 입을 더욱 굳게 다뭅니다. 그는 태양을 향해 예술혼을 불태웠던 선배 화가 세 사람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정한 ‘태양의 후예’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남부의 코르시카, 생트로페, 콜리우르로 가서 모든 것을 현혹시키는 빛과 색을 만납니다. 그리고 색 이전에 (그 색을 빚은) 빛을 먼저 느끼고 내면에 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마티스는 태양과 점점 하나가 됩니다.
그런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 중에 든든한 우군, 앙드레 드랭이 나타납니다. 마티스와 열띤 토론을 펼치던 드랭은 빛의 표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림자를 빛이 가득한 밝은 색으로 그리자고 마티스에게 제안합니다. 1905년 남프랑스의 끝, 콜리우르에서 이렇게 두 청년화가는 찬란한 태양 빛의 마법에 홀리게 됩니다. 그들은 과거의 모든 거장들이 남긴 유산을 잊은 듯 모든 규율과 억압에서 해방되어, 찬란한 날개를 퍼덕이는 ‘색’ 그 자체를 화면에 담기 시작합니다.

<이카루스 1946>, 앙리 마티스

네, 태양의 후예, 야수파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어떻게 태양 빛이 낳는 색으로 외부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서 그려낼 수 있을까?’ 오직 태양의 빛에서 답을 찾고자 했던 이 정답 없는 모험의 여정! 전시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1억 5천만km를 날아온 태양 빛과 만나시길. 이제,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8년 전, 77세의 노장 마티스가 왜 굳이 <이카루스>를 빚었는지.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일정 :  2019.06.13.(목) ~ 2019.09.15.(목)
장소 :  세종 미술관1관,세종 미술관2관
시간 :  오전 10:30 – 오후 8:00 (입장마감 오후7시)
연령 :  전연령 관람가능 티켓 :  성인 (만19세-64세 / 대학생 및 일반) 15,000원
청소년 (만13세-18세 / 중, 고등학생) 12,000원 어린이 (만7세-12세 / 초등생) 10,000원

| 조원재 (작가, <방구석 미술관> 저자)
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