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던지는 현재적 메시지
서울시뮤지컬단이 무대에 올린 <베니스의 상인>을 관람하기 전, 이 뮤지컬에 연극 연출가 박근형의 손길이 닿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고전 작품들의 현대적 재해석을 꾸준하게 시도해온 그가 <베니스의 상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극의 전체 얼개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비슷하게 흐른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절친 밧사니오의 결혼을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그러나 안토니오의 전 재산인 배가 모두 난파돼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샤일록은 증서대로 이행하길 강하게 호소한다. 밧사니오의 아내 포샤의 도움으로 안토니오는 목숨을 구하고, 샤일록은 재산을 빼앗긴다.
그런데 이 익숙한 서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주인공이 달라졌다. 원작에서 선악의 구분은 단순했다. 안토니오와 포샤는 악독한 유대인에게 삶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선인들이었고, 샤일록은 모두에게 경멸 받는 지독한 고리대금업자였다.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의 시점에서 극을 바라보며, 그를 악인이라기보다 소외 계층이자 이방인으로 다룬다. 그 순간, <베니스의 상인>은 권선징악의 희극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드라마를 품은 작품으로 변한다.
안토니오와 거래를 시작한 이후 샤일록은 계속 불행해진다. 샤일록이 가장 사랑했던 딸 제시카마저 샤일록의 돈을 들고 안토니오의 친구에게 떠난다. 깊은 고독과 분노를 품은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살점을 원하는 것은 탐욕보다 감정적 응징에 가까워 보인다. 안토니오와 그 주변 사람들이 샤일록에게 보이는 무분별한 경멸과 혐오 또한 극이 흐르는 내내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뮤지컬의 대단원, 샤일록이 사라진 무대에서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법적 정의의 딜레마라는 현재적 메시지가 계속 가슴을 울렸다. 드라마의 중심에서 샤일록 역을 맡은 배우 김수용의 열연 또한 무척 인상 깊었다.
정미환(<문화공간175> 에디터)
한여름처럼 아름다운
셰익스피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었을까? 네 명의 연인이 엇갈린 운명으로 섞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한여름 밤의 꿈>도 그렇지만 <베니스의 상인>을 뮤지컬로 감상해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연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가사에 직유법으로 등장한다. ‘그대의 아름다움은 마치 한여름 같이…’ 무더운 여름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다.
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은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그에게 전 재산과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저당 잡힌 상인 안토니오가 주인공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이들이 모두 사랑에 빠져 있어 극 중 연인들의 갈등과 만남이 로맨스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안토니오의 절친한 친구이자 가난한 학자 밧사니오는 훗날 재판에서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는 벨몬트의 상속인 포샤와, 이들 무리의 베니스 청년 로렌조는 샤일록의 딸 제시카와 각각 사랑을 노래한다. 뭇 여인을 두루 만나던 그라시아노마저 포샤의 시녀 네리사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니 복잡한 사연과 마음이 저마다의 음색과 멜로디로 펼쳐져 극은 더욱 다채로운 결로 펼쳐진다.
각 연인들은 포옹하는 스타일도 마음을 확인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녀와 결혼하면 거대한 부가 따라오는 상속인 포샤는 각각 금, 은, 납 상자로 청혼자의 마음을 시험한다. ‘노력 없이 얻은 사랑은 더 좋은 것’이라는 노래 가사는 심상치 않다. 결국 세 연인 중 영원한 행복의 길에 들어선 이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누구와도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은 샤일록이 오히려 돋보인다. ‘돈 많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말하는 샤일롯은 돈에 대한 탐욕, 딸에 대한 사랑 등등에 여러 갈래로 고통받는다. 결국 딸도 잃고 돈도 잃고 그 어떤 복수도 하지 못한 최후가 제법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여운 일생! 공연이 끝나 뜨거운 박수가 이어지는 중에도 그에게만은 이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이기를 바랐다.
김주혜(<스타일러 주부생활>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선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뚜렷한 선악 구도에 근거한 권선징악 서사는 21세기 들어 급격히 힘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선의지와 빼어난 역량을 가진 영웅을 숭배하는 시선 역시 시들해졌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환경의 산물이라는 데 다들 합의했고 특정 인종, 성별, 종교, 사상에 근거해 세상을 재단하는 행위는 적극 지양된다. 도리어 차별, 혐오라며 비난받기 일쑤다.
마블(Marvel)은 정확히 이 대목을 공략함으로써 21세기 극장가를 석권했다.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슈퍼 히어로들은 다들 나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딱 잘라 선한 인물이라고 평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신은 물론 서로에게 환멸을 느끼는 축이며 이는 관계를 설정하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다. 캐릭터 설정과 대사 곳곳에 의식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C)’을 심는 영민함도 갖췄다. 휘황찬란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넘어 한 세대의 문화사를 대변하게 된 비결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감독이 말했듯 영화엔 뚜렷한 선인도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범죄 행위를 희극적으로 연출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을 가해자, 부유한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며 의도적으로 선악 구도를 뒤엎었다. 이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난을 모르는 이들이 가난을 팔아서 작품을 빚은 것 아니냐며.
이런 흐름에서 고전을 무대에 올리는 건 제법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도 매한가지다. 1600년경의 작품이다 보니 뭐 하나 요즘 시선에 들어맞는 게 없다. 당대엔 안토니오는 선인, 샤일록은 악인이라는 구도가 먹힐 수 있었으나 이젠 아니다. 도리어 작품 전반에 깔린 유대인 혐오 탓에 그 시대의 차별과 혐오 정서를 보여주는 텍스트로 평가받는다. 이 관점에선 샤일록이 피해자다. 전 재산 몰수와 그리스도교 개종이라는 재판 결과는 유례없는 막장 판결.
서울시뮤지컬단도 이 지점을 넘기지 않았다. 샤일록의 분노 이면에 유대인 혐오가 있음을 몇몇 장면에 담아냈다. 다만 그런 시선은 살짝 가미된 정도이고 극 전반의 서사는 원작 그대로다. 특히 포샤의 결혼을 놓고 벌이는 퀴즈 게임 장면이 원작대로이고 비중마저 큰 것은 근래의 페미니즘 흐름을 고려할 때 의외였다. 적극적인 재해석을 기대한 입장에서 다소 아쉽긴 하나 고전의 권위를 가진 원작을 존중하는 안전한 노선임을 알기에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홍형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