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주, 미지의 길을 간다
글. 장경진 (객원기자, 공연칼럼니스트)
최근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발매한 피아노 솔로 앨범 중 눈길이 가는 곡이 하나 있었다.
‘Uncharted Road’. 수많은 경계를 넘으며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 재즈에 몰입해 온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곡이었다.
미지의 길 위에서 그가 느꼈을 다양한 감정은 그렇게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12월 22일 꿈의숲아트센터에서 공연을 갖는다.
재즈풍으로 편곡한 다양한 캐럴을 통해 관객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전하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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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짜인 틀에서의 삶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재즈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재즈에 매혹되었던 때는 언제였나?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처음 들었던 건 대학을 다닐 때였다. 그동안 들어오던 음악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이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막연하지만 화성적으로 노트의 나열도 리듬적으로도 정형화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매우 자유로워 보였다.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한 나에게 이런 자유로움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 신기할 정도다.
재즈와 가까워진 후 매년 앨범을 통해 송영주만의 음악세계를 펼쳐오고 있다. 한 앨범 안에서도 역동적인 곡도, 서정적인 곡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성향의 곡을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리듬적인 것에 늘 몸이 반응하는 걸 보면 역동적인 곡을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안에 분명히 열정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서정적인 곡이 내 성향과는 더 맞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빠른 곡보다는 여유롭고 공간이 많은 곡에서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충분히 내 감성을 깨우는 순간들 말이다!
최근 첫 피아노 독주앨범 <Late Fall>을 발매했다. 재즈는 다양한 악기들과의 즉흥적인 합이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내가 즐겨 듣고 존경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빌 에반스, 키스 자렛, 프레드 허쉬, 브래드 멜다우 등등. 많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솔로 음반과 공연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꼭!’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시도하지 못했는데 이젠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오랜 시간 여러 악기들과 연주해오다보니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보다는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에 익숙했었다. 이번 작업을 하며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다보니 드럼, 베이스, 기타, 혼 연주자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부담감과 중압감이 컸고, 마치 공연을 처음 하는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마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피아노라는 악기가 갖고 있는 오케스트라적인 면과 혼자이기 때문에 기본 폼마저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몰입하는 매력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 도전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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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그동안 음악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운 점과 기뻤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공연이 다가오면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 참 희한한 일이다. (웃음) 이렇게 오랜 시간 무대에 섰는데도 여전히 긴장이 되고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그동안 음악을 해오면서 앞으로도 가장 어려운 점은 무대에 서는 일이고, 가장 기쁜 일 역시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가 아닐까 싶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즈에 몰입하고 있다. 어떤 점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끔 음반을 낸 후배들이 이렇게 한 장 내기도 힘든데 그동안 어떻게 11장을 발표했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사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대중음악에 비해서 여러모로 열악하고 소외된 부분이 있음에도 진짜 재즈를 좋아하나보다. 게다가 오랜 시간 반복되어지며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와버린 느낌이랄까. (웃음) 재밌는 점은 무대에서 연주하는 직업이 타고난 성격이나 적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데도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니 반복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필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다. 최근 가장 자극을 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
키스 자렛은 나의 어머니와 같은 70대 중반임에도 최근에 새 앨범을 발매했다. 연륜에서 오는 그 깊이감은 더더욱 나를 감동시킨다. 과연 그 나이까지 왕성하게 앨범을 내고 연주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자극을 주는 아티스트다.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협업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즐거움이다. 다양한 음악이 주는 매력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재즈에 전념하다보니 잊고 있던 것들을 클래식 연주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느끼게 되고, 대중가수들과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창작의 묘미를 느낀다. 그런 작업들 끝에 재즈로 돌아오게 되면 늘 새롭게 만들어내는 즉흥연주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모든 음악은 크게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즈가 낯선 관객들이 재즈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에스프레소를 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아메리카노가 쓰기만 하고 사람들이 왜 마시는지 이해를 못할 때가 있었다. 우유가 들어간 달달한 커피로 시작하다가 지금은 씁쓸하고 진한 아메리카노가 좋아졌다. 재즈 역시 어렵다고만 여기지 말고 듣기 편한 재즈부터 찾아 듣기 시작하면 점점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다. 결국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꾸준히 자신 안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며 다양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재즈를 통해 앞으로 어떤 것을 더 해보고 싶은가.
자작곡은 물론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담은 앨범을 내고 싶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여러 장르의 음악과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계속 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재즈를 즐길 수 있는 그날까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