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영웅을 기다리며

뮤지컬 「영웅」이 돌아온다.
 

영웅을 기다리며

글.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

뮤지컬 「영웅」이 돌아온다.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의미가 더 각별한 올해 공연은 또 어떤 감동을 몰고 올까?

촛불시위로 공연장보다 광장에 사람들이 많았던 지난 2017년 겨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한 편이 큰 흥행을 기록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로 뮤지컬 「영웅」이다. 공연으로서의 완성도도 훌륭했지만, 난세에 영웅의 등장을 갈구하는 당시 대한민국 사람들의 목마름이 이 작품의 흥행을 가져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언론지상에 오르내렸다. 때로 뮤지컬은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거나 치유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록을 담은 역사 뮤지컬이다. 선생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향반(鄕班) 지주 집안 출신으로 근대 신문물을 수용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유년시절부터 개화된 사고를 지니며 자랐다.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전에는 교육 계몽운동을 적극 펼쳤던 전력도 있다. 1909년 하얼빈 중앙역 1번 플랫폼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했을 당시 나이는 31세였다. 지금도 그곳을 찾아가면 안중근 의사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이 남긴 편지와 서책들, 여러 자료들을 지나면 중앙역 내부가 보이는 창가에 도착한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곳 1번 플랫폼 바닥에는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실제 서 있었던 장소를 기록한 표식이 있다. 안중근 의사라는 존재가 묵직한 현실로 느껴지는 엄숙한 순간이다.

한 배역 두 배우. 2019 「영웅」에서는 정성화와 양준모가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

한 배역 두 배우. 2019 「영웅」에서는 정성화와 양준모가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

안타깝게도 선생의 무덤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게 훼손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후문만 무성하다. 우경화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한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로 폄하해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세월은 흐르고 선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

뮤지컬 제작은 지난 2010년 안중근 의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창작 뮤지컬의 산실 역할을 해온 극단 에이콤이 제작 과정만 5년여를 준비하는 정성을 기울여 완성됐다. 전작이었던 「명성황후」와 여러모로 흡사해 혹자는 「명성황후」의 후속편적인 성격을 지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무대를 화려한 비주얼로 포장하고, 보수적인 국가관과 애국심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분명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국가 정체성이 사실 선조들의 피와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절로 숙연해지는 감동을 피할 길이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총성이 무대를 가를 때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설희’ 역은 린지와 정재은이 연기한다.

‘설희’ 역은 린지와 정재은이 연기한다.

역사 속 기록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내려 했던 제작진의 의도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모두 7발의 사격을 가했다. 이 중 4발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나머지는 혹시라도 그를 오인했을 경우를 대비해 주변의 인물을 겨냥한 것이었다. 일곱 발의 총성이 공연장을 가로지르며 울려퍼질 때, 전후 사정을 알고 무대를 보면 더욱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뮤지컬 작품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뮤지컬 「영웅」이 지닌 첫 번째 미덕은 우선 음악이다. 몇 번 반복해 듣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맴도는 선율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결심하는 1막 후반부의 음악들은 그야말로 중독성이 엄청나다. 뮤지컬 음반에도 담겨있는 ‘영웅’과 ‘그날을 기약하며’는 노래 자체만으로 감상해도 울컥해질 만한 감동을 담고 있다. 뿔 나팔 소리 같은 연주음이나 규칙적인 템포의 박자감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음악을 연상케도 하는데,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떠올리게 만드는 선율과 음악적 스타일이다. 물론 차이점이라면 뮤지컬에선 익살보다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감동적으로 전한다는 점이다. 무대를 통해 직접 목격하고 감상하다 보면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김도형, 이정열, 정의욱.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지는 연기를 가장 잘 소화해낼 배우는 누구일까?

김도형, 이정열, 정의욱.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지는 연기를 가장 잘 소화해낼 배우는 누구일까?

음악적 완성도가 듣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면, 시각적인 완성도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이 작품의 두 번째 미덕이다. 야마카시를 활용한 역동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 철골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입체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극 전개가 흥미롭다.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공간 창출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특히 백미를 이루는 기차 세트의 활용은 인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영상으로 표현되던 달리는 기차가 삽시간에 세트로 변환되는 무대의 마법은 탄성마저 자아낸다. 시각적 완성도를 구현해내는 우리 창작 뮤지컬에서 국내 스텝들의 노하우와 창의력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뮤지컬 「영웅」은 창작 뮤지컬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쓴 경력을 지니고 있다.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6개 부문의 트로피, 같은 해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주요부문 6개 상을 거머쥐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특히 한 배우가 양대 뮤지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한 경우는 전례가 없어 주목을 받았다. 안중근 의사 역으로 열연을 펼친 정성화다. 이번 앙코르 무대에서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설렌다. 뮤지컬 「영웅」은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 막을 올리기도 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젠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몇 날 며칠에 걸쳐 동토(凍土)를 횡단하는 열차를 타고 다다랐을 독립 투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숙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랫말처럼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에서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고 하늘에 맹세”했던 선열들의 애국심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뮤지컬로 위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에겐 교육적인 목적에서라도 꼭 보여주고 싶다. 많은 관심과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원종원(뮤지컬 평론가)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뮤지컬 `영웅` 10주년 기념공연

뮤지컬 `영웅` 10주년 기념공연

일정 : 2019.03.09 (토) ~ 2019.04.21 (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시간 : 화,목,금 오후8시 수 오후3시/오후8시 토 오후3시/오후7시 일,공휴일 오후 2시/ 오후6시 30분 ※ 4/9(화) 오후7시30분 (공연시간 : 160 분 / 인터미션 : 20 분)

연령 :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

티켓 : VIP석 14만원, R석 12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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