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으로 삼일절 백 주년을 기념한다는 것
글. 장혜선(객원기자)
역사를 예술로 되새기는 방식 중 ‘합창’은 단연 진중한 호소력을 지닌다.
3.1운동 백 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시합창단의 초연작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를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역사를 예술로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지난한 역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한 인물을 꺼내어 그 시기를 되짚어볼 수 있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다. 일제강점기 한국 역사의 전환점이 된 3.1운동은 그동안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재현돼왔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전국 각지에서 대거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일제의 강점에 저항한 여러 인물을 통해 슬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유관순의 옥중 일화를 다룬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이 스크린에 올랐다. 오는 3월, 공연계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뮤지컬 「영웅」, 경술국치 전후 독립운동가들의 의거를 다룬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시인 윤동주의 처연한 일생을 다룬 서울예술단 「윤동주, 달을 쏘다」가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합창단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152회 정기연주회에서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를 초연한다.
합창이 가진 짙은 호소력
음악이 사회와 상호 소통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합창이다. 합창은 공동체 활동이다. 집단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합창은 제례나 종교의식에서 기원했다. 합창 형식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왔다. 클래식 음악이 양식적으로 자리 잡은 고전 시대를 살펴보자. 당대는 계몽주의를 배경으로 시민의식이 싹트던 시기였다. 자유와 평등 같은 인권 회복이 다수의 목표가 됐다. 이런 계몽주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합창음악은 인기가 하락했고, 자연스럽게 오페라나 기악이 발전했다.
하지만 고전 시대를 빛낸 작곡가들은 많은 합창 작품을 남겼다. 하이든은 합창과 기악 양식을 아우르는 ‘천지창조’를 비롯해 다수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징슈필을 탄생시킨 모차르트도 합창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모차르트는 20여 곡의 중창과 합창곡을 작곡했고, ‘모테트’와 같은 종교음악도 남겼다. 이어서 베토벤에 의해 고전 시대 합창음악은 새로운 개념을 형성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가사가 없는 교향곡에 가사를 넣으며 강력한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했다. 그만큼 합창은 가사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합창의 가사는 직접적으로 사회를 담으며, 다수가 함께 외치기 때문에 절절한 호소력을 지닌다.
이용주가 작곡한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는 온 힘을 다해 나라의 자유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담는다. 오페라 칸타타는 칸타타가 지닌 합창, 중창, 독창의 음악적 요소와 오페라의 연기적 요소를 결합한 장르다.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적 장치를 추가한 공연 형식이다.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는 매봉교회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유관순을 보여주며 곡이 시작된다. 이후 정동교회에서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17~18세 유관순 열사의 실제 이야기를 음악으로 그린다.
3월, 시민이 하나 되어 그날을 외치네
이번 공연은 2019년 6월 「나비부인」의 주역으로 프랑스 무대 데뷔를 앞둔 서선영이 유관순 역을 맡는다. 소프라노 서선영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고, 현재 다양한 해외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유예도(사촌언니 역), 유중권(아버지 역), 이소제(어머니 역), 유우석(오빠 역) 등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이 주요 배역으로 무대에 선다. 또한 서울시극단 단원인 배우 최나라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해 극의 흐름을 잡는다.
이번 공연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서울 시민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지원으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80명의 시민이 서울시합창단과 같이 무대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를 위해 지난 1월 구성된 시민합창단은 만 19세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모였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 이용주가 직접 연출을 맡고, 서울시합창단 강기성 단장이 지휘봉을 잡는다. 연주는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이 함께한다.
특정 계절이 되면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극중 배경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은 매년 12월, 세계 오페라 극장을 장식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시의 일부를 발췌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 덕분에 연말마다 다양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새해가 밝으면 ‘신세계’에 대한 도전과 좌절, 극복이 담긴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여러 공연장에 울려 퍼진다.
이처럼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기는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도 매년 3월마다 우리나라 곳곳에 울려 퍼지면 얼마나 좋을까. 일제의 탄압에 맞서 삼천만이 하나 되었던 1919년 3월의 그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