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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마스네의 오페라로 돌아오다

수많은 무대와 스크린에 오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쥘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로 돌아왔다.

24세의 독일 청년이 약 6주 만에 쓴 소설이 유럽을 뒤흔들었다. 독일 최고의 문호가 될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1774년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의 출세작인 이 책은 감수성 넘치는 청년 베르테르가 약혼자 있는 여인 샤로테를 짝사랑하다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를 그렸다.
서간체(편지) 형식으로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자신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괴테는 2년전 소도시 베츨라에서 사법연수생 생활을 할 때 샤로테(애칭 로테) 부프라는 이름의 처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실연당했다. 그녀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심한 괴테는 한때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친구가 유부녀에 대한 사랑과 계급사회의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권총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설을 구상했다.

 

출간되자마자 ‘베르테르 열기’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바로 번역됐다. 당시 짝사랑에 실패한 청년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노란 조끼와 파란 연미복을 입고 권총 자살을 하는 바람에 일부 국가와 도시에서는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프랑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젊은 시절 이 책의 애독자여서 이집트 원정 때 7번이나 읽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작품의 폭발적인 반응의 이면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짝사랑 이야기 외에 당시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과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질풍노도기 낭만주의 예술관이 있다. 또한 시민계급과 귀족계급의 갈등, 기독교에 대한 비판 등도 꼽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속에서 샤롯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는 이성적이면서 완고한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인물로 베르테르와 대척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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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작품을 텍스트로 한 오페라는 무려 120여편에 달한다. 가장 먼저 오페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의 생전에 루돌프 크로이처의 「샤를로트와 베르테르」(1782년), 빈센토 푸시타의 「베르테르와 카를로타」 (1802년), 카를로 코치아의 「카를로타와 베르테르」 (1814년)가 나왔다.
하지만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1842~1912)가 1892년 「베르테르」를 발표하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오페라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괴테의 최고 작품인 『파우스트』의 경우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 (1859년), 루이 액토르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1846년),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페루치오 부조니의 「파우스트」 등 유명한 버전의 오페라가 여러 개 나왔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뿐이다.

 

오페라 「마농」으로 유명한 마스네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깊은 감동을 받아 오랫동안 오페라화를 꿈꿨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스네의 「베르테르」는 괴테의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마스네는 앞서 「마농」에서 드라마틱한 오페라를 위해 여주인공 마농에 초점을 맞췄는데, 「베르테르」에서도 사랑에 번민하는 베르테르를 중심으로 리브레토를 만들었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트, 약혼자 알베르라는 기존의 삼각관계에 샤를로트의 여동생 소피를 등장시킨 것이다. 소피가 베르테르를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해 이야기에 좀더 긴장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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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네의 「베르테르」가 18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됐을 때 관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원작의 철학적 깊이는 없어졌지만 마스네의 아름다운 음악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세련된 관현악, 감각적인 멜로디, 시적인 정서는 마스네 오페라의 특징이다.
「베르테르」는 초연의 성공 이후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마스네는 1902년 테너가 맡는 베르테르 역을 바리톤으로 바꿔 개정판을 다시 썼다. 사랑에 고민하다가 목숨까지 끊는 베르테르의 어두운 면모가 바리톤에 어울릴 것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바리톤 개정판은 마스네 생전엔 종종 공연됐지만 지금은 거의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독일의 현대음악 작곡가 한스 위르겐 본 보스가 1986년 괴테의 원작에 충실한 오페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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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중반 이후 바이마르 공국에 거주한 괴테는 궁정극장 극장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희곡과 함께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을 자주 무대에 올렸다. 질풍노도 운동의 대표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고전주의자로 변모한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실러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연극)의 꽃을 피웠다. 당시 인기있는 소설이 희곡으로 각색돼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괴테 자신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에 올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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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은 오랜 시간이 더 지나서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작품을 한 영화가 독일만이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지만 연극이나 뮤지컬로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았다. 원래 희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파우스트』가 수많은 연출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공연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다만 20세기 후반 독일 공연계에서 고전을 해체하고 실험적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 속에 연출가 니콜라스 슈테만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록음악, 비디오 등을 활용해 1인극으로 만든 연극 「베르테르」는 큰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초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1000회 안팎 상연됐을 정도다.

 

한국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창작뮤지컬로 친숙한 작품이 됐다. 고선웅이 대본을 쓰고 정민선이 작곡을 담당한 이 작품은 2000년 초연 당시엔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애절한 음악과 스토리로 마니아 팬들을 만들어냈다. 2003년 공연 때는 제작비 마련에 고심하던 제작사를 대신해 팬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자체 제작까지 했다.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 롯데, 알베르트의 삼각관계를 스토리의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주인 마님을 사랑하는 하인 카인즈의 이야기를 서브 플롯으로 뒀다.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에선 베르테르-롯데-소피의 삼각관계를 서브 플롯으로 뒀지만 메인 플롯에 비해 약한 편이다. 하지만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선 사랑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카인즈는 베르테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극적 종말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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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초판과 1787년 개정판의 두 가지 판본이 있다. 두 판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 마님을 사랑한 하인의 에피소드가 초판본엔 없다는 점이다. 괴테는 베르테르에게 치명적인 사랑의 모델이 되는 인물을 개정판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오페라 「베르테르」가 초판을 바탕으로 했다면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개정판을 토대로 한 셈이다.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동안 초연 무대에서 김광보가 연출을 맡은 이후 재연 공연에선 고선웅, 조광화, 김민정 등 여러 연출가들이 연출을 맡아 각각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 바 있다. 창작뮤지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은 한류 뮤지컬 붐을 타고 2013년 1월 일본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같은 해 8월 미혼 여성만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봄날의 천둥」이란 제목의 창작뮤지컬로 선보였다. 

 

오페라 「베르테르」
일정 : 2019.5.1(수)~2019.5.4(토)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수,목,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5시
          (공연시간 : 150분 / 인터미션 : 2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12만원, R석 10만원, S석 8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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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