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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수프 한 그릇 같은 넉넉함으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인터뷰
 

따뜻한 수프 한 그릇 같은 넉넉함으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인터뷰

글. 김주영 (피아니스트)

세상은 넓어지지 않는데, 좋은 음악가들은 넘치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꼭 필요한 연주계의 관문, 국제 콩쿠르의 챔피언이 센세이셔널한 뉴스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된 것도 오래 전이다. 역으로 보면 각종 대회나 굵직한 무대를 통해 각광받은 본인들에겐 오히려 반가운 일일지 모르겠다. 세밀하고 엄중한 ‘필터’를 거쳐 세계 무대에 떠오른 그들이 원하는 건 ‘무슨 무슨 대회 우승에 빛나는’ 등의 타이틀이 아니라 자신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준비한 작품에 대한 순수한 관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 대륙 최고의 피아노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정복한 선우예권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윌리엄 카펠, 센다이, 방돔 프라이즈 등 까다로운 관문을 골고루 거치며 성장해 고정 팬을 확보한 기성 연주자의 모습이 오히려 낯익은 그이기에, 이번 공연의 주 관심사는 연주에 대한 각오보다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 (황제) 와의 만남이었다.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와는 2015년 오찬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마 기억을 하진 못하실 거에요. 저와 따로 오디션을 위해 만난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스케줄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소화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니까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인 게르기예프는 오케스트라 단원뿐만이 아니라 공연장 안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아우라에서 최고인 것 같아요. 함께 하는 공연은 처음인데 이번 기회로 그의 기억에 남는 연주자로 각인되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쪼갤수록 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게르기예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쁘기로는 선우예권의 요즘 스케줄도 만만치 않은데, 큰 대회를 통해 올라간 자신의 위상이나 30대에 들어서는 나이 등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듯하다. “가끔은 나이를 잊고 누가 몇 살인지 물어보면 잠시 생각해야 할 때도 있어요. 시간이 흘러 감사한 일은 그 시간만큼 조금씩이나마 발전이 있고, 음악 안에 여유 또는 성숙미가 조금 더 묻어 나오는 행복감인 것 같아요. 콩쿠르는 하나의 과정이긴 하지만, 간절히 소원해온 연주자의 길을 살아가고 계속 제가 원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이 감사하죠. 예전보다 힘들어진 게 있다면, 학생 시절에는 콩쿠르 도전이라는 단기적 목표가 있고 앞만 보고 마냥 달렸는데 지금은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최상의 연주를 들려드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에요. 어찌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커리어를 유지하고 지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어려움은 모든 연주자가 겪는 고충이죠.”

언제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음상과 세련미가 느껴지는 균형 잡힌 프레이징은 선우예권의 전매특허다.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생각하기 마련인 화두, ‘비르투오소’ 에 대한 견해는 어떨지 궁금했다.

“이번에 연주할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3번과 같이 불같이 정열적으로 타오르고 힘 있는 스타일도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르투오소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슬비가 내리는 듯한 감성이랄까, 뭔가 슬프고,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르는 듯한 감성의 작품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만났을 때는 제 안의 또 다른 모습이 나와요. 프로코피예프 3번은 이전에 한 번밖에 연주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단순히 느끼실 수 있는 뜨거운 열정과 강렬함 뿐만 아니라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몽환적인 판타지 같은 다양한 매력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무대, 특히 피아노 외 악기들과의 콜라보에서도 탁월한 혜안을 보여주고 있는 실내악 주자로서의 모습은 당당한 카리스마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배려심과 성숙함이 결합된 사려 깊은 해석이 두드러졌던 기억이다. “귀를 항상 예민하게 열고 모든 악기를 들으려 해요. 사운드 면에서 피아니스트가 일종의 팔레트가 되어 모든 물감을 담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어떤 곡이든 주 선율이 있고 베이스 라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성부에 멜로디가 흐르고, 모든 성부가 같은 볼륨이 아니라 밸런스를 서로 유지하며 유동성 있게 흘러야 하죠. 실내악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하나의 ‘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소리를 작고 여리게 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 색감을 다르게 조성하고 그렇게 곡의 매력을 더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죠.” ‘악기의 왕’을 다루지만, 종종 왕보다 더 스마트한 살림꾼 역할을 해야 하는 힘든 위치가 피아니스트의 자리다. 결국 연주자의 스트레스와 압박은 무대에서 이루어지고 또 사라져야 한다고 보여지는 바, 선우예권의 하루하루도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음이 통하는 음악인들과의 연주, 그리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많이 계신 무대는 항상 더 기억에 남아요. 감사하게도 이런 분들을 여럿 만났는데요, 얼마 전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리사이틀 후 사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신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지치고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제 연주를 접하고 꾸준히 들으면서 마음의 힐링이 되었다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값을 매길 수 없는 위대한 음악을 소리로 재현하는,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감사한 말씀들이 연주자로서는 더없이 큰 응원이 됩니다.”

여행으로 시즌을 종횡무진하는 연주자들의 공통점은 식성이 좋고 새로운 음식이나 환경에도 거뜬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적응력이 없이 견뎌내기 힘든 직업이기도 한데, 성격만큼이나 식성도 좋을 것 같은 선우예권의 답변이 특별하다.

“음식은 안 가리고 다 잘 먹는 편인데요, 주로 찾는 음식은 수프 종류에요. 따뜻한 국물을 좋아해서 찌개 종류는 다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건 알탕? 체력이 필요하니까, 어떤 것이든 잘 먹으면 모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챙기는 편입니다.” 찬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요즘, 선우예권에게 그릇을 감싸 안으면 금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수프 한 그릇 같은 넉넉하고 훈훈한 피아노 연주를 기대해 본다.
 
BMW7 시리즈와 함께하는 `게르기예프&뮌헨필` 내한공연

BMW7 시리즈와 함께하는 `게르기예프&뮌헨필` 내한공연

일정 : 2018.11.22(목)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오후 7시 30분 (공연시간: 120분 / 인터미션: 20분)

티켓 : VIP석 25만원 / R석 20만원 / S석 15만원 / A석 10만원 / B석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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