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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는 죽지 않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가 오페라, 뮤지컬, 영화, 연극 등으로 영원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얼까?

“인간이 왜 나쁜 사랑에 그렇게 매혹되는 줄 알아? 절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지!”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가 한 말이다. 뷸륜과 치정,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많은 작품들은 이 강력한 매혹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에 있어 파멸, 파탄보다 강력한 최음제는 없다. 사회적 도덕과 의무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와 자연의 욕망이 인정되는 밤의 세계의 대립, 그리고 죽음을 통한 완벽한 합일이라는 주제는 오랫동안 문학을 비롯해 많은 장르를 매혹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사랑을 공동의 경험이며 함께 ‘나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별개의 세계에 산다. 카슨 매컬러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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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베르테르.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 로테에게는 정혼한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 그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 친구에게 고백하듯 중얼거린다.
“사랑하는 친구여, 이것은 어쩐 일일까? 내가 나 자신을 겁내고 스스로에게 놀라다니!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순수하고 남매간 같은 우애, 사랑이 아니던가? 이제까지 단 한 번이라도 마음속으로 죄스러운 소원이나 엉큼한 욕망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물론 맹세할 수는 없다. 그런데 꿈을 꾼 것이다. 아아, 이처럼 모순되는 갖가지 작용은 불가사의한 간밤의 일이었다! 입 밖에 내는 것조차 몸이 떨린다.” 

 

사랑은 심장 근처에서 젊은 그의 몸을 뜨겁게 태우다가 결국 고백으로 터지듯 발화된다. 로테는 그의 고백에 놀라며 흔들린다. 하지만 그토록 위험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베르테르의 슬픔은 여기에서 온다. 자신의 사랑이 세상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사랑은 로테의 결혼 이후에도 지속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야말로 ‘금기란 어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의 영원한 원형 같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하세계까지 내려간다. 지하세계의 신이 죽은 아내를 되살릴 수 있는 조건으로 그에게 내세운 건 하나였다. 함께 지하를 나가되, 뒤를 쫓는 아내를 절대 뒤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뒤돌아보게 된다.
사랑하지 말라고 하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더 크게 욕망하게 되고, 결국 파멸로 향한다.

 

이 모티프는 그리스 신화는 물론 구약의 창세기에서부터 다양한 나라의 민담에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금기가 있는 곳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위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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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로테, 그렇게 우리가 나눌 깊은 우정을 생각해보라며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얘기하는 그녀.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지 결코 알지 못한다. 우정이란 말이 그에게 칼이 되고, 더 나은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이 독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베르테르를 더 큰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로테를 남몰래 좋아하던 서기(그는 로테 아버지 밑에서 일했다)가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한 후, 해고당한 일이다. 이제 그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자신의 사랑은 영원히 이해받지 못한 채 비난받을 것이고, 세상에 내팽개쳐질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늘 위 구름을 보면 토끼나 양떼를 연상하기도 하고, 양들이 하늘 위에서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다고 꿈꾸길 좋아한다. 달에서 옥토끼를 그리는 상상력 아닌가. 창문 위에 비친 그림자만 봐도 우리는 그림자가 기린을 닮았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든다.

 

사랑은 인간이 구축한 가장 위대한 이야기다. 신화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개별적 인간은 누구나 자기 연애의 ‘서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반전이다. 반전 뒤에 ‘매력’이란 명사가 붙는 건 그런 이유다. 그래서 진짜 범인이 잡히기 전, 우리는 늘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26가지 사랑의 플롯 중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비극적 반전이다. 베르테르는 이제 슬픔과 비극만을 확신한다. 자신의 사랑은 결코 이해받지 못할 거라 믿는다.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더라면? 우리가 그 얘기를 이토록 오래 기억할 이유가 있을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끝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많은 연극과 영화,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괴테의 ‘베르테르’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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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나이는 그러므로 중요하다. 그의 나이 25세인 1772년, 그는 자신의 전작과 다르게 14주 만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그의 소설 ‘파우스트’는 집필기간만 56년이었다!). 소설 출간 후, 베르테르가 작품 속에서 입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이 불러일으킬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괴테 역시 예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테르 효과. 젊은이들의 자살이 속출한 것이다. 

 

베르테르는 18세기의 ‘짐 모리슨 + 커트 코베인’이었다(짐 모리슨은 시집을 두 권이나 냈고, 커트 코베인은 ‘열정 없인 죽는 게 낫다’는 평소의 지론을 몸으로 발산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 나아가 그 나이가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소설이 있다. 그것이 괴테에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토록 이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다.    

 

오페라 「베르테르」
일정 : 2019.5.1(수)~2019.5.4(토)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수,목,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5시
          (공연시간 : 150분 / 인터미션 : 20분)
연령 : 만 7세 이상
티켓 : VIP석 12만원, R석 10만원, S석 8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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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