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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연은 ‘새로움’이다

나의 공연은 ‘새로움’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은 예술 감상의 가장 큰 목적이자
예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예술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공연은 다른 예술 장르인 미술이나 문학, 영화 등과는 달리 일회성의 경험을 토대로 펼쳐지는 것으로서 소유할 수도 없고 반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찰나의 순간에 온전히 몰입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상자의 의식과 관점을 끊임없이 적용하고 연산하며 변화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소유와 반복을 할 수 없는 만큼 순전히 현장에서의 이해와 감동만이 자신에게 남기에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하다. 정지된 것과 박제된 것을 거부하는 공연예술은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 위에 그림을 그려가는 행위에 비교할 수 있다. 같은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강물의 속도나 수위, 날씨는 물론이고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감상자의 마음 등등 그림이라는 본질을 제외한 모든 변수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했던 “신은 세부에 있다”라는 격언처럼 공연예술의 의미는 바로 그 변화무쌍하고 무량대수적인 디테일의 향연에 있다. 진행 혹은 횟수에 따라 달라지는 디테일에 따라 전체의 의미가 재구성되는 그 순간을 향유하며 감동을 얻는 과정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예술의 새로움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을 시작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을 가까이해왔고 세계의 많은 공연장과 연주회를 경험하고자 노력했다. 2017년도에 결산해보니 한 해에 230회가 넘는 연주회를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실제 공연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광장문화 활동과는 상반되는 하이엔드 오디오 애호가이자 레코드 콜렉터로서 밀실문화 활동의 길도 오랫동안 병행해 왔다.

왜냐하면 이 또한 새로움을 찾는 과정으로서 광장문화에서의 적극적인 새로움과는 궤가 다르지만 그에 준할 만큼 컨디션과 환경에 따라 사운드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새로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디오 메이커와 성능, 케이블과 전기, 위치와 각도, 리스닝 룸의 컨디션과 날씨에 따라 사운드가 달라지며 음반 또한 같은 음원이라도 프레싱의 순서와 국적, 공장, 리마스터링 엔지니어와 미디어(LP, CD 등)에 따라 전혀 새로운 사운드를 보여준다. 공연에서도 같은 단체가 같은 곡을 연주한다 하더라도 콘서트 홀의 종류와 좌석 위치, 연주자들의 컨디션, 청중 수와 날씨 등등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광장과 밀실에서 경험하는 공연예술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그렇지만 상반되게 보이는 이 두 개의 문화의 판을 함께 이끌고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새로움을 향한 갈구’라는 하나의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새로움이란 기대치 못한 순간에 음악 자체로 들어가는 산화와 같은 충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충격을 오랫동안 축적해가며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는 환원으로서의 경험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신념 하나가 있다. 공연예술을 재현하는 재생 음악은 창조를 하는 실연 음악을 모방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실제 음악회가 공연예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40여 년 동안 한국에서 경험했던 모든 공연은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산화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음악은 악보와 연주자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음향이다. 미술의 출발은 색이듯 음악의 출발점은 음향으로서,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등의 많은 콘서트 홀과 오페라 하우스를 전전하며 서서히 새로운 새로움을 깨달으며 그렇게 환원되어가기도 했다. 특히 독일어권에서의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들과 러시아에서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오페라들은 이전까지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가슴 벅찬 새로움의 순간들로서 음악적인 산화와 환원이 동시에 일어났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공연은 역시 자신들의 상주 홀에서 연주할 때 그들만의 예술적 정체성이 오롯이 피어난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고 음악이나 연주에 따른 청중의 태도와 반응 또한 공연의 완성도에 상당 부분 일조한다는 것 또한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공연을 둘러싼 모든 내외적인 요소 혹은 변수들이 예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질료가 아닐까 싶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예술은 파격이든 온건이든 가장 먼저 극장의 전통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전통은 곧 관객에게 새로움을 선사하고 만족을 시켜야 한다는 정언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런 탓에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카프리치오」에 등장하는 노련한 극장장의 그 기나긴 열변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집에 있는 가상의 극장이든 오페라 하우스라는 현실의 극장이든, 우리는 무대를 통해서만이 공연예술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예술의 새로움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주어진 ‘나의 공연은 OO이다’라는 주제의 빈칸에는 ‘디테일’이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 그러나 디테일은 어디까지나 공연을 감상하는 과정 혹은 방법일 뿐이라는 생각에 ‘새로움’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왜냐하면 새로움이야말로 예술을 향유하는 감상자들의 가장 큰 목적이자 예술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 공연이라는 장르를 넘어 새로움은 모든 공연의 근원에 깔려있는 쾌락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쾌락 없이는 예술도 삶도 없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내 인생의 공연


1. 윤복희 주연의 「피터팬」, 1979년
2. 베를린 필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내한공연, 1984년
3. 로린 마젤이 이끄는 라 스칼라 오페라단의 「투란도트」 공연, 1988년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음악동아」, 「객석」 등의 클래식 음악 전문지와 오디오 잡지, 일간지에 20여 년 넘게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강좌, 기획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